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전 겨울, 나는 편의점 점원이었다. 가장 구하기 쉬운 일이었기에 별 망설임없이
편의점 노동을 선택했다. 별로 힘들지 않은 일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편의점 노동은
의외로 고된 일이었다.
주5일 동안 아침 8시부터 오후 3시까지, 하루 7시간 일하고 받는 '월급'이 고작 38만
5천원에 불과했다. 당시 나는 삼성동 COEX 뒤편에 있는 S 편의점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과장을 보태지 않고 점심때면 한 시간에 수백명의 손님들이 몰려왔다. 하지만 나는 혼자
일했다. 점심시간에는 계산하느라 고개를 들지 못 할 정도였다. 끝없이 늘어선 긴 줄은
나를 계속 압박했다. 빨리 빨리 해야 한다는 마음만 앞서 실수를 하는 경우도 잦았다.
나는 항상 고객과 점장에게 욕을 먹는 처지였다. 많은 고객들이 왜 빨리 빨리 자기 것
계산을 해주지 않느냐며 짜증을 냈고, 특히 나이 많은 고객들은 내가 마치
하인이나 되는 것처럼 무시했다. 계속 계산하고, 카드결제하고, 빈 담배들을 채워넣고,
복권을 처리하는 일을 몇 시간 동안 단순반복하는 일은 아주 힘들었다. 고객들은 잘
모르지만, 줄이 길어지고 계산이 늦어지면 일하는 사람도 피곤하다.
게다가 고객들에게 '성실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잠시도 앉아서 쉴 수 없었다.
의자가 없었으니까. 혼자서 일하니 급해도 화장실에 갔다올 수가 없었다.
추석날에도 일해야 했다. 명절날에도 편의점은 쉬지 않는다.
나는 일을 그만 두고 왕십리 근처에 있는 F편의점에 새로 취직했다. 나는 주말에 밤새는
일을 선택했다. 시급 500원을 더 받기 위해서였다. 나는 시급 3000원을 받고 밤 8시부터
다음 날 8시까지 일했다. 밤 8~10시, 아침 6~8시는 주간 시급 2,500원을 적용받았지만
나는 별 불만없이 넘어갔다.
F편의점은 강남 S편의점에 비하면 일하기가 훨씬 수월했다. 카운터 조작이 훨씬
간단했고, 밤이라 손님도 적었다. 그러나 나는 몇 주 일하고 나서 주중에도 밤을 새게
되었다. 그 동안 주중야간에 일하던 사람이 도망을 간 때문이었다. 점장은 내게 간곡히
부탁했다. 그리고 나는 감히 그의 '요청'을 거부할 수 없었다. 그가 그만 일하라고 하면,
나는 꼼짝없이 나가야 했기 때문이다. 비정규직에게 '민주주의'는 없다. 특히 혼자
일하는 비정규직에게는.
어떤 사람들은 편의점 야간 노동을 대수롭지 않게 여길 것이다. 손님도 적으니
독서하면서 시간을 때우면 되지 않느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다.
편의점 야간 노동의 시간표를 대강 적어보겠다.
푸드 상자 6~7개가 들어오는 시간은 밤 11시.
손님들 계산과 더불어 들어온 푸드를 다 배치하면 새벽 1시
손님들 계산과 더불어 냄새 역한 라면 찌꺼기와 쓰레기를 버리고 나면 새벽 2시
잠시 쉬었다가 손님들이 집어간 물건들을 창고에서 꺼내 전부 채우고 나면 새벽 4시
손님들 계산과 더불어 50평 정도되는 매장을 쓸고 닦고 청소를 하면 새벽 5시.
손님들 계산과 더불어 냉장고에서 벌벌 떨며 음료를 채워넣으면 새벽 6시
손님들 계산과 더불어 매장 앞에 손님들 토한 것 치우고 빗자루로 쓸면 아침 7시
손님들 계산과 더불어 담배를 채워넣고 유통기한 지난 우유와 김밥, 샌드위치를 챙기면
아침 7시 반. 그리고 매장을 걸레로 한 번 더 밀고 정산하면 아침 8시. 퇴근.
일하면서 쉴 수 있는 시간은 2시간 남짓 정도다. 그것도 온전히 쉬는게 아니라,
카운터에 서서 계산하는 것이 곧 '쉬는' 것이다. 그나마 F편의점은 S편의점과는
달리 자기가 듣고 싶은 음악과 라디오 채널을 골라서 들을 수 있다는게 크나큰
'혜택'이라고 할까.
야간에 일하는 것은 또 하나의 '혜택'이 있다. 그것은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들을 챙길 수
있는 권리다. 유통기한 지난 우유, 빵, 김밥, 샌드위치로 식비를 아낄 수 있으니 얼마나
'경제적'인가. 주중에 일하는 경우에는 남는 '푸드'가 없어 자비로 라면을 사먹어야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는데, 야간의 경우에는 아침식사는 물론 집으로 가져갈 것까지
조금씩 나오니 그야말로 '천양지차'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유통기한 따위를 걱정할
정도라면, 그는 이미 편의점에서 일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다. 물론, 이렇게 끼니를
해결하다보면 입맛은 물론 몸까지 버린다. 편의점에서 오래 일한 사람치고 삼각김밥과
샌드위치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 쯤해서 내가 겪은 에피소드를 몇 개 소개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에피소드 1)
하루는 삶에 찌들어보이는 중년의 회사원이 술을 사러왔다.
"300원이 없는데, 봐줄 수 없나?"
"죄송합니다만, 힘들겠습니다"
순간 손님은 시퍼런 1만원 짜리 지폐로 카운터를 쾅 내리친다.
나는 아연실색한다. 하지만 어쨌든 계산을 끝내고 잔돈을 건네준다.
아마 단 돈 300원을 용서하지 못 하는 나를 보고 야박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점장이 아니다. 정산할 때 비는 돈이 많을 수록 점장에게 욕을 먹는 건 당연한 일이다.
나는 그 손님을 불쾌하게 기억하지는 않는다. 그 손님이 정말로 내리치고 싶어 한 것은
철저히 돈에 종속되어 살아가는 자신의 인생이었을테니까.
에피소드 2)
하루는 럭셔리한 중년 여성이 선물을 사러왔다. 하지만 손님이 원하는 물건이 없었다.
그 손님은 나에게 짜증을 냈다. 이렇게 큰 편의점에서 그런 물건 하나 들여놓지 않냐고.
나로서는 할 말이 없다. "죄송합니다"라고 말할 뿐. 그 손님은 한 동안 나를 꾸짖더니
짜증난 얼굴로 나가버린다. 솔직히 나는 억울하다. 아마 나를 동네 슈퍼마켓 주인 정도로
아는가 보지만, 나는 점장이 아니다. 일개 점원이 어떤 물건을 들여놓고 뺄 수 있는가?
나에게 편의점의 비싼 가격을 비난하며 화를 내는 사람도 있다. 나도 비싼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나보고 어떻게 하라고? 가격을 매기는 건 내가 아닌데 말이다.
에피소드 3)
하루는 독감에 걸려 몸이 너무 아팠다. 그러나 일을 쉴수는 없었다. 비정규직 알바생에게
병가같은 건 점장의 마음씨가 천사가 아닌 이상 거의 불가능한 이야기다. 하지만, 너무
아픈데 일이 제대로 될 턱이 없다. 내 목소리에는 피로와 짜증이 묻어나기 시작한다.
그 순간, 편의점의 전화벨이 울린다. 점장의 목소리다. 점장은 나에게 은근한 경고를
주고 전화를 끊는다. 나는 깜짝 놀랐다. 카메라가 내 일거수 일투족을 촬영하는 것까지는
알았지만, 목소리까지 생중계되는지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 했기 때문이었다.
에피소드 4)
몹시 추운 날이었다. 새벽 4시쯤 되어 어떤 손님이 편의점에 들어왔다. 물건을 오랫동안
찾는 듯 보인다. 그러나 한참 있어도 나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빈 물건을 채우며
살펴보니, 술에 취한 노숙자다. 아마 너무 추워서 술로 추위를 이기려다 견디지 못해
따뜻한 편의점으로 들어온 듯 하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나는 일개 점원일 뿐이다. 그를
뎁혀주고 먹여줄 권리가 내게는 없다. 나는 10분 정도 기다리다 그에게 "물건을 사지
않을 것이면, 나가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한껏 추위에 고통받던 사람이 다시 추운
밖으로 나가고 싶을리 없다. 나는 그를 힘으로 쫓아낸다. 그는 다시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자신의 비참함을 처절하게 느끼고 만다. 그러나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내가 그를
재워주었다면 나는 분명 해고되었을 것이다. 이 글을 읽는 사람이라면, 과연 그 때 내
입장에서 어떻게 했을까.
나의 편의점 생활은 그리 길지는 않았다. 다행히 학원강사 사이트에서 운좋게
좋은 조건으로 강사자리를 제의받았기 때문이었다. 학원강사 경력이 전혀 없었지만
아마 나의 소개글과 '학벌'이 먹혀들어간 모양이다.
그러나, 얼마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편의점 노동을 통해 내가 알게된 것은 아주 많았다.
무엇보다 편의점 노동은 내게 많은 것을 생각할 기회를 주었다. 비정규직 문제, 알바생
문제에서부터, 내 사상과 삶의 관계에 대해서도 폭 넓게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몸이 많이 상한 것은 안타까운 점이다. 주5일 내내 밤을 새면, 몸은 망가질 수 밖에 없다.
요즘에는 내가 일하던 때보다 편의점의 노동환경이 조금 개선되었다고 한다. 시급도
500원 정도 오르고, S편의점의 경우 야간 시급이 50% 정도 인상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S편의점의 야간 노동은 이력서까지 꼼꼼히 살핀다고 한다. 물론, 이 경우에도
편의점 기업의 선심이 작용한 것은 아니다. 일하다 중간에 도망가는 사람이 하도
많은데다, 시급이 대한민국 최저수준인 편의점을 기피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여전히 편의점 노동 환경은 열악하다. 만약 어떤 사람이 주중에 편의점에서 일하고 받는
돈으로만 생활을 꾸려가야 한다면, 그는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밖에 없다. 몇 달간
노숙하면서 월세방을 구하거나, 세끼를 모두 라면으로 때우던가.
비정규직 노동자들, 특히 철저히 고립분산된 편의점 노동자들이 자기 권리를 요구하기란
쉽지가 않다. 오로지 사회의 관심과 지지만이 편의점 노동자들 스스로 자기 권리를
깨닫고 주장할 수 있게 할 것이다. 지금 이 시각에도 힘들게 밤을 새우고 있을 수십만의
편의점 노동자들에게 연대의 정을 표하며 글을 마친다.
(몇년 전 제 블로그에 올렸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