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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 마음 하나 중하지. 니 마음 하나 중하다 말이다. 누가 그리 알뜰하게 생각하는 남자가 있나?"
청년은 서랍을 열고 봉투를 꺼내어 고수머리에게 주며,
"자, 이거 간수해라. 돈하고......"
"음."
고수머리는 호주머니에 그 봉투를 집어 넣는다.
"두 시 차가 곧 올기다. 그리고 요다음 일요일에 가겠다고 편지에도 썼다만, 최 선생님한테 잘 부탁해 놨으니까 미안하게 생각할 것 없이 주사는 꼭꼭 맞으라고 니가 일러라."
두 시 차가 내려왔다.
"그라믄 갔다 올께."
고수머리는 쫓아 나간다. 버스가 가게 앞을 잠시 가리고 멎어 있다가 떠났다. 청년은 멍하니 창구에서 밖을 내다본다.
"여, 딱지 하나 주이소."
아낙이 와서 말했다. 청년은 돈부터 내라는 재촉도 않고 얼른 딱지를 밀어낸다. 돈이 들어왔다. 아낙은 딱지를 붙이고 편지를 도로 디밀었다. 청년은 그것을 편지통에 집어 넣고 창구의 문을 닫아 버린다.
"왜 안 오지요? 우편 배달부 말예요."
영숙이 말을 걸었다.
"아참, 안 오는군요. 그럼 다음 네 시 버스로 오겠군요."
청년은 건성으로 대꾸한다.
"그럼 제가 갈 걸 그랬네요."
"기다리신 김에 더 기다려 보십시오. 엇갈리면 아무래도 모레 돈을 받게 되니까요."
영숙은 다시 창 밖의 가게를 가만히 바라본다. 아낙이 커다란 광주리를 들고 가게 앞으로 간다. 그의 아들인 듯 싶은 노타이 셔츠에 감색 작업복 바지를 입은 청년이 그를 따라간다. 어깨가 떡 벌어지고 얼굴은 햇볕에 잘 그을러서 꺼멓다. 입을 벌리고 웃는다. 이빨은 하얗게 두드러져 보인다. 가게 마루에 걸터앉은 그들은 뭐라고 가겟집 여자를 보고 이야기한다. 가겟집 여자가 진열장 문을 열고 빨간빛, 남색, 노랑색, 연두색 네 가지 비단을 꺼내어 두르르 편다. 서로 뭐라고 한참 지껄인다. 청년은 포개 놓은 다리 위에 주먹 쥔 두 손을 얹어 놓고 비단을 넌지시 바라보고 아낙은 펼친 천을 만져 보고 또 만져 본다. 가겟집 여자는 긴 자를 들고 웃으며 또 뭐라고 이야기 하는 모양. 청년은 슬그머니 얼굴을 돌리고 외면을 하며 웃는다. 아마 청년을 보고 농을 걸었던 모양이다. 청년은 장가들 신랑임에 틀림없다. 가겟집 여자는 노랑 비단을 두동강이로 낸다. 착착 접어 놓고, 다시 다홍빛 비단을 끊는다. 남색과 연두 비단도, 그리고 속치마 안감, 동정까지...... 가겟집 여자는 아주 기분이 좋다. 아낙도 기분이 좋고 청년도 기분이 좋다. 아낙은 주머니를 끌러서 돈을 꺼내어 침을 묻혀 가며 센다. 센 돈을 또 세고 세 번 노랑 끈으로 묶어 내놓으며 또 웃는다. 아낙과 청년도 따라 웃는다. 청년은 웃다가 거리를 바라보면서 또 웃는다. 영숙도 슬그머니 웃는다.
꿈을 깨듯 전화 벨이 요란스럽게 울린다. 우편국의 청년이 수화기를 든다.
"아, 네네. 진주라고? 음 상수가? 웬일고?"
청년의 얼굴이 흐려진다.
"응, 그래. 뭐? 오늘 난 못 가. 삼칠이한테 돈 하고 편지 부쳤다. 요다음 토요일에 갈께."
"뭐, 봉애가 뭐?"
사무원의 얼굴은 창백하게 변했다.
"죽었다고......"
청년은 수화기를 든 채 영숙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아낙과 아들은 혼수감을 들고 나란히 걸어 나왔다. 그리고 하늘을 한번 올려다본다. 유리창에서 그들은 사라지고 울긋불긋 그림같이 가게의 모든 빛깔들이 번져나는 듯...... 여자는 털개를 들고 상품 위에 먼지를 떤다.
* 박경리, '풍경(A)'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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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돈이 오고가는...
사람이 살아가고 사람을 살리기 위해 쓰이는 돈.
헌데, 지금의 우리 혹시
돈이 살아가고 돈을 살리기 위해
사람이 쓰이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하다.
혼자 나선 길이라도 누군가 기다려주듯,
가던 길을 멈추고 잠시 뒤돌아보곤 한다는 어느 인디언 부족.
가슴 속에 깃든 마음
길을 잃지 않았나,
뒤를 돌아본다.
오후, 한참동안
1층에서 꽝꽝- 두드려대던,
풍경소리처럼 울려퍼지던 그 망치소리 떠올리며...
문득,
지난해 동생의 남자친구가 직접 바느질해 만들어 선물해주었다는
땡땡이 무늬 천의 소지품 케이스가 생각난다.
혀암 말기시라던 한 어머니가 지난해 초
내게 선물해주셨던 손수 바느질해 만든 냄비장갑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