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어제 제가 쓴 글의 보론 성격을 띈 글입니다.
이 글은, 어렸을 때부터 존경해온 민주주의 투사이자 세계적이고 역사적인 대한민국 철인정치인의 병상에 바치는 제 개인적인 헌사입니다. 이 글은, 범노무현 지지세력 내에서 김대중 대통령님에 대한 제대로 된 재평가(단순히 감성적이거나 정서적인 면이 아닌, 논리적이고도 역사적인)가 이루어지길 바라는 취지의 글입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경어체는 생략하겠습니다.
1.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김대중 대통령의 병상투쟁
나는 지금, 병상에 있는 김대중 대통령이 자신의 모든 힘을 다 해 병마와 투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몸엔 한계가 있다. 마일리지라는 게 있단 말이다. 물론 그 마일리지라는 게 사람마다 다르긴 하다.
대한민국에서 김대중만큼 자신의 인생을 철저하고 투철하게 살아낸 인간이 과연 몇이나 되랴. 30년동안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독재에 맞서 투쟁했으며, 수 차례의 죽음의 위기, 수도 없는 가택연금과 망명과 투옥생활, 그리고 10년동안의 제1야당 총재, 5년동안의 대한민국 대통령.
세 아들이 모두 검찰에 구속되었을 때, 그의 몸을 지탱하던 정신의 힘이 한 번 무너졌다. 노무현 대통령이 노건평씨와 권양숙 여사에 대한 얘기를 듣고 어떤 반응을 보였었는지를 기억한다면 김대중 대통령의 그 때 심정이 어떠한 것이었을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정신적 아들"과 다름없는 노무현이 천수를 다 누리지 못하고 아버지인 자신보다 먼저 저 세상으로 가버린 것을 보고, 그 자신의 표현처럼 그의 몸의 반쪽이 무너져내렸다.
노무현 대통령이 그렇게 가버리자, 90이 다 된, 휠체어가 없이는 자유롭게 이동하지 못하는 국가원로이자 노정치인이 한 달 여동안 사자후를 토해냈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입니다."
"할 수 있는게 없으면 담벼락을 보고 욕이라도 하십시오"
"지금 조문나온 500만명이 노무현을 진작에 지켜줬다면, 노무현 대통령이 그리 가지는 않았을 겁니다"
평생을 대한민국의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헌신한 그 분이, 자신의 후계자가 자신을 끊임없이 죽이려고 했던 세력들에게 죽임을 당한 장면을 목격하고, 그에 대한 자신의 추도사마저 영결식에서 못 하게 막으며, 자신을 수십년동안 핍박하던 그 독재의 힘으로 국민들을 또 다시 핍박하는 모습을 봐야만 하니, 얼마나 원통하고 분하랴. 그래서 그는 편안히 눈을 감을래야 감을 수가 없는 것이다.
2. 노무현의 억울한 죽음이 국민들 탓이라면, 김대중의 억울한 타락도 국민들 탓이다.
사실 노무현 지지세력들 중에 김대중에 대해서 비판적인 이들이 꽤 많았다. (물론 한나라당이나 수구세력들의 그것과는 양상은 사뭇 다르다.)
주된 논리가 87년 양김분열, 97년 DJP연합, 그리고 당 총재 시절과 대통령 시절 보였던 제왕적 총재, 제왕적 대통령의 모습, 그리고 아들 3형제의 비리들이었다.
80년대까지만 해도, 김대중의 트레이드마크는 "행동하는 양심"이었다. 80년 김대중내란음모사건 조작 때 "협력하면 대통령 빼고 다 주겠다, 협력하지 않으면 죽이겠다."라는 신군부의 회유와 협박을 뿌리치고 기꺼이 죽음을 택하여 사형선고를 받은 일은 "행동하는 양심"의 절정이었다. 그랬던 그가 왜 87년 양김분열, 97년 DJP연합을 단행했으며 제왕적 대통령, 제왕적 당 총재를 스스로 자임할 수밖에 없었을까.
87년 양김분열을 살펴보자.
우린 이미 김영삼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어떠한 재앙적 결과가 초래되었는지 똑똑히 목도할 수 있었다. 그의 양심과 도덕성, 그리고 그의 정치철학과 국정운영능력이 그의 라이벌로 평가되는 김대중과 비교해서 얼마나 초라하고 박약한 것인지 3당합당과 김영삼정권 5년 그리고 퇴임 이후 김영삼의 행보를 통해 똑똑히 목격할 수 있었다.
당시 김영삼에 대해서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바로 최고의 라이벌이자 경쟁자인 김대중이 아니었을까? 김영삼의 본질에 대해서 꿰뚫고 있는 그가 과연 독재를 청산하고 새 시대를 여는 첫차의 주인으로서 김영삼을 용인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양김의 분열을 막지 못한 데에 시민사회세력의 모자란 힘의 책임은 없었던가? 재야세력 또한 단일한 대오를 형성하지 못한 채, "김대중 비판적지지론", "단일후보론(사실상의 김영삼 후보 지지론)", "재야독자후보론(백기완 추대론)"으로 갈갈히 삼분오열되지 않았던가. 시민사회세력의 역량이 강했다면, 독자후보를 내도록 양 김씨를 강제하고, 그 중 정치적 철학과 국정운영 능력이 탁월한 김대중을 단일후보로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97년 DJP연합을 살펴보자.
87년 대선에서 패배했던 김대중은, 92년에 재야 단일후보의 위상을 가지고 대선에 출마했다. 당시 재야의 대표성을 가지고 있던 전국연합과의 정책연합, 그때문에 김대중은 빨갱이로 또다시 몰리기도 했다. 그 결과가 어떠했던가? 수구세력의 품에 안긴 김영삼에게 큰 표차(대략 9% 차이)로 패해서 정계은퇴를 하지 않았나.
97년 대선 때 DJP연합이 아니었다면 정권교체가 가능했을까? 물론 DJP연합만으로 정권교체가 가능했던 것은 분명히 아니다. 이인제의 출마, IMF 외환위기사태, 이회창의 병역비리의혹이 없었다면 정권교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여러 개의 퍼즐 중 DJP연합이 없었다면 정권교체가 불가능했을 거라는 논리에도 동의를 해야 한다.
제왕적 당 총재, 제왕적 대통령을 자임한 그의 선택에 대해서도 그렇다.
우리는 김대중이라는 제왕적 당 총재의 통제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진 호남지역정치자영업자들이 어떠한 패악질을 저질렀는지 탄핵 때 똑똑히 보았다. 그리고 제왕적 대통령을 스스로 거부한 노무현이 놓아준 4대 권력기관(경찰, 검찰, 국세청, 국정원)이 정권이 바뀐 이후 얼마나 무도한 짓들을 저지르고 있는지 지금 똑똑히 보고 있다.
제왕적 대통령, 제왕적 당 총재이기를 거부한 노무현의 진정성을 우리가 인정한다면, 제왕적 대통령, 제왕적 당 총재를 자임한 김대중의 진정성 또한 우리가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시민세력이 성장하지 못한 상황에서, 스스로 마키아밸리스트가 되기를 두려워하지 않은 김대중의 희생적인 타락은 필연적인 것이 아니었을까, 시민세력이 성장하지 못한 상황에서, 스스로 제왕적 당 총재와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방탄복을 무장해제한 노무현이 기득권세력들에게 희생된 것 또한 필연적인 것이 아니었을까.
스스로를 끊임없이 버리고 깨지며 원칙을 지키고자 노력했던 노무현의 그 삶이 진정 용기있고 희생적인 삶이었다면, 자신이 지켜오던 도덕과 원칙과 가치를 스스로 조금씩 훼손해야만 이 나라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눈물을 머금고 그 길을 걸어 결국 정권교체와 통일의 길을 연 김대중의 그 삶 또한 어떤 의미에서 노무현의 그 삶만큼이나 진정 용기있고 희생적인 삶이 아니었을까.
3. 민주주의는 국민의 수준만큼,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만큼 전진한다. 그것이 진리이다. 오바마가 무브온을 만든게 아니라 무브온이 오바마 대통령을 만들었다. 노무현 신화가 노사모를 만든 게 아니라 노사모가 노무현 신화를 만들었다.
87년 6월항쟁을 이끌어낸 것은, 광주의 피 때문이었다. 광주가 흘린 피 때문에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이 7년동안 쌓이고 쌓여 87년 6월항쟁을 이끌어낸 것이다. 물론 그 배경에는 수많은 시민들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다. 비록 정권교체는 87년에 이루지 못했을 망정, 그 힘이 누적되어 있었기에 88년 여소야대 국회를 만들고, 노태우 정권 하에서 여러가지 개혁적인 조치들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 힘이 무서워서 기득권세력은 90년에 3당합당을 할 수밖에 없었다.
김대중 정부가 집권하고, 인터넷이 대한민국 모든 곳에 깔렸다. 두 번째 시민혁명은 인터넷에서 시작되었다. 인터넷 덕분에 깨어있는 시민들이 노사모라는 이름으로 조직되었고 그 힘이 노무현의 당선과 여중생 추모촛불시위, 그리고 탄핵반대 촛불시위와 17대 총선 개혁세력 장악이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노무현의 죽음과,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의 대한민국 역주행은,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이 노무현 정부동안 여러 가지 이유로 소진되고 바닥났기 때문이다. 만약 이명박 정권이 출범했더라도,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이 80년대와 90년대 초반 같았다면, 또는 2002년~2004년의 그것만 했더라면, 노무현의 비극적 죽음과 이 야만적 문명적 퇴보는 막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다시, 눈을 들어 지금 대한민국에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의 중심이 될만한 곳이 어딘지 살펴본다.
지금 기득권세력이 아닌 정치인들 중 국민들의 지지를 가장 많이 받는 정치인이 누구인가?
지금 현재 자생적인 시민단체 중 자발적 CMS회비가 가장 많이 들어오는 곳이 어디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