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모독하는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보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마지막 일기에는 이명박 정권의 민주주의 후퇴를 걱정하고 촛불시위의 의미를 되새겼으며, 용산참사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해 슬퍼했다. 노무현 전대통령 서거의 책임으로 현 정권과 검찰을 지목했다. 현 정권의 대북정책을 비판하고 오바마의 대북정책을 걱정했다.
그러나 KBS에는 이런 내용의 보도는 전혀 없었다. 김대중 전대통령의 북한 핵실험을 경고하는 부분만 보여주면서 김대중 전대통령의 '미흡했지만 후회없다'는 말을 소개하며 마무리한다. 정연주 전 사장 무죄판결로 정권의 불법 장악이 증명된 KBS에서는 여전히 정권이 보고자 하는 프레임으로 보도하고 있다.
방송장악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KBS, 그것이 사실이라면, 고인이 전하는 뜻이 무엇인지 한 점의 왜곡도 없이, 국민적 관점에서 보도해야 한다. 그것이 공영방송이다. 그러나 KBS를 비롯 여러 언론에서는 고인이 전하는 뜻에는 관심 없다. 고인을 찾아간 고위직 인사, 그리고 전두환 등의 이름들을 일일히 나열하면서 '화해와 용서'를 강조하기 바쁘다.
KBS 뿐만이 아니다. 조선일보 사설에서도 김대중 전대통령이 남긴 말을 악용하기 바빴다. 화해와 용서를 통한 국민통합은 잘못을 제공한 측에서의 진정한 사과와 실질적 반성이 뒤따라야 가능하다. 김대중 전대통령이 '화해와 용서'를 말할 수 있는 것은 독재 권력으로부터 핍박을 받아온 당사자였기에 가능하다.
독재 거대권력에 편승하고 지역감정과 색깔론 등의 부당한 의제를 생산한 조중동 등의 거대신문들은 '화해와 용서'를 말할 것이 아니라 그동안의 잘못됨에 대한 반성부터 보여야 할 일이다. 당장 자신들의 미디어법의 욕망부터 버려야할 일이고 미디어법 철회를 논조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들 거대신문들은 여전히 이에 대한 반성이 없다. 작금의 현상을 교묘히 왜곡한다. 김대중 전대통령이 보여온 '의회주의' 정신을 자신의 관점으로 교묘히 해석하고 악용한다. 국민의 부정적 여론에도, 여야 합의도 없이 날치기를 강행한 것은 집권세력이다. 야당의 미디어법 투쟁은 청와대와 여당의 '의회주의'를 무시한데서 비롯되었다. 그런데도 야당에게 '의회주의'를 묻는 것은 김대중 전대통령의 참뜻을 왜곡한 모독이 아닐 수 없다.
어떤 언론에서는 박정희를 미화하면서 김대중 전대통령 추모하는 칼럼이 보이고 있다. 박정희의 경제적 공로와 함께 김대중의 정치적 유산을 계승하자는 주장이다. 정작 김대중 전대통령이 남기고 전한 의미에는 관심이 없다. 조중동외에도 한국일보,국민일보 영남의 지역언론이 그러하다. 한겨레와 경향신문등을 제외한 그 어떤 언론에서도 김대중 전대통령이 남긴 뜻과 의미를 되새겨 보지 않는다.
경제 성장과 함께 민주주의 발전을 병행하지 못했다면 존경받을 만한 대통령이 못된다.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이 함께 병행하는 것은 그만큼의 많은 인내와 원칙을 요하기에 존경 받아야 한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짓밟으면서까지 경제의 틀을 만들었다면 그것이 어찌 존경받을 만한 대통령이고 유능이라 할 수 있을까.
18년 장기집권 그 자체만으로도 반민주주의 독재이이지만 18년 동안의 장기집권에도 박정희는 민주주의와 경제 발전을 함께 병행하지 못했다. 18년동안의 장기집권에도 경제적 성과는 오히려 그 정도 밖이다. 오히려 빈부격차를 키웠다. 농어촌은 더욱 더 피폐되었다.
박정희 정권 당시의 경제개발 기획은 박정희가 쿠테타로 쓰러뜨린 '장면 내각'에서부터 기초하였다. 누가 집권을 하더라도 그 시대의 필요에 따라 경제적 인프라를 구축하려 했을 것이다. 그 모든 것을 박정희의 공로로 돌리는 것은 대한민국의 국민성을 우롱하는 처사이고 노예적 근성이다. 경제는 누구에 의해 망할 수는 있으나 누구에 의해 재건될 수 있는게 아니다.
박정희가 아니었다면 오히려 민주주의가 병행되고, 재벌위주 경제로 시작되지 않을 수도 있다. 박정희는 재벌 하나가 무너지면 나라경제가 휘청거리는 구조적 한계를 쌓았다. 박정희는 서민경제가 아니다. 물론 그 어떤 대통령도 '서민경제' 성과에 자신하지 않지만 이명박 정권의 민주주의 후퇴 상황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짓밟았던 박정희는 김대중 전대통령과 비교될 수가 없다.
인동초와 노공이산
'김대중 전대통령' 아니고서는 대한민국 현대사를 논할 수 없다. 민주화 역사의 중심이었고 인권을 신장시켰다. 최초의 남북정상회담과 노벨 평화상, 외환위기 극복과 정보통신 발전 등의 업적을 볼때 김대중 전대통령의 서거에 '국장'은 마땅하다.
현충원 국립묘지에 비로소 민주 정권의 지도자 이름이 새겨졌다. 두 독재자 묘지 사이의 '김대중'은 상호 모순의 논란으로 비추어지지만 달리 생각하면 그것 또한 역사적 의미이고 교훈이다.
그러나 여기까지다. 현충원 국립묘지의 독재자 이름은 박정희. 이승만으로 끝날 일이다.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등의 이름까지 새겨져 있는 한, 현충원의 격상과 가치는 땅에 떨어지는 일이다. 그렇게 되면 김대중 전 대통령의 묘지만이 '군계일학'의 가치로 빛날 것이고, 봉하마을의 아주 작은 비석만이 우리의 명소로 자리잡게 된다.
김대중 전대통령은 필자가 처음으로 좋아했던 정치인이다. 아무런 연고도 없고, 고향도 달랐지만 그 분을 좋아했다. '우리가 남이가'의 정서도, 색깔론도 통하지 않을 만큼 김대중은 나에게 탁월한 식견의 보편 타당한 존재로 다가왔다. 그에 대한 독재권력의 부당한 압박과 3당합당 야합은 그를 더욱 더 존경스럽게 했다
'색안경'끼지 않고 보게되면 김대중은 사상과 이념을 넘은 보편 타당한 존재로서 일반인들이 충분히 존경할 수 있는 분이다. 지역감정과 색깔론 편견에서 자유로운 청년의 맑은 눈으로 김대중을 보면 아무 이상이 없다. 도리어 존경할만하다.
김대중 전대통령은 왜 이러한 부당한 시선을 받아야 했는가. 김대중 전대통령은 기득권 세력들의 잘잘못을 지적하는데 서슴이 없다. 기성 정치인들 그 누구도 범람할 수 없는 명료한 논리와 탁월한 식견의 통찰력을 보여주었다. 지역을 넘은 대중성이 만만치 않다. 그들은 그것이 두려웠다. 그를 둘러싼 정치적 정적들은 지역감정과 색깔론의 테두리로 집어 넣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의 밥그릇이 위험하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 정권 모두가 그러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라해서 오점이 없는게 아니다. 김대중 전대통령 자신도 지역감정과 색깔론의 편견이 없는 속에서 공정하게 그 공과를 평가 받고자 했다. 그러나 현실은 아직도 그 여파가 남아 있다. 정당한 비판의 목소리마저 지역주의로 오해를 사게하는 역작용이 있을 만큼 김대중에 대한 우리사회의 잘못된 이지메는 뿌리 깊다.
영남 지역은 더했다. 평가의 기준이 매우 부당했다. 노무현은 그래서 참을 수가 없었다. 앞장서서 김대중을 변호했다. 배신자로 낙인 찍혔다. 3당합당 야합 반대부터 그러했다. '우리가 남이가' 정서로, 민주당 깃발이라는 이유로 노무현 전대통령을 여러 번 낙선 시켰다. 종로를 버리고 지역감정에 도전한 노무현, 국민들은 이에 감동했다. 그리고 대통령이 되었다.
민주당의 불모지 영남에서 노무현은 당당하게 김대중 지지자임을 역설하고 대변했다. 필자는 노무현을 통해 감정이입이 되었다. 내가 그를 따른 것이 아니다. 노무현 그가 나를 따른 것이다. 국민의 보편적 상식에 따라갔다. 영남지역 정치인으로서 3당합당을 반대하고 김대중을 역설했다.
행동하는 양심으로 사람사는 세상
돌아보면 김대중 전대통령의 오점은 정계복귀 뒤의 분당이다. 그 과정에서 알 수 없는 텃새도 보였다. 답답했다. 전국정당의 길에 찬물을 얹은 텃새였다. 양김분열은 오히려 이해된다. 그 당시 내가 그 자리였어도 김영삼보다 '김대중'이다. 이후의 YS의 정치행보가 입증되었다.
답답했다. 돌아온 DJ의 비례대표 17번 배정도 감동이 되지 않았다.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분들이 함께 하지 못하고 왜 흩어지는 것일까? 텃새를 버리고. 좀 더 포용하면서 지혜롭게 할 수는 없었을까? 꼭 분당이어야 했는가. 집권을 하여도 전국정당이 되지 못하면 힘을 얻지 못할까 걱정이었다. 반면에 DJ에 대한 지나친 악감정의 몇몇들도 이해가 안되었다.
97년 대선, 시간이 지나 김대중 외에는 대안이 없었다. 그럼에도 몇몇은 '3김정치'청산 프레임에 빠져 한나라당을 택했다. DJ에 대한 감정에 빠져 한나라당으로 건너간 것은 이를 핑계삼아 '초가삼간' 태우는 변절이고 한심함이다.이런 이유에서 노무현이 김대중과 함께 했으면 했다. 역시 그는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민주당과 노무현은 그 이후,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여러가지 잡음과 반목이 생성되었다. 민주당 집권 이후 극복해야할 대상들이 속출된다. 그 이후 정치개혁 차원에서 열린우리당이 창당되었고 민주당과 경쟁하였다. 이 과정에서, 노선의 차이에 의해 김대중 전대통령과 노무현 전대통령은 서먹서먹해져 갔다. 어찌보면 서로의 갈길에 발목을 잡는 인상마저 느꼈다. 필자 또한 김대중 전대통령을 보면서 섭섭했다.
그러나 지금은 김대중 전대통령께 너무나 미안한 마음이다. 그 분을 지지했던 동기가 오랜 세월속에서, 여러 정치적 논란 과정에서 잊혀진 것 같아 미안하다. 대통령 서거에 와서야 그 분을 지지했던 그 감정이 다시 되살아났다. 새롭게 이해되기도 한다. 세세한 노선의 차이로서 한때 글로서 그 분을 쏘아 붙였던 게 너무나 미안하다.
미안했지만 나의 감정 진행은 틀리지 않았다 생각한다. 이 모든 과정을 종합적으로 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김대중 전대통령의 발자취, 노무현 전대통령의 발자취를 조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정치권은 저마다 자기식의 해석대로 이용해서는 안될 것이다. 민주당의 경우가 그렇다. 우선 김대중 전대통령이 쌓아온 민주화 정치역정의 정통성을 계승하고 노무현 전대통령이 하고자 했던 정책 정당과 참여정당, 그리고 전국정당과 지역주의 없는 정치에 노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