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성규씨 요트 세계일주 꿈꿔
- 캐나다여행중 교통사고로 큰 부상
- 재활훈련중 입문 국가대표 활약
- 임영호씨 사고후 실의의 나날
- 크루즈 무료체험이 새 전기
- 국가·부산 대표선수로도 맹활약
"지상에서는 두 다리 대신 휠체어와 자동차로 이동이 가능하지만, 바다에서는 세일(돛)만 잡고 있으면 전 세계 어디든 갈 수 있습니다. 크루즈 요트의 시속 25㎞는 100㎞ 차량과 맞먹는 속도여서 바람 소리를 들으며 강한 자유를 느낄 수 있어요."
장애인 김성규(48) 씨가 매일같이 바다를 찾는 이유다. 검게 그을린 피부와 단단한 체격을 가진 그는 현재 장애인 요트 국가대표선수. 지난 9월 21~25일 열린 전국장애인체육대회 2인승 경기에서 은메달과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앞서 5월에 있었던 제2회 코리아컵 크루즈요트대회를 완주했고, 지난해 제1회 전국 장애인요트대회에서는 1인승 옵티미스트에 나가 금메달을 땄다. 장애인용 요트(바닥에 배가 뒤집히지 않게 하는 장치가 달린 것)가 없어 일반 요트로 경기를 했고, 훈련 중 물에 빠지는 일도 다반사지만 요트는 그가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하는 동반자이다.
원래 김 씨는 바다와 여행, 운동을 좋아했다. 1990년부터 10년간 윈드서핑 동호회로 활동했고, 나이 50이 되면 아내, 아이와 함께 요트로 세계 일주를 하는 계획도 세워 놓았다. 하지만 불행은 순식간에 찾아왔다. 1999년 자동차로 캐나다 대륙횡단을 하던 중 일행의 졸음운전으로 사고가 났다. 아내는 세상을 떠났고 김 씨는 오른쪽 무릎 아래 절단과 왼쪽 발목, 발등이 으스러지는 부상을 입었다.
"2002년 서울에서 재수술을 받던 중 우연히 재활훈련차 수영을 시작해 이듬해 전국장애인수영대회 자유형 50m에서 금메달을 땄습니다. 이후 장애인 체육을 알게 되면서 장애인수상스키, 양궁, 스노 스키 등을 배웠어요." 바다를 좋아하는 김 씨의 열정 앞에 장애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여러 경로를 통해 혼자 배를 사려고 시도했지만 많은 어려움 때문에 포기하기를 수차례, 그러던 중 2007년 대한장애인요트연맹이 생기면서 넘실거리는 파도를 다시 즐길 수 있게 됐다.
"첫 훈련부터 참가해 지금까지 열심히 배우고 있으며 언젠가는 아시아 대회 금메달을 따고 싶습니다. 그러려면 국제대회에 출전해 점수를 쌓아야 하는데 전국체전에서조차 장애인용 요트가 없어 일반 요트로 경기를 하는 현실이다 보니 여러 어려움이 있습니다." 현재 연맹에 등록된 선수는 100여 명인데 실제로 요트를 타는 선수는 40여 명뿐이다. 선수층은 얇고 훈련 여건은 그보다 더 열악하지만 문제는 아무도 이 부문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 씨는 "1년에 180일 이상은 배를 타야 세계 격차를 줄일 수 있는데 요트도 없고 훈련 경비도 부족해 기량을 올리기가 어렵습니다. 피겨스케이팅과 수영도 이제는 선수층이 두텁고 기량이 향상되면서 국민적 관심이 일고 있듯 장애인 요트도 하루빨리 세계권에 진입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씨와 함께 부산 대표로 활약 중인 임영호(50) 씨는 어린 시절 광안리 바닷가 부근에 살며 바다를 동경했다. 바닷가에 떠 있는 요트와 윈드서핑을 보면서 '언젠가 나도 한 번 타 봐야지'라는 꿈을 키웠던 것이 장애를 입고서야 현실이 됐다. 임 씨 또한 지난 1989년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 오른쪽 다리 절단과 뇌손상 등을 입었다. 실의에 빠져 있던 지난해 5월 대한 장애인 요트연맹의 크루즈 무료 체험에 참가해 요트를 접하면서 과거의 꿈을 떠올렸다. 그는 지난 6월 장애인 요트 국가대표로 발탁되고 나서 9월에 열린 제29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에 부산대표로 나가 3위의 성적을 거두었다.
"장애인 요트는 배가 넘어져도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도록 요트 밑에 무거운 납을 답니다. 전복되지 않으면서 앉아서도 세일을 움직여야 하는데 아직 한국에는 한 대도 없습니다. 대한장애인요트연맹이 결성된 지 3년이 됐지만 지금도 장애인요트 한 대 없이 훈련을 해요. 장애인 요트를 많이 알려서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도록 도와 주셨으면 합니다."
이틀에 한 번꼴로 부산 해운대구 우동 요트경기장에서 연습하는 두 사람은 "동료 장애인들은 모두 집에 갇혀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습니다. 어려움을 하나씩 극복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장애인 모두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도록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