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사람은 아닌데, 우리 사돈쪽이 제주도에 연고를 가지고 있어서, 쪼오까 앱니다요.
위에 댓글 쓴 분 지적하셨듯이
제주 사람 거의 전부가 광의의 4.3 피해자 올시다.
보통, 당시 육지(제주도등 도서지역과 대비해서)에서 공산주의 사회주의에 근거를 둔 정치적 움직임들은 실제 그구성원들에서나, 결집의 사상적인 차용에서나,
항일투쟁 당시의 좌익계열, 그리고 광복 후의 박헌영 계열을 비롯한 남로당에 그 근거를 두고
지원을 받던게 기본이었습니다만.
제주도의 경우 완전히 다른게,
제주도의 경우는 제주 민중들 사이의 자생적인 사회주의 변혁 운동이었습니다.
여기서 "사회주의"라는 것도 무엇인가 표상할 하나의 정치적 Theorem으로서 표방했다 뿐이지,
아시아권 범 항일전선에서의- 모택동노선,
-우리의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임시정부
-장개석측 국민군 계열
같은 민족주의 노선과 소련파의 볼셰비키 계열등 그 어느쪽과도 사실상 관련이 전무합니다.
[굳이 가져다 붙이자면,
우리의 '호 아저씨' 호치민옹과 베트남 해방전선의 반 제국주의 전쟁이
애치슨라인 설정후 당시 국제정세상
공산주의에 편의상 코드를 꽂았다뿐이지
사실상 "호치민 주의"라는 것과 마찬가집니다.
미해병대의 나트랑 상륙 1965~사이공함락1975 기간의 베트남전만 사람들이 생각해서 그렇지
북베트남 월맹은 WWII종전 후에는 랑손에 주둔하며 점령군 행세를 하려던 장개석 군측을 상대로 게릴라 전을 수행했고, 인도차이나 공산화 직후부터 바로 "중월 국경충돌"이라 불리는 전쟁을 치렀습니다. 당시 중국은, 미국이나 1979아프가니스탄에서의 소련군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베트남에 피작살이 났드랬죠.]
4.3항쟁 전후한 당시의 움직임은 변혁운동!
즉 공권력,통치,수직 하달식 관리 개념 등의 파시스트적 색채를 완전히 탈색시킨
직능별,거주 지역별 상호 생활 조합의 양태를 띄고 있었습니다.
[시민광장에 신세지는 김에,..어흠흠!..
직능별,지역별로 활성화된 온라인 및 오프상의 조합적 활동, 타 진보세력과의 COB WEB구성을 실천하는 이 시민광장이 나같은 무정부주의자 입장에서는 참 반가운 곳이라옹~]
19c 보불전쟁 당시 걍베따를 중심으로한 코뮌과 그 성격이 유사하다고 보셔도 무방합니다.
항일투쟁과정에서 민족주의, 볼셰비키 노선과 전혀 별개로
제3의 길을 모색하면서 파시스트 왜인들에게 날린 결정타의 80%의 스코어를 올린
우리의 자랑스러운 의열단등 아나키즘(무정부주의)의 연장 선상이라고나 할까요.
[우리의 표또르 미하일로비치 도스또옙스끼의 러시아어에 대한 푸념처럼,
서정과 문학과 시어의 언어인 한국어로 이런 얘기하는건 참으로 힘듭니다.
정확히는 나가 무식해부러서...]
그런데 광복후 해방의 공간에 이러한 이상적 공동체를 이루려는 노력에
진짜 북에서( 구 쏘련군 보안공작 장교인 마또베이 찌모뻬이예찌 낌 상위: 김성주:일명 김일성 다운 작태) 후방 사보타쥬 공작에 눈시깔이 벌게진 쥐새끼들이 직파되어 분탕질을 놓고,
거기에 당시 왜정때 한자리하면서 기쁜우리 쥐새끼날을 보내고 자유당,군,경에서 여전히 니나노 좋던 씨빠랄라들이 폭압을 가하면서 사태가 일파만파가 되어간겁니다.
답으로 만족스러우신지.
그리고 님께서 예단하는것과는 정반대로
그런 오른쪽으로 자빠져 대구리깨진 역사교과서 문제에 대해서는
제주도민들께서 님보다는 더 분노하면 분노하실 겁니다.( 4.3항쟁의 정서적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와 먹고살기 전선에서 말씀들을 아끼셔서 그렇지..)
여기가 업무용 PC인지라 전달의 한계가 있어서
더 참조코자 하는게 있다면,
한국 아나키즘 100년(구승회 外저 -한국 아나키즘 학회 학자들 , 이학사 간)을 참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