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대통령님의 서거 후 충격에서 조금은 벗어나 무슨 일이든, 무슨 말이든 하여야 한다고 생각이 들 무렵 또 다시 49재가 끝날 때 까지는 조용히 있으란다. 49재가 끝난다고 갑자기 변화하는 것도 없을 것은 자명한 일이고, 갑자기 무슨 뾰족한 수가 생기는 것도 아닐진대 오로지 추모기간이라고 가만있으란다.
그리고 한 가지 쓸데없는 말 좀 하고 넘어가야겠다. 몇 자 안되는 글에 존칭을 붙였느니 아니니 하는 생각은 좀 버리고 읽어주었으면 한다. 글의 본질에 대한 논쟁은 얼마든지 좋으나 본질을 벗어나 왜 반말로 글을 쓰냐고 하는 식의 댓글은 아예 사절 할란다.
그래 49재가 끝났으니까 할 말 좀 하자. T,V에서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뉴스를 보고 멍한 상태에서 당일에 봉하마을을 다녀와서는 서울역분향소와 내가 사는 지역의 분향소를 자원봉사자로 오가며 일주일을 보냈는데 어이없는 일은 발인 전날 일어났다. 김대중 전 대통령님이 서울역 분향소에 조문을 온다는 것이었다. 무엇이 문제랴 내 몸의 반이 무너지는 것 같다던 분께서 조문을 오신다는데.......
조금은 한가하던 서울역 분향소의 오전이 갑자기 바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분향예정시간인 11시가 다가오자 평소에는 4~5명이 전부이던 상주들의 자리가 3~40명으로 그득 차기 시작했다. 그들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왔다. 씨팔~~~~
그들 중에는 후단협(후보단일화협의회의 준말로 당시 당의 후보인 노무현 후보를 끌어 내리기 위한 당내의 조직)을 이끌던 의원들이 상당수 있었던 것이다. 그 뿐이랴 며칠 전 까지만 해도 노무현 대통령님과의 거리두기를 넘어서 십억이니 오십억이니 도덕성에 먹칠을 해대던 사람까지 상주가 있어야할 자리에 서 있는 것을 보고 어찌 욕이 안 나오랴.
내 욕설에 언놈이 욕을 하냐는 식으로 뒤를 돌아보는 한 사람에게 나는 한마디를 쏘아 붙였다. “후단협하든 놈들이 상주는 웬 상주냐” 내 한마디가 겁이 났는지 아니면 별 미친놈 다 보겠다는 식이었는지 모르지만 그는 얼른 고개를 도로 돌려서 앞을 보고 있었다. 분향을 마친 고령의 김대중 전대통령님은 휠체어에 앉은 채 조문객을 상대로 안사말씀을 하신 후 상주들과 티타임을 갖기 위해 천막으로 들어가셨다.
천막에서 또 한 번 웃지 못 할 일이 벌어졌다. 천막이 크면 얼마나 크랴. 대통령님 내외분의 자리를 빼고는 의자가 20개, 그들은 서로가 그 자리를 차지하려고 몸싸움 아닌 몸싸움에 신경전까지 벌이며 천막 안으로 향했다. 잠시 후 김대중 대통령님의 눈에 서울역 분향소의 대표 상주였던, 유시민 강금실 두 전직 장관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자 김대중 전 대통령님은 유시민 장관과 강금실 장관은 어디 있냐고 그들을 좀 만나자고 하시는 것이었다.
잠시 후 두 분의 상주가 천막으로 오자 의자를 차지하고 있던 스무 명의 엉터리 상주 중에 두 사람은 쫓겨나야 하는 처지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누구라면 아는 두 사람이 쫓겨났다. 그 들은 천막 밖에서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왜 천막에서 쫓겨나야하느냐는 것이다. 이런 일을 지켜보며 화가 나는 것을 지나 또 다른 슬픔이 나를 싸고돌았다. 서거에 대한 슬픔은 당연한 것이었고, 한국정치의 기막힌 현실에 또 다른 슬픔을 맛보아야했던 것이다.
신당 창당과 민주당
주변의 바램대로 49재가 끝났으니까 할 말 좀 하자. 민주당이 불임정당이라는 이야기는 오래된 이야기이다. 또 내가 아는 한 신당창당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는 작년부터 있어왔던 이야기이다. 이미 1년도 더된 이야기라는 것이다.
혹자는 신당창당이 노무현대통령님의 유산을 등에 업고 활개를 친다고 하고 있고, 그 때문에라도 49재가 끝날 때 까지는 논의를 중단하라는 것이다. 이에 민주당에서는 유산을 자기들 것으로 만들려는 속내를 드러내며 신당창당파를 분열로 인해 한나라당만 이롭게 한다는 논리로 신당창당을 못하게 하려하고 있는 것이다.
솔직하게 말해서 나도 지금 이 시점에 신당창당을 하는 것이 좋은 것인지 아닌지 명확한 결론을 내놓지는 못하겠다. 창당의 당위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시기를 가지고하는 두 가지의 이야기가 각각의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장단점 인가? 한 언론사의 정치부 기자 출신으로 국장급을 이미 지나고, 위원 급으로 있는 후배 한사람의 말을 빌어보자.
‘우선 신당을 창당하여야 한국정치의 미래에 발전이 있다는 것은 부정하지 않습니다. 단 신당창당의 방법이 두 가지 행태로 보여지는 것이 있는데, 하나는 영남권을 축으로 하는 신당이고, 하나는 전국정당을 하려는 것입니다. 영남권을 축으로 하는 신당은 10월의 재보궐 선거나 내년 6월의 지방선거에서 영남권에 민주세력의 교두보 확보에는 의미가 있을지 모르나 군소정당의 틀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고 2012년 대선에서 민주당내 진보세력이 신당과 연합을 하려고 하는 것과는 별도로 민주당내의 보수 세력은 지금의 한나라당이나 신당과의 연합에서 오히려 그들이 히든카드를 들고 있는 형태가 될 것입니다.
그러면 민주당이 분당되는 사태가 올수 있으며, 이는 15년 후 쯤의 한국정치를 생각하면, 옳은 일이 될 것입니다. 지역색이 타파되고,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져 김영삼이 삼당야합으로 고착화 시킨 지역주의가 없어지는 것이 될터이니까요. 그러나 2012년 선거에서는 민주당내의 보수 세력에 의해 진보진영의 집권은 또 물 건너가는 꼴이 될 것입니다.’ 그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그러나 현재 민주당 밖에 있는 소위 탈당파들이 복당을 한다면 2012년 대선에는 승산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노무현대통령이 당선되는 것의 재판을 만들 수 있으니까요. 영남출신으로 민주당후보를 내세우면 또 승리 할 수 있습니다. 2002년의 재판이 되는 것이지요. 즉 다시 말씀드려 영남 특히 T.K를 고립화 시키는 전략을 쓰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형님이 말씀하시는 지역주의가 없어지는 한국정치는 한참 후의 일이 될 것입니다.’ 이에 내가 질문을 던졌다.
‘그런 사람이 누군데?’
‘유시민요. 2012년 선거에 한나라당 후보는 박근혜가 무조건 된다고 봐요. 그런데 박근혜와 싸워서 이길수 있는 사람은 유시민 밖에 없어요. 형도 알다시피 난 별로 유시민을 좋아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그 사람의 능력과 자질은 인정을 해요. 거기다가 그 사람은 경북출신이라는 장점이 있는거죠. 남들이 갖고 싶어도 인위적으로 안되는 장점들을 갖고 있는 거에요. 그리고 민주당 사람들도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서 노무현으로 이기고, 정동영으로 대패를 하여서 누구를 내세워야 이기는지 알아요. 학습효과가 있다는 것이죠.’ 나는 속으로 혼자 웅얼거렸다. ‘이놈아 민주당으로는 안 간다.’ 그는 내 속을 들여다 보았는지 연이어 한마디를 더했다. ‘문제는 민주당으로 안 갈꺼에요.’
신당 이야기하라니까 이 사람은 대통령선거를 이야기한다. 내가 다시 신당을 창당하는 것과 민주당이 변하는 것을 전제로 민주당으로 가야하는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시작하자 그는 단호하게 말한다. ‘아까 이야기 했듯이 10년 20년 후의 대한민국을 생각하면 당연히 만들어져야하는 것이고, 내년의 지방자치선거와 2012년의 총선과 대선을 위해서는 하면 안 된다’ 는 것이다.
민주당은 기사회생의 기회를 맞았다. 식물인간, 불임정당으로 취급받던 민주당이 유산을 지들이 차지하려고 하고 임신이 가능하다고 하고 있는 것이다. 부모님 공양하기 싫다고 집나가 딴살림 차리고 부모님 댁에는 쌀 한톨 들고오지 않던 놈이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어거지로 장례식장에 와보니 너무나 큰 유산이 있는 것이다. 속으로는 좋아 미치겠고, 겉으로는 문상 오는 손님께 슬픈 표정으로 꺼이꺼이 울고 있는 놈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함을 지울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집나가 부모 욕하고 다니던 자식도 자식인지, 아니면 쓰러져가는 집안 기둥 부여잡고 버티던 자식은 무엇인지 말이다. 더욱 혼란스러운 것은 다른 사람들은 집나가 부모 욕하고 다니며 자기는 자식이 아니라고 떠들던 놈들이 자신이 아들이요, 딸이요 하니까 그대로 믿는 모양이다. 뭐가 옳은 것인지, 뭐가 진짜 인지 모르겠다.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멀리보고 가야하는지, 아님 우선 눈앞에 벌어진 일들을 바로 잡는게 순서인지 모르겠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암울하던 2007년 2008년 2009년 초반을 보내고 다시금 희망을 갖게끔 되었으니 말이다. 아니 그게 다행인지 조차 아직도 모르겠다. 작금의 상황이 돌아가시면서 남기신 유산이니 말이다.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가슴속에는 신당창당에 대한 열망이, 머릿속에는 현실을 놓고 계산하고픈 생각이 교차하면서 나를 바보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