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융님이 나에게 신당창당은 씨잘데기 없는 삽질이란다.
신당창당과 민주당행 모두 찌라시들이 만들어 놓은 프레임에 놀아나는 것이며, 고로 헛물켜고
있단다.
그리고 자신에게는 제 3의 카드가 있음을 내비쳤다.
얼마전 신당창당에 찬성의 글을 올린 나로서는 졸지에 찌라시들의 프레임에 걸려서 놀아난
찌질이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나도 그가 제 3의 카드를 제시하는 날, 함 두고보자는 투로 댓글 남겼다.
신당창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향해 조롱하고 비아냥거리는 그 부분만을 제외한다면 칼융님의
글은 방향을 잘 잡은 좋은 글임에 분명하다.
인정한다.
그런데, '끼워팔기'를 한다.
오래전 군 복무를 할 때, 매년 국군의 날과 연말이 되면 나라에서 군인들에게 과자종합선물세트
하나씩을 하사하셨다.
쵸코파이, 양갱, 초코렛, 계란과자 등, 달달하고 맛 좋은 과자들 틈에 건빵은 여지없이 껴들어있다.
아무리 배고픈 군인들이라고는 하지만 그 시절에도 건빵은 그리 환영받지 못한 과자였다.
그러나 나처럼 까칠한 놈들의 불만은 나랏님에 대한 다수 군인들의 고마움에 묻혀버린다.
그들에게 맛난 과자들 틈의 기껏 건빵 한 봉지가 뭐 그리 타박받을 일이겠는가?
며칠에 걸쳐 달달하고 맛난 과자들이 입속으로 사라지고 항상 맨 나중에 남는 건빵조차도 결국
목구멍 속으로 들어간다.
과자종합선물세트를 만든 제과회사 승리의 순간이다.
'끼워팔기'가 영업전략으로 그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순간이기도 하다.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칼 융님의 끼워팔기도 그 목적달성을 훌륭히 이루어냈다.
신당창당을 지지하는 회원들조차 아무런 불평없이 그 글에 칭찬일색이니 말이다.
나같은 사람에게는 '조선일보의 프레임에 너가 놀고 자빠져 있는 거야' 라는 말이 쌍욕보다
더 심한 모욕으로 느껴지는데, 그들에게는 아닌가 보다.
참으로 좋은 비위를 가졌다.
세상 참 편하고 둥글둥글하게 사는 그들이 부럽기도 하다.
나도 고깟 건빵 한 봉지 군말없이 쳐먹으면 인생 편히 살 텐데...
그러나 만약 얼마뒤 유시민이 신당창당으로 정치적 선택을 한다면 이 걸 고마워해야 하나,
아니면 안스럽게 생각해야 하나?
그렇게 된다면 나에겐 뜻을 같이하는 동지가 생겨 고마운 일이나, 칼 융님의 눈에는 유시민조차도
찌라시들의 프레임에 걸려들어 삽질하고 헛물켜고, 심지어 노무현 대통령의 꿈을 한 방에 까먹는
찌질이가 될 터이니 말이다.
그래서 조금 시니컬하게 댓글 달았다.
그런데 댓글 쓰고나니 걱정이 쓰나미처럼 밀려온다.
나야 조선일보를 아예 쳐다보지도 않는 사람이지만, 내 주위에 조선일보를 탐독하는 누군가가
있고, 그 사람과의 대화중에 부지불식간 나도 오염되어 조선일보의 프레임에 걸려들어 있을 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서관에 갔다.
서거일인 5월 23일부터 칼 융님이 글을 올린 7월 2일까지의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를 눈에 불을
켜고 한 장 한 장 넘겨본다.
5월까지 두 신문에 신당창당 또는 민주당행의 관련기사는 없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를 수북히 쌓아놓고 읽고 있는 나를 맞은 편 자리에 앉아 있는 젊은 처자가
예사롭지 않은 눈빛으로 쳐다본다.
자신도 '할 말은 하는 신문' 읽고 싶은데 내가 선점했기에 보내는 원망의 눈빛인지, 아니면 개똥
같은 신문을 탐독하기에 보내는 경멸의 눈빛인지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 무지 쪽팔린다.
다시 6월의 신문을 펼쳐본다.
헉 ! 있다.
약속이나 한 듯이 6월 1일자의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양 신문 모두에서 친노인사들의 민주당
합류에 대한 일반적인 관측과 민주당 내의 기류에 관련한 기사가 있다.
양 신문 모두 3단 기사에 불과해서 이 것만을 가지고 프레임이라 하기에는 약하다고 할지라도,
아, 역시 칼 융님의 말이 빈 말이 아니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6월 1일자 신문을 시작으로 6월 한 달 내내 '친노인사들의 향후 정치적 행보'에 관한 기사들이
도배되어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없다 !
양 신문 모두 6월 1일자 관련기사를 제외하면 칼 융님이 글을 올린 7월 2일까지 어떠한 관련기사도
찾을 수가 없다.
얼마전 시민광장 게시판에 조선일보를 보지 않겠다는 평생 약속을 너무나 쉽게 깨버린 결과치고는
너무 허망하다.
그렇지만 그를 원망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엉덩이가 아프고 다리가 절여 잠시 나가 담배 한 대 피고나서는 다시 주간조선 2057호(2009년
6/1발행) ~ 2061호(2009년 6/29발행), 월간조선 6월호, 7월호, 그리고 주간동아 688호(2009년
6/2발행) ~ 692호(2009년 6/30발행), 신동아 6월호, 7월호를 훑어봤다.
그런데 여기에서도 관심가져주지 않는 것이 야속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관련기사는 단 1건도
없었다.
결론적으로 서거일(5/23)부터 칼 융님이 글을 올린 날(7/2)까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발행하는
일간지, 주간지, 월간지에서 '친노인사 관련 정치적 행보 또는 신당 관련기사' 는 각 신문 모두
6월 1일자 일간지에서만 3단 기사로 짤막하게 다루었을 뿐이다.
그런데 칼 융님이 자체 제작한 프레임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내가 찌라시들의 프레임에 걸려든
것일까?
중앙일보?
5시간 동안 기사와 칼럼, 그리고 사설까지 보느라 진이 빠져서 더 이상은 못 하겠다.
이 건 칼 융님에게 숙제로 남겨둔다.
그래도 나에게 찌라시 프레임 운운한다면, 내 어깨 위에 앉아있는 조선일보 귀신 쫓아버리게
용한 무당이나 찾아봐야겠다.
또한 칼 융님이 반박할 지도 모를 '신당추진 관련 폴리뉴스' 두 차례에 걸친 '김대중 전대통령 발언'
'민주당 지지율 관련기사' '유시민 서울시장 관련 여론조사' 등에 관해서는 나도 훗날 글을 쓰던
말던 해야겠다.
글이 길어지니 또 귀찮아지기도 하고 누구에게 내 패 먼저 보여주기도 싫고해서 말이다.
서로 패 까고 같이 즐겁게 게임을 하려면 공정거래법에도 저촉될 수 있는 '끼워팔기' 로 상대방에게
부정적 이미지의 프레임을 먼저 걸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야 누가 팔목 잡히고 하는 팔씨름판에 선수로 나서려고 하겠는가?
이제 그만 쓰고 목욕탕에 가서 오염된 내 눈이나 씻어야겠다.
혹시, 前겸사복 너도 비아냥거리고 반말로 찌끄리지 않았냐고 칼 융님이 성깔부릴까봐 잠언에
나오는 귀한 말씀을 핑계삼아 올려본다.
"미련한 자의 어리석은 소리에 대꾸하지 마라. 너도 같은 사람이 되리라.
미련한 자의 어리석은 소리엔 같은 말로 대꾸해 주어라. 그래야 지혜로운 체하지 못 한다."
<잠언 26장 4절~5절>
어린시절 부모님 말 지지리도 안 듣던 내가 솔로몬의 말은 한 번 따라보련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더.
혹시 칼 융님이 '헬스조선' 과 '여성동아' 는 왜 찾아보지 않았냐고 따질 지도 모르겠다.
미안하다.
거기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