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인 노사모가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우리 정치사에 유래가 없는 정치모임으로 시민 스스로가 자기 시간과 돈을 내서 한 정치인을 지지하여 대통령에 당선 시킨 일이다. 이는 민주발전에 새로운 패러다임의 금자탑을 세운 일이다. 하지만 그들이 정말 인간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들었을까? 만들기는 했지만 실패한 것은 아닐까?
십원짜리, 백원짜리를 모은 희망돼지 저금통으로 선거자금을 지원했다. 대통령에 당선되고 나서 함께 모이는 자리를 갔었다. 그 때 노무현 대통령은 지지자들에 이렇게 물었다.
‘저는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무엇을 하실 것입니까?’
누군가 ‘감시’라고 말하자 모두가 입을 모아 외쳤다. “감시! 감시! 감시!”
대통령 당선자 노무현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말고도 절 감시할 사람은 많습니다.’
이런 우매한 집단이 위인을 내세웠다는 자체가 아이러니요, 그분께 모욕이 아닐까 싶다.
역사의 진행을 인간의 입장에서 풀어 가면 수많은 난제에 부딪힌다. 노무현의 당선이 바로 그렇다.
고노무현 전 대통령은 일직이 자기 자신을 스스로 묶었다. 권력화 된 언론과 일체의 타협을 거부한 일이다. 그들이 자신뿐 아니라, 측근들까지 자기를 대신해서 철저히 감시할 것을 부탁(?)한 것이다. 이제 사자가 된 노무현은 그 때 지지자들에게 어떤 대답을 원했을까?
“당신을 끝까지 지지하겠습니다!” 이 말이 아니었을까! 십원짜리, 백원짜리를 모아 세운 대통령은 정말 열심히 일을 하다가 스러져 갔다. 그에게 뭘 더 바라는가?
이제 우리는 나를 대신해서 누군가를 또 등 떠밀어서 사지로 몰아야 한다. 그게 누구 인가는 알 수도 없고, 중요하지 않다. 역사는 그 누군가에게 사명을 쥐어질 것이고 민중은 사명을 받은 자에게 열광할 것이다. 하지만 다시는 아이들 과자 값도 안 되는 돈을 손에 쥐여 주면서 험한 세상으로 내보내면 안 된다.
예전에는 몰라서 그렇다 치더라도 이젠 모든 걸 다 안 상황에서 또 미련한 짓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진성당원 당이 깨진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수많은 당원이 모은 돈 보다 훨씬 많은 더러운 자본이 당에 유입되었기 때문이다.
기득권으로 대변되는 한나라당과 서민이 위주인 진보는 그들과 같은 방식이나, 같은 선상에서 경쟁할 수 없다. 정동영이 계속해서 깨진 결정적인 이유다. 그 이유를 그들도 잘 안다. 예를 들어서 기득권의 방식은 골프장을 건설하는 것과 같은데 수백억원이 드는 건설비를 불과 수백명이 몇 천만원씩 내서 하지만, 서민과 진보는 그럴 여력이 없다. 그들 방식의 반대로 해야 한다. 수십만명, 수백만명이 모여서 수백억원을 만들면 된다.
십원짜리 백원짜리 모아 세운 대통령의 한계를 우린 처절한 심정으로 보았다. 한 달 치 월급을 내 놓아야 한다. ‘한 달 월급 내놓기’ 운동을 제안 한다. 그래서 그 이름은 ‘희망’ 아니라 ‘시현’이라고 해야 한다. 희망은 이루어지지 않으면 ‘개꿈’일 뿐이다.
우리는 개꿈에서 깨어나서 부모가 없어 울고 있는 어린아이와 같은 존재들이다. 우리가 그분을 생각하면서 하염없이 우는 이유는 험한 세상에 내보면서 턱없이 부족한 푼돈을 자식의 고사 손에 쥐어진 부모의 심정이 아닐까한다. 다시는 이런 처참한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
노사모가 민주 발전에 밑거름이 되었다면 시민광장은 더 진보되어야 한다. 노사모는 이제 해체하고 국민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유치원을 한 5년 다니면 빠끔이가 다 된다. 언제 무슨 행사가 있고, 얼마의 돈을 내면 된다는 것도 다 안다. 지금의 노사모가 딱 그 격이다. 노무현의 가치를 이어갈 사람에게 가야 한다. 진보란 어제와 달라야 진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