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22일 미디어 관계법 강행처리 와중에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도 곁가지로 끼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로써, 4월 30일 처리된 은행법 개정안과 함께, 이명박 정부의 금산분리 완화 정책의 1단계가 마무리되었다. 1930년대 대공황 이래 최대의 경제위기를 맞아 세계 각국이 금융규제를 다시 강화하고 있는 마당에 ‘나 홀로 역주행’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대담무쌍함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감독당국을 믿으라고? 혹세무민하지 말라
금산분리 규제는 두 가지 측면으로 이루어진다. 하나는 산업자본이 금융기관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하는 ‘소유규제’이고, 다른 하나는 금융기관이 산업자본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하는 ‘자산운용규제’이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이, 금산분리 규제 역시 나라별⋅업종별로 그 형태나 강도가 상이하다. 유럽대륙 국가들보다는 미국⋅영국이, 비은행 쪽보다는 은행 쪽의 규제가 더 강하다. 이것이 종종 심각한 오해와 왜곡을 초래한다.
예컨대, 미국에서도 증권⋅보험 등의 비은행 관련 법률에는 소유규제와 자산운용규제 조항이 없다. 그럼 미국도 비은행 부문에서는 금산분리 원칙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이번에 정부여당이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을 밀어붙이면서 내세운 ‘아전인수’격 해석과 ‘혹세무민’격 논거가 바로 이것이다.
물론, 절대 그렇지 않다. 사전적 금지 방식의 규제가 금산분리 원칙을 실현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일 수는 있으나,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금융감독당국의 엄격한 사후 감독, 금융기관 경영진에 보다 강화된 의무를 부과하는 회사법 체계, 그리고 집단소송을 비롯한 다양한 구제수단 등등이 모두 금산분리 원칙을 구성하는 핵심요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선진국에서는 소유규제 및 자산운용규제 조항의 유무에 관계없이 금산분리 원칙이 관행적으로 관철되는 것이다. 여기에 유럽대륙 국가들의 경우에는 금산결합에 따른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는 노동자 경영참가 및 노사정위원회 등의 사회적 통제장치도 포함된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사전적 규제를 대체할 사후적 감독장치, 사법적 구제제도, 사회적 관행이 얼마나 유효하게 작동하고 있는가에 있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의 금융감독 능력도 크게 개선되었으니, 이를 믿고 일단 규제를 완화해보자고 한다. 이거야말로 국민경제적 위기를 초래할 위험한 발상이다. 세상에서 가장 엄격한 금융감독장치를 갖고 있다는 미국도 서브프라임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지 못했다. 하물며 우리나라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렇게 믿을 만한 금융감독장치가 있었는데도 400만명의 신용불량자를 만들어낸 카드대란의 낌새도 몰랐고, 온 나라를 버블로 들끓게 했던 부동산담보대출의 급증을 방치했다는 말인가? 웃기는 일이다. 금산분리 등의 금융정책은 경직된 이념을 가지고 밀어붙일 일이 아님을 정부여당은 명심해야 한다.
재벌특혜가 아니라고? 거짓말하지 말라
미디어 관계법과 마찬가지로, 금산분리 완화 정책도 재벌, 특히 삼성그룹에 대한 특혜 시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정부여당은 금산분리 완화가 금융산업의 경쟁력 제고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일 뿐이고, 결코 재벌특혜는 아니라고 강변한다. 과연 그런가? 앞서 필자는 이번 은행법⋅금융지주회사법 개정을 통해 금산분리 완화의 1단계가 마무리되었다고 평가했다. ‘완성’이 아니라 ‘1단계’라고 한 이유에 대해서는 부연설명이 필요하다.
첫째, ‘소유규제 완화’, 즉 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소유한도가 4%에서 9%로 상향조정되었다. 정부여당은 9% 지분만으로는 재벌이 은행을 사금고화할 수 없으므로 재벌특혜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물론 9%로 은행을 계열사처럼 지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룹이 부실징후에 빠지거나 적대적 M&A 위협에 처한 경우와 같은 비상 상황에서 은행의 9% 대주주 지위가 주는 막대한 편익을 마다할 재벌은 많지 않다. 사금고화의 범위는 정부여당이 주장하는 것보다 훨씬 넓고, 금융감독당국이 그 위험을 사전에 다 예방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그 위험을 포착했을 때는 이미 너무 늦은 것이다.
한편, 소유규제 완화에서 보다 심각한 위험은, 산업자본이 PEF(사모투자전문회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은행경영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데 있다. 이번 법 개정을 통해 산업자본이 단독으로는 18%, 합쳐서는 36%까지 출자한 PEF는 산업자본이 아닌 것으로 간주되고, 따라서 은행 지분을 9% 한도를 넘어 100%까지 소유하는 것이 허용되었다. 세상에 이런 은행법을 가진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제일은행을 인수한 뉴브리지캐피탈, 외환은행을 인수한 론스타 등 외국계 PEF의 문제로 난리를 치른 게 엊그제인데, 국내 재벌이 주도하는 PEF는 괜찮다는 말인가? 정부여당은 단기기억상실증 환자인가? 결론적으로, 재벌이 은행을 직접 지배하기는 어렵다는 점에서 이번 법 개정은 1단계일 뿐이지만, 간접지배를 허용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험하다.
둘째, ‘자산운용규제 완화’, 즉 비은행지주회사가 금융과 비금융을 동시에 자회사로 지배할 수 있게 허용한 것은 특히 삼성그룹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삼성그룹 승계구도의 핵심은 ‘이재용씨 → 삼성에버랜드 → 삼성생명 → 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출자구조인데, 이를 그대로 유지한 채 지주회사 전환이 가능하도록 해달라는 것이 삼성의 요구였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이번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이 삼성의 요구를 100% 충족시킨 것은 아니다. 보험지주회사(에버랜드) 밑의 보험자회사(삼성생명)가 비금융 손자회사(삼성전자)를 지배하는 것은 여전히 금지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1단계다.
물론, 굳이 하고자 한다면, 삼성생명과 삼성전자를 동시에 자회사로 두는 지주회사 전환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즉 이런 방식은 20조원 이상의 천문학적 금액이 필요하다는 삼성 측의 주장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회사분할 및 주식교환 방식을 사용해서 LG그룹과 SK그룹이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지주회사로 전환했듯이, 삼성그룹 경우도 별반 다르지 않다. 다만, 주식이동 과정에서의 세금 문제 이외에도, 삼성생명의 유배당 보험계약자 문제 등 복잡한 법률적 논란거리가 발생할 소지가 있다. 삼성SDS 사건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이건희 회장의 입장에서는 또 다른 법률적 위험을 유발할 수 있는 지주회사 전환을 서둘러 시도할 가능성이 크지는 않다고 본다. 그래서 1단계다.
그러나, 금융지주회사 제도에서 금산분리의 둑은 이미 무너지기 시작했고, 더구나 동일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감독장치는 훨씬 미약한 공정거래법상 일반지주회사 제도의 개정안이 국회에 상정되어 있는 현 상황에서 삼성의 요구가 실현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볼 수도 있다. 그래서 1단계일 뿐이지만, 충분히 위험하다.
이제부터가 문제고, 내용이 문제다
야당과 언론노조, 그리고 시민단체가 총력을 기울어 저지투쟁을 했던 미디어 관계법이나, 속된 말로 아야 소리 한번 못 지르고 곁가지로 통과된 금산분리 완화 관련법이나, 최종적인 결과는 별 차이 없어 보인다. 1단계가 마무리되었지만, 보수진영에게는 여전히 미흡하기 짝이 없을 것이고, 따라서 진보진영에게는 아직도 막아내야 할 위험요소가 산재해 있다. 갈 길이 멀다. 투쟁방식도 중요하지만, 내용을 채우는 것이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지난 6월 미국의 오바마 행정부가 발표한 금융개혁 방안은 금산분리를 불변의 원칙으로 재천명하고, 나아가 그동안 상대적으로 규제가 약했던 비은행 부문에 대해서도 통합감독을 대폭 강화할 것을 분명히 했다. 미국만이 아니라 G20 회의 등을 통해 전 세계 모든 나라가 의문이 여지없이 합의한 사항이다. 이는 이명박 정부의 금산분리 완화 정책이 2단계로 넘어가는 것을 저지함은 물론, 1단계 조치의 허점들을 메우는데 유리한 환경이 되었다. 하지만 이것을 국민들에게 설득하고 제도적 성과로 구체화하는 일, 이는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우리의 과제이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 경제개혁연대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