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예전에 비토세력이란 네티즌이 쓴 글을 붙인 것이다.
다함께 공부하자.
<이인영의원의 다당제 반대론에 반대한다> by 비토세력
열린우리당의 이인영 의원이 최근 일고 있는 다당제논란에 대하여 반대의견을 피력하였다. 정치인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서 당당히 밝히는 것은 매우 긍정적인 일이라고 본다. 다만 논지에 포함된 오류는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고 다른 이의 다른 견해도 경청할 열린 자세는 필요할 것이다.
<이인영 의원이 주장하는 다당제 반대론>
지금의 거대양당이 대립하는 구도는 민주화 운동의 산물이다. 민정당과 민자당의 일당독재에 대항하는 대척 및 대립세력으로서 민주화세력이 응집하여 지금의 거대양당이 성립되었는데 그것을 허무는 것이 민주화의 치적이나 그 산물을 무위로 돌리는 것이다.
다당제를 정착시키면 지역구도가 희석되기 보다는 오히려 소지역주의를 강화할 것이다. 거대한 지역정당이 대립하는 지금의 우리 정치지형에서 다당제가 정착된다면 결국 지역구도를 넘어서는 것이 아니라 지역을 더욱 세분하여 할거하는 지역당들이 나올 것이 염려된다.
선거구제의 개선이 반드시 다당제를 전제로 한 것은 아니고 민주개혁세력과 기득권 수구보수세력의 대립구도로 발전할 수도 있다. 오히려 민주개혁세력의 대연합이라는 정신을 훼손하고 원칙과 궤도를 벗어나 혼란에 빠질 수 있다.
이런 정도의 이유로 다당제에 대한 반대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이해된다. 결국 민주대 반민주의 오랜 정치적 패러다임을 여전히 가슴속에 소중히 부여안고 정치를 분석하는 모습으로 보여진다.
<우리의 거대정당은 비정상이다.>
국토를 동서로 갈라서 할거하는 거대양당은 다양한 국민의 의사를 반영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단지 지역의 정서를 대변하여 서로 싸우고 있을 뿐이다. 그들이 쟁투를 멈추고 상대와의 상생을 모색하면 지지율이 뚝뚝 떨어지는 현상은 지역구도의 심각성을 여실히 증명하는 것이다.
지금의 체제는 결코 민주화운동의 성과물이 아니다. 민주화운동이 지향하던 것은 민주주의일 뿐이다. 지역간의 갈등을 겨냥한 민주화운동은 아예 처음부터 있지도 않았던 것이다. 우연히 민주화세력이 지지하던 정치적 보스가 서쪽출신이고 반민주세력을 대변하던 정치지도자가 동쪽출신이었던 것과 정치인들의 선거공학적 자극에 의한 갈림이 있었을 뿐이다. 동쪽은 반민주,서쪽은 민주의 구도는 국민들 사이에 존재하지 않던 것이다. 민주화의 산물이 아니라 정치적 보스들이 활용한 지역감정의 산물이라는 것이 옳은 표현이다.
소선거구제를 함으로서 어용 및 관제야당을 막고 민주주의를 수호한 것은 그 시절의 독재에 대항하는 수단이었을 뿐이지 결코 민주화운동이 지향하던 바가 아니라는 것이다. 당연히 다양한 국민의 뜻을 반영하는 정당제도를 지향하지만 독재권력을 견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소선거구제를 선택한 것에 불과하다. 민주화운동의 산물이 아니라 민주화운동의 과정에서 발생된 불가피한 부작용에 가깝다. 민주냐 반민주냐를 선택하도록 국민에게 강요할 필요가 당시에는 분명히 있었다고 인정되지만 지금은 그런 요구를 국민에게 더 이상 해서는 안된다.
다양한 정당이 출현한다면 그들이 지역을 더욱 작은 조각으로 나누어 할거할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거대한 동쪽당과 서쪽당이 극렬히 대립하는 것에 비하면 그리 심각할 일이 아니라고 보여진다. 호남당,영남당,충청당등으로 갈라지더라도 지금의 동서양분의 구도에 비하면 대립각이 다양해지고 대립은 약화될 가능성이 높다.
진보성향의 계급정당이 전국적인 규모로 당선자를 배출한다면 굳이 지역구도에만 의존할 유인이 줄어들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어차피 정권을 잡으려고 하면 특정하게 쪼개진 지역만을 대변하는 경우 그것이 한계가 되어 정권을 잡지 못할 것이다. 당연히 고른 지지를 받으려는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선거구제는 당연히 다당제를 겨냥할 필요가 없다. 국민의 의사만 정확히 반영하고 지지율에 합당한 의석만 얻을 수 있으면 되는 일이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다양한 계층의 지지를 받는 다양한 정당들이 출현할 것이다. 말하자면 선거구제는 좀 더 민주적인 방향을 지향하고 부수적으로 다당제는 따라오는 일일 뿐이다. 양당제를 위하여 정당의 진입장벽을 쌓지만 않도록 하는 지향이면 된다.
<다당제는 당연히 보장되어야 한다.>
이미 우리의 헌법과 모든 법률은 다당제를 허용하고 있다. 모든 민주국가는 정당의 설립할 자유가 부여되어 있다. 양당제나 다당제는 그런 틀 안에서 얼마나 군소정당이 발전을 도모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가 보장되어 있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즉 국민의 지지를 다양한 정당들에 투사하여 반영할 수 있는 제도인가? 거대양당으로 양분하여 반영할 수 밖에 없는 제도인가? 선택의 문제인 것이다.
국민의 각양각층이 서로 이해를 달리하는 현대사회의 특성을 고려할 때 거대양당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그리 국민의 다양한 뜻을 담아낼 수 있는 장치가 되지는 못한다. 자신의 계급적 이해를 정확히 대변하는 정당이 없어서 중도적이고 차별성이 적은 거대양당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되는 것은 현대사회의 다양성에 반하는 것이다.
대통령제는 당연히 양당제가 좋고 내각책임제는 당연히 다당제가 좋다는 무식한 도식도 의미가 없는 일이다. 오히려 대통령제를 채택한 나라는 집권여당이 되기 위하여 대선을 이길 가능성이 높은 정당을 선호하는 관계로 정치인들이 거대정당에 몸담게 할 유인이 발생하고, 내각제의 경우 작은 규모의 당이라도 연정을 통한 집권이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군소정당의 존립근거가 커지는 것일 뿐이다.
대통령제와 양당제가 어울리거나 내각제와 다당제가 어울려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구조가 거대정당을 만들도록 유도하거나 그렇지 못하거나 하는 특성을 반영하는 것일 뿐이다. 당연히 대통령제와 양당제를 추구하는 것은 군소정당의 존립근거를 약하게 만드는 문제를 야기한다. 그것은 국민의 뜻을 정당들이 정확히 대변할 장치가 약하다는 결정적인 흠결을 가진다.
시대의 흐름과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다당제를 원천적으로 막고 있는 대통령중심제는 그리 바람직한 제도라고 보기 어렵다. 민주적인 원리를 충실히 반영하는 정당제도는 확실히 다당제가 분명하다. 각국의 헌법들이 정당의 설립에 대한 자유를 막지 아니하고 보장하는 것은 그것을 오히려 증명하는 일이다. 그 나라의 권력구조나 정치지형이 그것을 단단히 가로막고 있어서 양당제가 기형적으로 정착된 것일 뿐이다.
<권력구조의 문제>
선거제도와 권력구조는 밀접한 관련을 가질 수 밖에 없다. 대통령제-양당제,내각제-다당제의 무식한 도식이 아니라 우리만의 정치적 사정을 고려한 제도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물론 이미 다른 나라가 채택하고 있지 않은 제도가 없을 정도로 각국의 제도는 모두 다르고 다양하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국민이 대통령제를 선호한다. 국민의 욕구를 무시하고 정치권이 내각제를 추진하거나 그렇게 나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남북문제등이 그리 중요한 변수는 아닐 테지만 국민의 생각은 남북의 대치상황에 대한 의식이 매우 강하다. 또 국민이 대통령의 강력한 권력행사와 통치에 대하여 아직은 금단현상을 보이고 있다. 국민의 뜻을 존중하여 대통령제를 버릴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보여진다.
반면 국민의 다양한 욕구가 분출하고 그것을 제도권 정치나 정당들이 적절히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 국민의 지지율과 다른 거대양당이 존재하고 각급의 국민이 지지하는 다양한 정당이 의회에 진출하지 못한 형편이다. 정당들의 표결이나 의견이 당론으로 강제되는 일이 많아서 개별 의원들이 대변하는 국민은 다를지라도 당론으로 문개져서 하나로 결과가 나타날 수 밖에 없는 형편이다.
국민의 다양한 의사를 대변하는 다양한 정당이 출현할 필요가 발생한다. 그런데 대통령 중심제는 다당제의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다. 상충되는 두가지 제도가 각기 적절하다면 그것을 절충하는 제도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른 바 이원집정부제같은 것은 두가지를 절충하는 제도의 예이다.
프랑스의 경우 대통령은 외치를 담당하고 총리는 내치를 나누어 담당한다. 대통령은 국민이 선출하고 총리는 의회에서 선출한다. 당연히 극우부터 극좌까지 수많은 이념스펙트럼의 정당이 존재한다. 대통령은 선출하면 되고 총리는 우파연합,좌파연합이 의석확보에 따라서 담당한다. 총리는 내치부분의 장관을 추천하고 대통령은 외치부분의 장관을 임명한다. 그래서 좌우동거 정부도 생길 수 있는 것이다.
결국은 국민이 선택하거나 선호하는 제도를 세분하고 조합하면 가장 현실적인 것이 프랑스식으로 여겨진다. 서로 상충되는 측면을 절묘하게 조합한 제도가 아닐 수 없다. 무슨 논거로도 정당이 국민의 지지율을 정확히 반영한 의석을 가지며 다양한 계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민주주의의 본질을 훼손하는 제도를 꿈꾸거나 미련을 가질 권리는 없다.
거대양당체제는 민주화운동의 산물도 아니고, 지역주의를 더 심화할 염려가 별로 없으며, 당연히 헌법상 보장된 정당의 설립에 대한 자유가 극대화하는 것을 막아서는 걸림돌이 되고 있을 뿐이다. 민주화운동의 산물이 아닌 과정에서 발생한 불순물이다. 이제는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를 극복할 때가 되었다. 한 단계 더 나아가 보수와 진보의 선택권을 국민에게 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