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수술 대가인 송명근 교수가 논문 이중·허위 기재로 세간의 따가운 눈초리를 받고 있다. 심장판막 수술에 있어 새로운 카바수술을 개발한 송교수는 대한민국 최초로 심장이식수술에 성공한 한국 최고의 흉부외과 전문의이기도 하다.
나도 한때 성공시대에 소개된 송명근 교수를 보고 그를 롤모델로 삼기도 했을 정도이니.. 그의 레지던트 수련법은 가혹하기로 유명하다. 오른손과 왼손, 양 손 모두를 쓸 수 있도록 혹독하게 훈련시킨다.
그런 그의 카바수술법이 바로 부작용으로 심판대에 올라 있다는 것이다. 유규형, 한성우 교수가 그의 카바수술법에 대해 비판을 하였지만 그 당시 송교수의 권위와 유명세때문에 두 교수의 비판은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했다.
송명근 교수의 이야기를 서두에 꺼낸 이유는 영국의 철학자인 베이컨이 말한 네가지 우상중의 하나인 극장의 우상을 이야기하고 싶어서이다. 국민들은 대다수가 극장의 우상에 빠져서 산다. 자신이 무조건 옳다고 믿는 신념이 거짓일지도 모른다는 사유를 전혀 하지 않는다. 위험한 사고행태이다.
극장의 우상! 어떤 권위자의 가치를 군중들이 극장에서 영화보듯이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우상의 한 형태이다. 그 권위자가 또는 권위자에 의해 제작된 영화의 가치가 오류일수도 있는데 이에 대한 의심없이 군중들은 '무조건 참일 것이다.'라고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현상을 극장의 우상이라고 한다.
흔히 맞딱드리는 극장의 우상의 한 예가 언론이다. 국민들은 대다수 언론이 하는 이야기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다. 진보든 보수든 자신들이 선호하는 언론의 이야기는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인다. 언론이라는 하나의 권위에 국민들은 극장에서 영화보듯이 지배당하고 만다. 이것부터 의심해봐야한다. '쉽게 찬성하고 반대하지말고 사유하고 결정을 내려라.'라는 논리적 명제는 깨어있는 시민에게는 필수적인 사고의 습관이라 할 수 있겠다.
이미 우리는 일제시대부터 자행되어온 보수언론의 양아치같은 행태는 두말할 것도 없거니와 소위 진보라고 불리우는 매체들마저 오류가 있을 수 있음에도 의심하지않고 찬성해오지는 않았는지 고찰해보아야 한다. 참여정부 시절 기자실 폐쇄나 노무현 대통령님 서거 직전까지 진보라고 불리우는 언론들이 저질러온 오류를 극장의 영화처럼 받아들이지는 않았는지 잠든채로 사유를 멈추지는 않았는지 반성해야 한다.
내가 강조하는 가치는 '언론은 100% 무오류의 존재여야 한다.'라는 비현실적인 논제가 아니다. 오류를 저지를 수도 있는 언론에 대한 주권자의 통제및 사과 요구,정정보도 같은 오류를 수정할 수 있는 시스템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민주 공화국에서 주권자 위에 군림하는 권위는 있을 수 없다. 정치도 정치인의 사유재산이 아닌 국민의 소유인 공공재인만큼 정치를 정확하고 정직하게 보도한다는 신뢰를 바탕으로 중계자의 권위를 위임받은 언론은 항상 국민의 심판과 통제를 받는 것은 당연한 사리이다.
또 하나 극장의 우상에 빠지는 예가 다수결이다. 군중의 다수가 권위가 되어 진리가 아닌 것이 진리처럼 받아들여지는 형태이다. 우리는 열린우리당 분당사태때 대다수의 탈당파 의원들이 노무현, 유시민을 공격하던 극장의 우상의 한 가슴아픈 추억을 기억한다. 분명 당원의 참여가 가능한 기간당원제의 참다운 가치는 탈당파의원들의 정치적 이익앞에 무릎꿇고 말았다.
가끔 내가 강조하는 명제중의 하나가 '결과가 나쁘다고 해서 가치를 부정해서는 안된다.'이다. 언론이나 다수결같은 권력이 이룰 수 있는 것은 현실적인 헤게머니이지 진실 그 자체는 아니다.
항상 의심하고 또 사유하라. 깨어있는 시민의 이런 자세가 생활의 민주주의, 조직의 민주주의를 만들어내고 이런 작은 생활의 진보가 모여서 결국 헌법적 당위가 국가의 현실이 되는 '진짜 민주주의 공화국'을 만들어 낼 것이다.
추신) 참여당 이야기 하다가 갑자기 생뚱맞은 글을 써서 죄송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