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 구 터미널과 주공 아파트 앞 집중 유세를 보고 왔습니다. 이해찬 총리와 김두관 장관 그리고 송후보의 연설이 있었고 안희정최고위원은 머리숙여 인사만 했습니다. 선거법에 찬조연설원은 두 명만 가능하다네요
편도1차선 도로 사거리 한 쪽에서 맞은편 인도를 바라보며 유세를 하였습니다. 본래 유동 인구가 별로 많지 않은 곳인지 머물러 들어주는 사람이 별로 없었습니다. 연설 내용이 좋아서 일반시민들이 서서 듣기만 하면 바람이 불겠는데 안타까운 일입니다.
지역조직도 가동할 형편이 못 되는 듯 싶었습니다. 길 가던 사람이건 주변 상가에 사람들이건 먼저 우리편이 대강 이 삼 백명쯤은 둘러서야 시민들이 같이 들어주는 법인데 우리 식구가 너무 적었습니다. 수첩든 실무자에게 아쉬움을 토로했더니 한다라당 유세도 사람이 모이지 않는다며 양산의 지역분위기가 이런 것 같다는 답이었습니다.
양산만의 지역적 특성이 아닙니다. 어느 곳이든 무슨 선거든 우리편이 먼저 모이지 않고는 일반 유권자들이 모이지않습니다. 영남의 한나라당은 절대로 스스로 선거 분위기를 띄우지 않습니다. 한나라당은 조용하게 투표날이 다가오기를 원하고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박수와 함성 속에 울고불고 해야만 이깁니다.
연설회장이 썰렁하면 안됩니다. 우리편이 더 필요합니다. 돈이 너무 없어 그렇다면 십시일반 후원합시다. 어떤 사람이 말했습니다 그동안 지역구 관리를 너무 안해서 그렇다고. 사실일 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말이 사실이라해도 송인배후보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습니다.
송인배-사업가도 정치인도 아닙니다. 남해 할아버지 100억, 아파트 사업자 200억 이런사람들 같은 재산가도 아닙니다. 노무현 대통령님의 수행비서였고 청와대의 비서관이였습니다. 스스로 돈을 만들 수도 자기 사람을 챙길 수도 없었습니다.
미리미리 챙겨서 돕지못한 우리들의 잘못입니다. 나이 42살 벌써 세번째 출마입니다. 두 번은 노무현 대통령님의 뜻을 따라서 이번에는 참여정부인사들의 합의된 뜻에 따라서 출마했습니다.
노무현대통령을 다시살리기 위해서, 참여정부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서, 노무현대통령께서 그토록 이루고싶어하셨던 사람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출마한 것 입니다.
돈이 없어도, 가동할 조직이 넉넉하지 않아도, 장차관의 경력이 없어도, 주요당직을 맡은 적이 없어도 우리 모두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진 것입니다.
88년 변호사 노무현이 첫 출마를 하셨을 때 송인배후보는 부산대총학생회장으로 머리띠 질끈 동여매고 찬조연설을 했습니다.
대학 3학년때 맺은 이 인연으로 시작해서 그의 청춘을 노무현대통령을 모시는데 바쳤습니다. 끝발좋은 수행비서라고 시기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윗 분을 수행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지 몰라서 그렇습니다.
귀는 있어도 입은 없는 수행비서의 고달픔을 묵묵히 이겨내며 변명도 항의도 해본 적이없습니다. 비서진의 막내라 큰소리 한 번 쳐보지도 못 했고 청와대 비서관도 층층시하에서 권력도 아니였고 영화도 아니였습니다.
아이들은 어리고 앞으로 뭘해서 먹고살지 막막하기만한 대통령님의 막내 비서관이 거대여당의 우두머리와 마주 서 있습니다. 노무현대통령님의 첫 출마 때 찬조연사 송인배가 대통령님 돌아가신 후 처음으로 치루는 선거에 후보가 되어 출마하였습니다.
용장 밑에 약졸없다고 송인배후보는 대장의 이름에 걸맞게 잘도 싸우고 있습니다.
신언서판. 어디 한 군데 빠지는 것이 없습니다. 인물도 당당함도 공손함도 연설솜씨도 목소리도 다른 후보를 압도하고 남습니다.
그러나 오늘도 송인배후보는 외롭습니다. 선라는게 세력싸움이고,돈 싸움이고,조직싸움이지 않습니까? 단기필마로 혼자 싸우게 해서는 안 될 입니다. 지금 있는 식구들만으로 고군분투 계속 싸우게 해서는 안 됩니다. 다 같이 힘을 모아 싸워야만 합니다. 다행히 승리의 조짐이 보이고 있습니다.
몇 달에 걸쳐서 온갖 애를 다 쓰고있는 남해할아버지는 공천 이후는 지지율이 꿈쩍도 안 하고,아파트 업자는 지지율이 하루가 다르게 줄어들고 있는데 우리 송인배후보의 지지율은 하늘이 도와 느리지만 꾸준히 상승해서 이제 역전을 노려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노무현대통령님께서 당신의 막내비서관의 선거를 도우러 오신 게 분명합니다. 몇 안 되는 사람들이 저 거대한 권력과 조직과 돈에 맞서서 적수공권으로 싸우는데도 역전을 눈 앞에 두고 있다니 선거이론에도 없는 현상입니다.
우리 대통령님께서 천 개의 바람이되어 친히 양산에 오셨습니다.
바람으로 오신 대통령님께서 손짓하여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당신의 육신없어심을 슬퍼하며 당신의 몸이 되어줄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일주일입니다. 열 일을 제쳐두고 달려가서 우리 대통령님의 몸이 되어드립시다. 대통령님께서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던 생애에 마주했던 적들이 남해할아버지 속에 고스란이 살아있습니다.
군사독재 민주정의당이 민정당 대변인할아버지 속에 3당 야합 민주자유당이 민자당 법무장관할아버지 속에 당신을 부엉이바위로 밀어부친 냉혈정권과 한나라당이 당대표할아버지 속에 모든 적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살아있습니다.
투표로 복수하자! 한 표의 기적!!!
이광재 안희정 정윤재? 사람이 만든 선거 구호가 아닙니다. 대통령님께서 친히 당신의 뜻을 밝히신 것입니다. 독재와 야합, 지역주의와 구태정치- 남해할아버지로 상징되는 이 모든 것을 일거에 심판하러 복수의 칼을 뽑아 들었습니다.
투표로 복수하자! 한표의 기적!!!
저 한나라당의 깨끗지 못한 입들이 내뱉는 그런 류의 복수가 아닙니다. 멋쟁이 우리의 대통령께서는 송인배 후보의 승리를 통하여 사람사는 세상의 꿈을 이어가고 싶어하십니다. 인정많은 우리 대통령께서는 송인배후보의 승리를 통하여 그 날 이후 시도때도 없이 눈물짓는 맑은 영혼을 가진 사람들의 슬품을 위로해 주시고자 하십니다.
함께 길을 가는 동지들에 대한 사랑이 남다르신 우리 대통령께서는 송인배 후보의 승리를 통하여 당신의 막내 비서관이 소리내어 실컷 울게하고 싶어 하늘의 보검을 뽑아들고 친히 양산으로 오셨습니다.
《그 날 꽃상여 산 넘어서 간 다음
내 눈동자 속에는 빈 하늘만 남드니,
매 만져 볼 머릿카락 하나 없드니,
비만 자꾸 오고.....
촛불밖에 부엉이 우는 돌문을 열고 가면
강물은 또 몇 천린지
한번 가선 소식 없든 그 어려운 주소에서
너 무슨 무지개로 내려 왔느냐. 》 - 부활
이 강산이 온통 눈물에 젖었던 5월 그때에 당신의 막내 비서관 송인배는 울지도 못했습니다.
아직까지도 제대로 울어보지 못했습니다. 상복을 입고 돌아 온 양산에서 슬퍼도 웃어야하는 삐에로로 한 여름을 지냈습니다. 대통령을 가까이서 모셨던 분들은 아마 거의 모두 제대로 울어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대통령님을 멀찌감치서 바라보기만 하며 살았던 저 같은 사람도 사흘만에야 눈물이 났습니다. TV 자막을 볼 때도,문재인실장님과 병원장님께서 공식발표를 할 때도,병원 11 층에서도,영안실로 내려가서도 울지 않았습니다.
유언이 적힌 짤막한 보도자료를 기자의 어깨너머로 읽을 때도 울지 않았습니다.오후 두 세시쯤인가 부산경남 사람들은 봉하마을로 가서 장례준비를 하라는 지시를 듣고 청와대행정관,공공기관임원을 지낸 사람들 무두 다섯 명이 한 차로 봉하를 향해 출발했습니다.차가 고속도로에 진입해서 누군가 딱 한 번 입을 열었습니다.
"아침에 이 길을 달려갈 때는 살아계셨을까?마지막으로 담배도 한 대 몬 피고."
아무도 이어서 말하지 않았고 우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도착하니 이미 천막치는 일이 시작되었고 곧 분향대를 설치하기 시작했습니다.마을회관 벽을 따라 길이 5m쯤 되는 분향대를 설치했습니다.
자리를 까는 사람 톱질을 하는 사람 국화꽃을 안아나르는 사람 그 누구도 울지는 않았습니다.대통령께서 곧 도착하신다는 소식이 들린 일곱 시쯤 되었을때 처음으로 명계남선생님의 눈물을 보았습니다.
대통령님 들어오실 길을 따라 정복경찰들이 양 옆으로 도열하여서자
"무슨 행사하는 줄 알아? 저리나가!"
울부짖음과 함께 손등으로 눈물을 딱았습니다. 어쨌건 저는 그 날도 다음 날도 울지 않았습니다. 3일 째에 다른 동네는 멀쩡한데 진영에만 장대비가 쏟아졌습니다.핸드폰을 비닐봉지로 싸서들고 천막 밑에 섰는데 눈물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고마워서 울고 죄송해서 울고 사진보고 울고 제 기억의 조각들이 모조리 눈물로 쏟아져 나왔습니다.봉하에서 울고 서울에서 울고 수원에서 울고 남이 울면 따라 울고 며칠을 어지간이 울었습니다.
그 동안에 저는 송인배비서관의 눈물을 보지 못 했습니다.
대통령님을 가까이서 모신 분들 중에 이 정권의 탄압 속에 있었던 분들 외에는 우는 걸 볼 수가 없었습니다. 다들 넋이 나가있었던 것입니다.
송인배의 승리로 나음을 입어야 할 분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설겆이 한참 하다가 물끄러미 바깥을 바라보고 섰는 분들,파란 하늘을 보면 눈시울이 젖어드는 분들,비가 와서 울고 바람불어 울고 낙엽져서 우는 분들,노래듣다 울고청소하다 우는 분들. 노 무 현 그 이름 석자가 눈물이 되는 분들 수 백만이 아직도 가슴 속에 눈물과 한숨을 한 보따리씩 갖고서 살아가고있습니다.
얼마전에 취직 준비 중이던 외아들을 교통사고로 잃은 부인과 식사를 했습니다.늦게야 소식을 전해듣고 제가 모신 위로의 자리였습니다.그 이야기를 꺼내기가 쉽지 않아 세상 이야기만 잔뜩 하다가 디저트가 나왔을 때에 불쑥 물었습니다.
"많이 울었지요?"
과일들었던 손을 내려놓으며 말했습니다."연락받고 갔을 때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던데요. 아직 한 번도 안 울었어요. 그런데 숨쉬기가 힘들어요. 아무 생각없이 그냥 숨을 쉬는 게 행복이구나하는 걸 알았어요. 갑자기 위로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 한참을 바라만 보고있다가 딴소리 좀 더 하고는 일어났습니다.
세상 살다보면 숨이 꽉 막힐 때가 있지요.그런데 이 숨막히는 증상이 한 달도 가고 두 달도 가는구나. 우리 사모님께서도 틀림없이 숨쉬기가 힘드시겠구나!
이겨야만 합니다. 우리 사모님 숨 좀 편히 쉴수있게해드리고 송인배후보도 한 번 소리내어 울어보고 우리도 천 개의 바람되어 오신 대통령님이랑 함께 남은 울음 울어 보고. 이겨야합니다.
이겨서 다 부둥켜안고 울어야만 그때에야 우리는 웃을 수 있을 것입니다.
다 함께 양산에서 싸웁시다.
이깁시다.
그리하여 대통령님 손잡고 목이 터져라 외쳐 봅시다.
야~ 기분 좋다.
야~ 기분 좋다.
야~ 기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