청와대가 피디수첩을 '흉기'로 지칭한 모양이다.
의도적 '조작'으로 촛불시위를 초래해 정권에 위협을 가했다는 점에서 그렇게 부른 모양이다.
그러나 청와대야말로 진정한 '흉기'다.
음습하고 폭력적인 권력행사로 국민의 자유와 민주적 권리에 심각한 위협을 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학자이자 철학자였던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의 기본영역'으로 다음 세가지를 꼽았다.
첫번째는 "양심의 자유, 생각과 감정의 자유, 그리고 절대적인 의견과 주장의 자유"다.
두번째는 "자신의 기호를 즐기고 자기가 희망하는 것을 추구할 자유"다.
세번째는 "결사의 자유"다.
존 스튜어트 밀은 "어떤 정부형태를 가지고 있든 이 세가지 자유가 원칙적으로 존중되지 않는
사회라면 결코 자유로운 사회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에서 이 세가지 기본적 자유 중에서 단 하나라도 완전하게 보장되는 자유가 있는가?
정부를 비판하는 글을 쓴 게 '공익'을 해쳤다며 함부로 사람을 잡아가두는가 하면, 또 제 멋대로
사상을 검열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사생활을 침해하는게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비판자와
반대자에게는 어떻게서든지 보복을 가해 삶을 파괴하는 음습함이 숨을 막히게 하는게 바로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게다가 무리한 강제진압으로 5명의 철거민들을 숨지게 하고, 정치보복의 성격이 짙은
모욕적 수사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자들이 과연 '흉기' 운운할 도덕적
자격이 있는가?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미안한 마음이 있다면 아무리 피디수첩을 비판하더라도 '흉기' 운운하는
발언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후안무치한 철면피 정권에게 부디 정신과 치료를 받아보라고
권하고 싶은 심정이다.
국민을 함부로 살상하고 후안무치한 정치보복을 자행하는 것이야말로 '외국같으면' 정권이
물러날만한 사안이다. 역사적인 사건을 되짚어 '보스턴 대학살'의 희생자 다섯 명이 미국혁명의
도화선이 된 것을 기억하라.
백번 양보해 피디수첩이 의도적인 '조작, 왜곡'을 저질렀다고 하자. 그러나 참여정부 시절 조중동문
이 행한 의도적인 조작, 왜곡, 흑색선전, 인신공격에 비하면 피디수첩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참여정부는 한 줌도 안 되는 권세를 이용해 음습하고 비열한 사생활 폭로, 뒷조사,
인신공격을 행하지 않았다. 여론의 뭇매를 맞더라도 정정당당하게 말로써 반론을 폈을 뿐이다.
바로 이러한 태도가 참여정부와 현 정권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어떠한 권력이 더 자유롭고 민주적인가? 역사는 분명하게 평가할 것이다.
촛불은 '흉기'로 보여도 가스총은 흉기가 아닌 청와대에 이성이 통하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 마디는 꼭 해야겠다.
자유민주주의라는 국가 정체성의 위기는 보수주의를 표방한 정권의 위기와는 비할 바 없이
중대한 사안이다.
공산주의에 격렬히 반대하면 곧 자유민주주의이고, 그렇지 않으면 공산주의의 잠재적 동조자라는
어처구니없는 이분법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지금 대한민국 사회에서 자유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는 건 많은 사람들이 광범하게 느끼고 있는 사실이다.
사회적 합의의 과정을 무시하고, 다수 의석을 무기로 특정정파의 정체성을 국가의 정체성으로
삼으려는 행위는 파시즘 국가에서나 볼 수 있는 폭거다.
미국 독립선언문의 저 유명한 구절로 맺는다.
"우리는 다음을 자명한 진리로 생각한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으며 하느님은 그들에게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몇 가지 권리를 부여했다. 여기에는 생명과 자유와 행복추구의 권리가
포함된다. 이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국민은 정부를 만들었으며 정부의 정당한 권력은 국민의 동의
에서 나온다.
정부가 이러한 목적을 파괴할 때에는 국민은 언제든지 이를 변혁 내지 폐지하고,
국민의 행복과 안전을 가장 효과적으로 가져다 주어야 한다는 원칙에 기초하고 이를
위한 기구를 갖춘 정부를 새로이 조직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