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권의 비즈니스 프렌들리가 ‘일자리의 신성화’를 통한 ‘노동자 죽이기’라는 모순을 낳고 그들이 살린다는 민생은 용산참사나 쌍용자동차의 현장이 증언한다.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말로 그칠 일이 아니다. 반사회적 자본의 추악한 실상을 지나쳐선 안 되기 때문이다. 기득권자들은 ‘반기업 정서’를 들먹이지만 ‘반사회적 자본’에 순응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그들 스스로 반사회적임을 실토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10여년 전 프랑스 쉬드(SUD, 연대단결민주) 노조를 방문한 민주노총 간부가 한국 노동운동이 처한 어려움을 설명하면서 삼성 재벌의 무노조 관철을 예로 들었다. 그러자 쉬드 노조의 여성 활동가는 대뜸 이렇게 물었다. “그러면 60만명이 넘는다는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삼성 제품을 보이콧하지 않나요?” 우리는 대꾸를 하지 못했다. 우리의 의식은 사회 변화의 가능성이 우리에게 있음을 인식하지 못하도록 기획·주입된 것일까? 아니면 ‘달걀로 바위 치기’라는 주술에 걸린 것일까?
[이런 바보 또 없습니다 아! 노무현] 이 책을 진중권 홍세화 등과 함께 펴내셨던데 어떤 사정이 있는지 모르겠으나 그리고 첨맘님이 사정이 있었다면 그러려니 하고 넘길수있으나 한편으로 서운한건 어쩔수없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