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평소 시민광장에 글을 쓸때는 유시민에 대한 호칭을 첨맘님이라는 유시민의
닉네임을 쓴다.
하지만 이글을 쓰면서는 유시민님이라는 호칭을 쓰고자 한다. 내가 지지하는 정치인
유시민이 아니라 유시민의 책은 거의 읽어 온 독자로써 작가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담아
작가의 실명을 호칭으로 쓰고자한다.
인문학 서적을 쓸 수 있는 정치인이 과연 몇이나 될까?
나도 한때는-치기어린 청춘시절- 등단을 꿈꾸고, 습작 노트를 항상 들고 다니며,
아름다운 단어와 언어가 생각날 때 마다 기록하였고, 신춘문예와 무크지에 몇 번의
작품을 보냈던 적이 있지만 신인작가로 인정받기엔 부족했다.
세월이 흘러 사회에 나와 소시민이 되었고 삶과 부딪치며 단 한편의 시도 쓸 수
없었다. 시를 쓰거나 인문학적 작품을 쓰기에는 나의 감수성과 영혼의 순수성이
고갈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21세기 정치사의 핫코드, 온갖 수식어-노무현의 정치적 경호실장, 야권 대선후보 지지도
1위 등등-가 붙는 정치인 유시민님은 정치적 소용돌이를 뒤로 한 채 청춘 시절에 읽었던
책을 강과 산이 세 번이나 바뀐 지금에, 다시 읽고 느낀 독후감을 이제 갓 세상에 나가 길을 찾는 딸에게(대학생이된 딸)주기 위해 이책을 썻다고 한다.
정치적으로 지치고 만신창이가 되어버렸을 법도 한 그가, 대한민국 야권 지지도 1위의
정치인이 딸에게 들려 줄, 아니 우리에게 들려 줄 인문학 책을 썼다는 것은 그의 영혼은
아직도 순수하고, 지식인으로서 사회적 책무를 강하게 가지고 있음을 반증한다.
이 책의 서문을 읽으며 강렬하게 느꼈던 생각은 ‘나도 십년 뒤 내 딸이 대학에 들어갈 즈음
나의 청춘의 독서를 딸에게 줄 수 있을까?’하는 욕심이 생겼다.
사상의 은사 리영희 선생은 나에게도 똑같이 묻는다
유시민님과 나는 10년 시간차이로 겹친다. 유시민님이 59년생이고 내가 69년생이고,
나또한 10년 뒤면 대학생이 될 10살짜리 딸이 있다.
고등학교 시절 작가를 꿈꾸며 읽었던 ‘죄와 벌’, 대학 1학년때 선배가 작성해준 쿼리큘럼에
의거해 읽었던 리영희 선생의 ‘전환시대의 논리’, ‘공산단 선언’, ‘변증법적 유물론’,
‘역사적유물론’등등.
사마천의 ‘사기’는 아니지만 고등학교때 읽었던 정비석의 ‘소설초한지’ 다섯권,
사회생활 하면서 읽었던 공자,맹자,장자등 소설로 된 책들과 도올 김용옥을 통해서
만나보기도했다.
멜서스며, 다윈이며, 베블런등의 작가의 책은 들어는 보았지만 부끄럽게도 읽어보지 못했다.
나는 오늘 리영희 선생편과 최인훈 작가편, 두꼭지 가지고 간단한 소회를 이야기하고자한다.
다른 꼭지들을 이야기하기엔 나의 지식이 너무도 짧다.
유시민님의 사상의 은사 리영희 선생은 나에게도 사상의 은사이다.
리영희 선생은 유시민님에게 묻는 말을 나에게도 묻는다.
너는 지식인이냐. 너는 무엇으로 사느냐. 너는 권력과 자본의 유혹 앞에서 얼마나
떳떳한 사람이었냐. 관료화한 정당과 정부 안에서 국회의원, 장관으로 일하는 동안
비판적 지성을 상실했던 적은 없느냐. 성찰을 게을리하면서 주어진 환경을 핑계삼아 진실을
감추거나 외면하지 않았느냐. 너는 언제나 너의 인식을 바르게 하고 그 인식을 실천과 결부시키려고 최선을 다했느냐.
부끄럽다. 당당하게 대답할 수가 없다. ‘사상의 은사’앞에 서는 것이 정녕 이토록 두려운
일인가.
나또한 유시민님처럼 부끄럽고 두렵다.
최인훈의 ‘광장’편에서 심리적 위안을 얻다
나는 대학시절 NL과 PD로 양분된 진영논리 속에서 어느 한쪽편을 비판없이 받아들였고,
내가 받아들인 사상을 후배들에게도 비판없이 받아들이기를 강요하는 커다란 오류를
저지른 적이 있다. 그 당시 내가 한 행위로 인해 나는 오래토록, 지금까지도 반성과 후회와
마음의 상처를 가지고 산다.
유시민님은 그때 나와 같이 비판없이 사상을 받아들인 청년들을 위로해준다.
1980년대 중반 대한민국에서 한 무리의 청년들이 집단적으로 관념의 월북을 시도했다(....) 관념적 월북은 이명준의 월북과 마찬가지로 강요된 월북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들을 관념적 월북으로
내몬 것은 광주에서 대학살을 저지르고 권력을 움켜쥔 정치인들, 인권유린과 부정부패를 저지른
독재권력의 압도적인 물리력에 대한 증오감과 좌절감이었다.(...)그러나 1980년대의 이명준들에게는 그런 선택권이 없었다. 그래서 대부분의(...)청년들이 대한민국의 선량한 시민으로 복귀했다.
나처럼 반성과 후회의 마음을 가지고 사는 386세대에게 논리적 근거와 선량한 시민으로
만들어준 유시민님에게 감사와 심리적 위안을 얻는다.
길 위에서 유시민님에게 길을 묻다
나는 항상 길 위에서 길을 묻는다
내가 지금 가고 있는 길이 올바른 길인지?
그리고 그 길위에서 유시민님에게 길을 묻는다
그가 대답하는 길은 그가 쓴 책속에 있다.
그리고 내가 가는 길에 유시민님이 같이 서있다면 적어도 잘못된길은 아니라는
확신을 가진다.
내가 만약 나의 딸에게 10년뒤 청춘의 독서라는 책을 써서 나의 딸에게 주고 싶다면
어떠 어떠한 꼭지로 글을 쓸까?
나에게 청춘 시절에 영향을 준 세 명의 작가가 있다
나의 가치관을 바뀌게 했던 고 조영래변호사가 쓴 “전태일 평전”
나의 세계관을 바꾸게 해 줬던 유시민님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
한국 근현대사를 새롭게 인식시켜줬던 조정래작가의 “태백산맥”,“아리랑”,“한강”
나는 유시민님처럼 청춘의 독서를 쓸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