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4-09-02] 8월 16일 수석보좌관 회의.
대통령이 총리 중심 국정 운영과 분야별 책임제 구상을 밝혔다. 그러자 그 배경을 놓고 설왕설래가 있었다. 바람직한 분권형 운영이라는 해석도 있었지만 무언가의 저의를 감춘 구상일 것이라는 극단적인 의심도 제기되었다.
대통령의 언급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일은 충분히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새로운 의제가 제기될 때마다 그 순수한 의도를 애써 외면하면서 정치공학적 해석을 하려들거나, 나아가 정쟁의 시각에서만 분석하려는 시도가 엄연히 일부에서 존재하고 있다. 이제는 정말 대통령의 언급과 행동을 있는 그대로 담백하게 이해하는 분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대통령에 대한 이해를 돕는 세 가지 키워드를 소개한다.
1. 대의
"저는 대통령님의 결정이 선뜻 이해되지 않습니다." 8월 21일 토요일. 몇몇 직원들과 오찬을 하는 자리에서 대통령은 어느 비서관으로부터 총리중심의 국정운영 방침을 납득할 수 없다는 질문을 받았다. "국민들이 원하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은 단정적이면서도 소신에 찬 두괄식 답변을 했다. "국민들은 지난 대선 때부터 대통령 권한이 분산되는 것을 선호하고 있습니다." "당정분리체제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당정일체형 리더십을 요구받고 있는 모순을 해소하려는 취지도 있습니다." 구상의 배경을 소상히 설명한 뒤 대통령은 마지막으로 짧게 한마디를 덧붙였다.
"크게 보아야 합니다." 여기서 노무현 대통령을 말하는 첫 번째 키워드가 도출된다. 바로 '대의'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역사의 흐름'이고, 쉬운 말로 표현하면 '상식'이다.
공학과 음모와 정쟁의 틀로 모든 것을 분석하는 사람들에게는 대의와 역사, 상식이라는 틀이 무척 생소할 수도 있다. 그러나 대통령의 말과 행동이 사사로운 이해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치밀하게 짜여진 계획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라는 선입관을 갖고 있는 한, 그 사람은 노무현 대통령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영원히 실패할 수도 있다. 그 점은 대통령의 과거사가 분명히 증명해주고 있다.
90년 3당합당. 대통령은 재선, 3선이 보장된 합당을 거부하고 험난한 길을 선택했다. 홀로 당당하게 "이의 있습니다."를 외친 대가는 처절한 낙선의 고배가 되어 돌아왔다. 그러나 대통령은 정치를 지역으로 가르고 왜곡시킨 그 폭거에 끝내 타협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10년 후. 대통령은 양심과 대의에 따라 정치1번지 종로의 탄탄한 국회의원을 마다하면서 또다시 부산에 도전했고, 또다시 낙선했다. 대통령에게는 사사로운 정치적 이해가 작용하지 않고 있었다. "농부가 어찌 밭을 탓하겠습니까?" 대통령은 낙선 후에도 유권자를 원망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난 16대 대통령선거. 대통령은 정몽준 후보와 단일화를 이루면서도 각료 배분 등 이른바 지분협상을 끝내 하지 않았다. 또 선거일 직전의 파국적 상황에서도 결코 야합이나 흥정을 하지 않았다. 대통령이 되지 못하는 한이 있어도 더욱 소중하게 지켜야 할 대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지킨 대의는 결국 노무현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큰 동력이 되는 역설을 가져왔지만.
2. 실용
8월 31일 화요일, 국무회의. 산업자원부, 국방부, 환경부로부터 업무보고가 있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각 부처의 보고에 대해 대통령이 짧은 코멘트를 했다. 그런데 이 날의 코멘트는 내용보다 형식에 대한 것이 주종을 이루었다. 미소를 머금은 채 대통령이 말했다. "보고서의 양식으로만 보면 이 부처의 보고는 그대로 수용해야 할 것 같습니다." 보고서 가운데 참조자료를 하이퍼링크로 처리하여 개선한 것에 대해 이를 높이 평가하는 언급이었다. 작은 개선이었다. 그러나 대통령은 그것을 결코 작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듯 했다. 그런 작은 변화가 큰 정부혁신의 시작이라는 믿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8월 18일 수요일 오전, 혁신 워크샵 8월 21일 토요일 오전, 정책사례토론회 8월 22일 일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내부통신망 이지원 고도화 작업 8월 30일 월요일 오후 5시부터 9시까지, 이지원 고도화 작업 9월 4일 토요일 오전, 혁신사례 학습토론회 예정
최근. 대통령의 혁신 관련 언급이 무척 많아졌다. 총리 중심의 국정운영 구상을 밝힌 후 더욱 증가하고 있다. 국정과제와 정부혁신 과제에 몰두하겠다는 구상이 실천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 열린 공식, 비공식회의 석상에서의 언급 가운데 최소한 3분의 1 이상이 혁신 관련 언급이다.
"문서 속성카드나 이지원 시스템 고도화는 상당한 의미가 있는 일입니다." 8월 27일 있었던 기록물 시스템 관련 회의에 참석했던 국가기록원 전문가의 말이다. 기록학을 전공한 학자이기도 한 그 전문가는 이렇게 말을 이었다. "기록 관리의 중요성에 대해 이해하면서 상당히 깊이 고민하시는 부분이 있어서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그는 대통령이 이처럼 기록과 문서관리 등 혁신 업무에 직접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데 대해 적지 않게 놀라는 표정이었다.
최근 대통령은 이렇게 강조하고 있다. "이제 총리가 물건을 판매하고 경영하는 일에 몰두한다면, 대통령인 나는 공장 내의 시스템을 고치는 일에 전념하는 것입니다. 레일을 다시 깔고 불량을 줄이고, 직원들의 교육훈련을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장기적으로 경쟁력을 높여나가는 일입니다. 우리의 미래를 준비하는 일입니다."
작업복 차림으로 공장의 구석구석을 혁신하고 있는 대통령. 듣기 좋은 말에 보기 좋은 장면만 연출하는 대통령이 아니라, 정부의 경쟁력, 나아가 국가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팔을 걷어붙인 대통령. 대통령의 이 실용주의가 지금 정부 혁신의 출발점이 되고 있다.
대통령은 말한다. "대통령이라면 제왕적 권위를 갖추고 위세를 부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고가 있다. 혁파되어야 할 낡은 사고이다. 그러한 생각이 바로 역사 변화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이제 그 잘못된 '지도자의 우상'을 파괴해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이다."
3. 탈권위
"옛날 같으면……" 대통령의 주변에 있다 보면 새롭게 대통령을 만나는 사람들로부터 이러한 말을 자주 듣게 된다. 이는 어쩌면 참여정부가 들어선 이래 변화한 대통령문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표현일 것이다.
8월 21일 토요일 저녁 뮤지컬 [청년 장준하]를 보기 위해 세종문화회관의 객석에 모습을 나타낸 대통령을 보며 관람객들이 박수를 쳤다. 대통령은 손을 높이 들고 흔들며 답례를 했다. 그러면서도 대통령은 혹여 자신의 출현이 다른 사람들의 관람에 방해가 되지 않을지 조심스레 신경 쓰는 모습이었다.
대통령은 권력을 움켜쥐고, 행사하려는 사람이 아니다. 불필요한 권위는 모두 버렸다. 권력기관도 손에서 놓았다. 몇몇 참모들은 권력기관만 그대로 장악하고 있었어도 훨씬 더 국정운영이 원만하게 되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대통령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
세상은 그런 대통령에게조차도 여러 가지 나름대로의 잣대를 들이댄다. 때로는 제왕적 덕목을 요구한다. 어떤 때는 권위주의 시절의 독재적 파워를 기대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야당은 대통령을 항상 정치의 상대방으로 생각한다. 모두가 아직 변화된 대통령에 익숙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부작용들이다.
탄핵 소추 사태 때문에 공식화할 기회가 없어졌지만, 대통령은 4.15총선 당시에도 결과에 따라서는 권력의 큰 부분을 야당에 넘기려는 구상을 굳혔었다. 말이 그렇지 쉽게 결단할 수 없는 구상이었다. 언제라도 손안에 쥔 것을 놓을 수 있는 사람이었기에 가능한 계획이었다. 그러한 철학의 연장선상에서 바로 총리 중심 국정 운영 및 분야별 책임제도 구체화된 것이다. 지금껏 제왕적 대통령의 절대적 권력에 익숙해져온 우리 의식 관행속에서 이런 권력과 역할의 분점에 대해 일부에서는 조기 레임덕을 우려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구상을 완성시키려는 대통령의 의지는 확고하다.
"권력도 나눌 수 있는 사회가 성숙한 사회입니다. 이제 국정도 권한을 분점하고, 분점된 권한의 주체들이 서로 협력해서 성공시키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야 합니다.이렇게 해나가면 상생의 균형점이 나올 것입니다."
윤태영(제1부속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