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북한군은 노도와 같이 38선을 침입하였다. 전세는 급속히
악화되어 북한군은 순식간에 수도 서울로 밀려 들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수도 서울의 사수를
다짐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서울시민 여러분, 안심하고 서울을 지키십시오. 적은 패주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여러분과
함께 서울에 머물 것입니다. 국군의 총 반격으로 적은 퇴각 중입니다. 우리 국군은 점심은
평양에서, 저녁은 신의주에서 할 것입니다. 이 기회에 우리 국군은 적을 압록강까지
추격하여 민족의 숙원인 통일을 이룰 것입니다".
이 연설이 라디오에 흘러나오던 27일 새벽 2시, 이승만 대통령은 황급히 대전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28일 새벽 2시, 한강 인도교가 폭파되어 피난을 가던 수 백명이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
2. 전쟁 발발 직전까지 이승만 정부는 매우 호전적인 언사를 거듭 내뱉었다. 전쟁이
시작되면 사흘만에 북진통일이 가능하다고 했고 미국 지원없이도 자력으로 북한군을
무찌를 수 있다고도 했다. 김구의 평화통일론은 '북괴에 동조하는 이적행위'로 간주되었고
전향의 여지를 두지 않는 강경탄압이 잇따랐다.
그러나 실제 전쟁대응은 엉망이었다. 전쟁이 발발하기 일주일 전인 6월 17일 덜레스 미
대통령 특사와 38선을 시찰한 신성모 국방장관은 아무런 전쟁의 징후도 발견하지 못 하였다.
심지어 전쟁발발 하루 전인 6월 24일 육군 수뇌부 장성들은 육군장교클럽에서 연회를
만끽하고 있었다.
3. 말없이 전력을 증강하고 있던 건 오히려 북한이었다. 북한군은 242대의 전차와 552문의
곡사포로 무장한 20만 병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반면 대북 강경론을 주창하던 당시 국군은
전차가 한 대도 없었다. 곡사포는 91문에 불과했고 총병력도 10만명을 조금 넘어서는
수준이었다. 오히려 남한이 유화정책으로 시간을 벌어야 했던 상황이었던 것이다.
물론 전쟁으로 인한 참화의 직접적인 책임은 당시 북한 수뇌부 집단이 져야 하겠지만, 그에
못지 않게 이승만 정권 또한 큰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승만 정권은 남북관계 악화를
반대파 탄압에 이용하는데 몰두했을 뿐, 전쟁을 막기 위한 어떤 실질적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다.
4. 비극은 반복된다고 했는가. 오늘날 이명박 정권을 보면 마치 60년 전 이승만 정권을
보는 것 같다. 무책임한 강경발언으로 쓸데없는 긴장국면을 조성하는가 하면, 화해협력
그 자체를 이적행위로 몰아가고 있다. 폭주하는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돌려 놓기 위한
어떠한 진지한 노력도 기울이지 않고 있음은 물론이다. '자존심을 꺾고 무릎을 끓으면 먹고
살게 해주겠다'는 식의 현실성없는 발언만을 일삼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분명한 근거도
없이 해킹이 북한의 소행이라 하며 사회 분위기를 냉각시키는데 북한을 이용하려 하고 있다.
실질보다 말이 앞선다는 면에서 이명박 정권은 이승만 정권의 진정한 계승자라 할만하다.
제2롯데월드 허용은 그 한 예에 불과하다. 화해협력의 가운데 말없이 군비를 증강하던
참여정부와는 정말 '질적으로 다른' 정권이다.
(이 글은 제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