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협상이 결렬되고 누구랄 것도 없이 모두로부터 첨맘님이 다구리(뭇매)를 당하고 있습니다.
연대협상의 결렬은 연대 당사자 모두의 책임입니다. 정치적 이해가 충돌하는 협상 테이블에서 누구에게만 양보와 희생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이미 연대라는, 협상이라는 단어를 쓸 수 없는 상황이기도 하였거니와, 그것을 차치하더라도 협상의 결렬은 어느 한쪽의 책임일 수 없습니다. 이제와 그렇게 모진 말들로 비난할 수 있으려면 그런 말을 내뱉는 자들이 더 간절했어야 맞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간절한 것이었으면 그들이 더 많이 양보했어야 마땅합니다. 유시민은 양보할 만큼 했습니다.
정치인집단을 바라보며 놀라울 때가 더러 있습니다. 나쁜 놈들이 좋은 놈을 무리지어 자신 있게 비난하는 상황이 가능한 집단이더군요. 이거 어디서 많이 보는 상황이지요? 초딩들 이지매의 수준입니다. 스스로는 정당성을 가질 수 없고 누군가를 돌려놓고 그것으로부터 존재 근거를 찾는 쓸모없는 집단.
어떤 정당한 논리도 없이 일관성 있게 그런 행동이 가능한 자들이 다수인 집단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참 고민스럽습니다.
파트너의 정의가 무엇이겠습니까?
오래 함께 할 수 있는 상대를 의미하지 않겠습니까?
다시 생각해 볼 일입니다.
무엇을 위해 연대해야 했으며, 하려고 했던 것인가?
결국 ‘국민이 원한다’ 아니었습니까?
그러면 국민의 뜻을 정확하게 받아야합니다.
국민들은 자기의사와 관계없이 정치역학에 의해 앉혀진 지도자를 원하는 게 아닙니다.
어쩔 수 없어서 투표하는 상황을 만들면 국민적 힘을 모을 수 없습니다.
설사 만의 하나 그렇게 선출되더라도 그런 지도자는 성공하지 못합니다.
왜 노무현 대통령처럼 안하냐고 하는데, 노무현 대통령은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을 겁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선택 기준에는 언제나 국민의 이익이 있었습니다.
원칙 없는 양보는 무의미한 희생이 될 수 있습니다.
어찌하건 돌아가는 꼴을 보아하니 이후 상황에 대한 책임을 온전히 유시민에게 지우려 작정한 이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기회주의자들이 이번을 기회라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연대를 해라 마라 논의할 상황이 아닌 것 같습니다.
‘국민이 원한다’는 것만 증명할 수 있으면 됩니다.
유시민 펀드가 하나의 증거입니다.
하나씩 증거를 만들어 나가면 됩니다.
그러니 지금은 우리 발에 땀이 나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