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9일-11일 집수리를 직접 실행하였다.
억지로 남에게 떠밀려 참여하였던 영세민 현물 집수리사업 현장에서 부적절한 집수리 상황을 봤고, 그 부적절한 집수리 상황과 노인들의 딱한 처지가 함께 겹치면서, 나는 벼랑에 몰려 있는 나의 처지를 잊고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기둥과 도리, 서클이 부러져 허물어지고 있는 가구는 기둥, 도리 서클을 고쳐주고, 지붕이 새는 가옥은 지붕을, 화장실이 무너진 가구는 화장실을, 방바닥 보일러 호스가 새는 가옥은 보일러 호스를 고쳐주자." 고 나는 지극히 당연한 건의를 했다가

자활후견기관에서 쫒겨 난 뒤로 부패 비리한 자들이 주는 불이익에 굽히지 않고 부적절한 집수리를 실행한 가구에 재수리해 줄 것을 요구함과 동시에 광산구 집수리사업 상 부패 비리를 상부관청에서 감사 및 지도 감독을 요구하는 등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재수리는 커녕 오히려 부적절한 집수리를 실행했던 노인들에게 알게 모르게 불이익만 받게 한 것 같아서 그 동안 무척 심난했었다.
나에게 스물 한분의 노인이 집수리 당시 후견기관이 현장에 가져와 사용한 자재내역을(자인서) 써 주셨었었다.

그 중 한 노인은 영세민 자격을 상실하기도 하였고, 또 어떤 분은 동사무소 담당에게 얼마나 호되게 말을 들었는가 '언능 안죽고 살아 있어서 미안하요 미안하요!' 라고 2007년도 6월에 감사원 감사관과 함께 찾아간 나에게 울먹이기도 했었고 그외 많은 어려움이 나에게 자인서를 써준 노인들께 있었음을 느끼고 있다
그래서 나는 더욱 더 이일을 중단 할 수 없었었다. 그들의 하는 행태가 너무나 고약해서 분노하고 있었고 노인들에게 불이익만 받게 하고 중단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비리가 실은 일당이 지역의 공직 즉, 국회의원, 시장, 시의원, 구청장, 등 선출공직을 독차지하고 있는 일당 지역정치 상황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부패임을 민원제기, 고발 과정에서 점차 알게된 필자는 일당으로 표를 몰아주게 하는 지역정치 사술을 써서 공직을 독차지한 후 부패비리를 만연케 하고도 마치 민주투사인양 하고 있는 지역정치 모리배들이 실상은 우리 광주시민이 그렇게 미워해서 단 한석의 구의원조차도 주지 않고 있는 한나라당과 똑 같은 수구꼴통들임을 시민에게 알리고자 광주시내를 돌아다니며 시위하였다.

그러다 08년 12월 3일부터 2009년 4월 17일까지 시청 앞에서도 시위하게 되었다.
시청 앞에서 펼침막을 들고 시위할 때 그 펼침막에는 광산구 집수리 사업상 비리를 짐작할 수 있는 사진도 있었다.
이때 광주시장 박 광태는 그의 부하직원들을 대리인으로 하여 필자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였는데 고소장의 내용 중 '광산구 집수리 사업은 광주시장과 관계 없는데 마치 광주시장 박 광태가 복지예산을 횡령하는 비리를 저지른 것처럼 복지예산 증발 사진을 내걸고 시위하여 명예를 훼손 하였다.' 는 내용이 있었다.

관련이 있음을 나타내고자 05년에 청와대 비서실에 제기한 필자의 민원에 대하여,
필자에게 허위답변서를 보내준 광주시청 사회복지과 당시 직원들을,
'상부기관이 광주시로 하여금 철저히 재조사하여 적정한 조치를 취하라고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광주시는 아무런 조치도 실행하지 않았고 거기에 나아가 허위 답변서를 보냄으로 공문의 진정성을 저하시켰으니 처벌해 달라.' 는 요지로 허위공문서 작성 및 발송 혐의로 당시 광주시청 사회복지과 직원들을 광주지검에 고발하였다.

피소 당하고 또 나도 고발하면서도 시위를 계속 하던 중 '이렇게 무작정 목숨을 건 단식 시위만 할게 아니라 그 노인들의 가옥을 내가 수리를 해드리자' 라는 작심을 하였었고 필요한 연장과 장비를 구입하기 시작했다.
그 가구들의 집수리를 내가 직접 해드리기를 작정하였지만 일을 못하게 된지 벌써 6년인지라 내 사정도 있어서 두달 동안 조금씩 조금씩 준비하였다.

그동안 검찰은 허위공문서 혐의로 고발 한 것을 '광산구청 직원이 작성하여 보고한 공문을 근거로 답변서를 작성한 것으로 광주시청 직원에 대해 달리 죄를 인정할 것이 없다.' 며 각하 처분을 하였다.

그런 검찰을 반박하여 광주고검에 항고하고자 검찰의 수사기록을 열람하던 중 얻게 된 문서 즉, '34가구 부적절한 집수리 내역에 대한 조치 결과' 서를 보니 정말 황당하였다. 조치결과 내용을 보면 '부재중 확인불가' 가 10번 가구주가 만족하고 계신다. 민원을 제기한 적이 없다. 손대면 더 허물어 질까봐 손 못 댔다. 예산이 부족해서 못했다. 이런 식이었다.

이 글을 읽어가기 전에 먼저 조치결과서를 해석하자면 04. 3. 조치결과 는
03년 11월에 필자가 보건복지부에 제기한 민원에 대해 광주광산구가 보건복지부를 경유하여 필자에게 보내준 답변서에
'수리가 시급한 집수리사항을 방치하고 도배, 장판 위주의 단순집수리사업을 실시한 사항 => 보수공사가 필요한 가구에 대하여는 (04년) 3월까지 완료토록 조치'
라는 답변을 보내 주었는데 이 답변에 대해 조치한 날자와 내용이고

04. 10. 12. 조치결과 는
04년 9월에 필자가 부패방지위원회에 제기한 민원에 대해 광주광산구가 광주시를 경유해 보내준 답변서에
'9.정부돈은 본사람이 임자여 => 집수리사업 대상 가구중 하자보수 완료가구는 제외하고 민원인이 집수리사업 내역에 문제를 제기한 가구 중 미확인 세대에 대하여04. 12월말까지 추가확인 및 하자보수 완료토록 조치함' 라는 답변에 대해 조치한 날자와 내용이다.

직접 집수리를 해드리기로 작정하고 대충 준비가 된 5월 6일 집수리 해드릴 가구를 찾아다니다 대산동 김 방순 씨 가구 도착하니 마침 김 방순 할머니께서 계셨다.
가옥의 무너진 상태를 살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할머니께 여쭸다.

"04. 3월에 공무원이 나와서 부엌 무너진 곳을 수리할란다 고 하니까 할머니께서 기둥을 만지면 집이 무너진다고 기둥을 만지지 말라고 하셨어요?" 라고 여쭸다.
예산대로 김 방순 할머니께서 다음처럼 말씀하셨다.
"무너지는 집 고쳐주면 좋다고 하제 내가 왜 만지지 말라 고 그랬것소?"
"그러면 04. 10. 12일에 공무원이 나와서 이 집 수리에 대해 문의할려고 했는데 할머니께서 안계셔서 못했다고 합니다. 할머니 어디 멀리 가 계셨던가요?" 고 여쭸더니
내가 가봐야 노인당에 가있거나 멀리 가봐야 동네나 돌아 다녔을 것이고 멀리 간 적이 없어요 그리고 통장님께 말하면 내가 어디 있는지 금방 알텐데 왜 나를 못 만났을까요?" 하고 되레 나에게 물으셨다.

이 가구의 수리를 하기로 하고 필요한 자재양을 계산하니 다음의 장비와 자재가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장비 : 서포터 4개 또는 5개, pt아시바 1개
자재 : 9자 세치각(현장에서 오비끼,산승각으로 불리는 목재) 3개, 한치 오푼 각(현장에서 승고각으로 불리는 목재)5개, 7자 대골스레트 2장, 벽돌 200장, 몰탈 7포
그 외 못, 반센, 나사 등 부자재 였는데 이 자재를 8일 저녁에 화물차를 이용해 할머니 집 아래 언덕에 운반했다.

5월 9일 아침 자재를 할머니 집으로 모두 올리고 수리를 시작했다.

부엌안 무너진 도리를 들어 올리는 작업을 쉽게하기 위해 발판을 설치해 올라서서 용마루를 해체 하고

서포터와 자키를 이용해 부엌 안의 무너진 도리를 들어 올리고

들어올린 도리 밑으로 들보를 설치하고 도리를 들보위에 얹히고 9일 작업을 마쳤다.

작업 이틀째인 10일에 한 작업은 부러진 서클 대신 두꺼운 목재를 넣어주고

휘었었던 용마루 선을 대충 마추고

무너진 부엌 담을 벽돌로 쌓고 10일 작업을 마쳤다.

작업 사흘째인 11일 한 작업이다.
들보를 설치하면서 의외로 목재가 하나 더 소요되었다.
그래서 기둥으로 세울 목재가 없어서 근처 산에 가서 나무하나 베어 와서 기둥을 세웠다.(화물차가 있으면 가서 사오겠는데 운송수단이 없어서...^¿^)

서툴지만 미장 작업도 하고 아래의 작은 구멍도 막아보고

이렇게 홀로 3일 작업하여 부엌이 더 무너지지는 않게 수리하였다.

해놓고 보니까 전면의 흙벽도 손질하고 페인트 칠도 하고 기둥도 반듯한 목재로 세워 드렸으면 더 좋았을 것을 하고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하지만 나의 사정으로 하여 더 이상 수리를 해 드릴 형편이 못되었다.
그래서 다음을 기약하고 이달 집수리 봉사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