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쓴 글인데 갑자기 다른 분들과 공유하고 싶어서 올립니다.
MBC 스페셜 ‘마지막 해녀’ 정말 유익한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프로를 보던 중 저는 요즘 한참 시끄러운 법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바로 다음과 같은 장면에서였습니다.
해녀할머니들이 소라를 잡아오면 어촌계장님이 소라의 크기를 잽니다. 할머니들이 따온 소라 중 7cm에 못 미치는 작은 녀석들을 바다로 돌려보내주기 위해서입니다. 물론 그 녀석들을 빼고 무게를 재면 할머니의 하루 벌이는 자연히 줄어듭니다.
어촌계장님들은 할머니 얼굴을 보며 마음이 약해질까 소라만 쳐다보고 작은 녀석들을 골라냅니다.
할머니들은 속이 상하실 법 하지만 아무 말씀도 없이 어촌계장이 적어주는 쪽지(돈)을 받아듭니다.
어촌계장님을 공권력에 할머니들을 시민이라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할머니들딴에는 큰 놈만 잡으려해도 가끔 기준치보다 작은 놈이 잡히기 마련입니다. 하물며 사회는 좋은 해녀할머니들만 사는 곳도 아닙니다. 사회에는 기준을 잘 몰라서 작은 소라를 잡는 사람도 있고, 아차 실수로 작은 소라를 망에 넣어온 사람도 있고, 또는 욕심이 많아서 작은 소라까지 싹쓸이 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제 말은 어떤 사회건 법을 어기는 사람은 생길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규칙에 따라 작은 소라는 바다에 돌려보내야겠지요. 아마도 좀 봐달라고 떼쓰는 사람도 간혹 나오겠지요. 그러면 떼 쓰는 시민들에 대해서는 그에 마땅한 법이 또 적용되면 될 것입니다. 즉 시민들이 할 일은 개인적으로는 아쉽고 억울하지만 규칙에 따르는 것, 그것이 전부라는 소리입니다.
그러데 어촌계장님이 소라를 잴 때 할머니를 흘끗 쳐다본다고 생각해 봅시다. 친한 할머니의 작은 소라는 슬쩍 눈 감아 주고, 힘 없는 다른 할머니의 작은 소라는 매정하게 바다로 돌려보냅니다. 이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법을 어기는 사람이 나오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지만 힘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뜻대로 기준을 줄였다, 늘였다 하는 것은 그 일이 단 한번 일어나더라도 봐 줄 수 없는 일입니다. 법을 어긴 사람은 법대로 벌을 주면 됩니다. 하지만 법을 적용하는 힘을 가진 사람이 법의 잣대를 늘였다 줄였다 하는 것은 약속이 존재하는 기반, 그 자체를 흔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는 어떻습니까?
이 힘없는 할머니가 어촌계장님이 다른 할머니만 슬쩍 봐주는 것을 보고는 따지기 시작합니다. 할머니가 따지자 계장님은 그런 적 없다고 딱 잡아뗍니다. 할머니는 억울하고 분해서 소라를 던지고 길바닥에 드러누워버립니다. 계장님은 이런 식으로 소란을 피웠으니 앞으로 절대 소라를 팔아줄 수 없다며 할머니의 밥줄을 가지고 위협을 합니다. 할머니가 소란을 한번 피웠다고해서 할머니의 소라를 안 팔아줄 권리가 어촌계장에게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촌계장은 손에 쥔 칼자루를 기분이 내키는대로 휘두릅니다.
물론 국민들은 법을 지켜야 합니다. 작은 소라를 바다에 풀어주는 것처럼 당장 우리한테는 힘들고 손해를 본다고 해도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 같이 약속한 일 아닙니까.
하지만 더 중요한 일은 법의 적용이 공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작은 소라를 따오는 할머니는 얼마든지 나올 수 있고, 가끔 떼쓰는 할머니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사회가 절대로 용서해서 안 될 것은 법을 적용하는 자들이 자신이 가진 힘을 가지고 횡포를 부리는 것입니다. 시민들의 범법, 잘못된 일이고 엄정히 처벌해야 하지만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절대 관용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이 있다면 법을 어긴 법의 집행일 것입니다. 법을 손아귀에 넣고 휘두르는 사람들이 이런 원칙을 잊는다면 그것을 깨우쳐 주는 것은 시민들의 의무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