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떠난 박봉팔에 대해 말하는 것이 예의도 아니고 미안하기도 하다. 그가 서프를 떠나는데 나 또한 어떤 역할을 한 것 같아 더 그렇다. 혹시라도 이 글을 본다면 미안합니다. 양해해 주십시오.
서프를 대표하는 최고의 논객 1인을 꼽으라고 묻는다면? 꼽을 수 없다. 칼을 목에 견주고 억지로 말하라고 해도 정말 꼽을 수 없다. 모른다. 무의미하다. 그러나 서프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논객을 묻는다면 주저 없이 논객 박봉팔을 꼽겠다. 그를 말하지 않고는 현재의 서프 또는 노무현 지지세력의 주류를 이해하기 힘들다. 아마 논객 박봉팔의 등장에 열광했던 눈팅들도, 또 그를 시기했던 일부 논객들도 심지어 박봉팔 자신도 자신이 서프에서 어떤 역할을 했었는지 알까.
지난 글 ‘한 세대가 되어버린 불멸의 10%’는 오랫동안 가져왔던 문제의식이었다. 노짱의 서거 직 후, 내가 사는 지역의 시민광장, 노사모의 동지들과 송내역에 분향소를 설치했다. 눈을 뜨니 상주가 되었다. 밀려드는 조문객에 분향소를 지키느라 진정 슬퍼할 겨를도 없었다. 낮에는 영상을 만들고 밤에는 상영하고 생전보다 오히려 우리 대장이 더 가깝게 느껴졌다. 이 때 펑펑 슬퍼하지 못한 게 내내 온 마음을 짓눌러 온 것 같다.
밀려드는 조문객들을 맞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일요일이 지나자 걱정이 밀려왔다. 내일부터 평일인데 사람이 없으면 어떡하지, 우리 노짱 마지막 가시는 길마저 섭섭하면 어떡하나. 작은 기우였다. 꼬리에 꼬리를 문 인파가 광장을 가득 채우고도 모자라 한 길가를 차지했다. 도대체 이 인파는 그동안 어디 있었던 걸까. 그들은 이미 있었지만 내가 보지 못했구나.. 이들은 누구일까.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오랫동안 잊었던 논객 박봉팔이 떠올랐다.
서프를 추억하는 많은 사람들은 과거를 수많은 논객들이 영명했던 영광의 시기로 기억한다. 어떤 시기는 실제로 그랬지만 어떤 시기는 추억의 후광효과라 볼 수 있다. 서프 초기에 게시판 분위기는 이랬다. “제가 강준만을 좋아해요” “아 그렇군요. 저는 강준만 하고 친해요” “책 보내 드릴까요” “네 고마워요” “공편집장님 제가 대문용 글을 썼어요. 열분들 추천해줘요” “그럼 오늘 오프는 어디에요” 사실상 노무현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만담 놀이터에 불과했다.
지금과 같은 명실상부한 노빠 대표 사이트로 자리 잡힌 것은 노짱의 재신임 발언 이 후였다. 살을 에이는 여의도 칼바람이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는 리멤버 1219에서 노짱은 그 유명한 ‘2급수론’을 꺼내며 자신도 먹힐 수 있는 이 나라 부패의 최고 정점 정치자금에 관해 공개할 것을 시사했다. 이어 자신에 대한 재신임안을 묻겠다고 폭탄선언을 던졌다. 노무현의 지지자라면 다 알 수 있었다. 곧 양두구육의 검은 무리들과 권력찬탈에 관한 한 거대한 정치투쟁이 시작된 것을. 그가 “야들아 이대로 가면 나 죽겠다. 살려달라 살려달라” 외치고 있는 것을. 이 투쟁에서 지면 노짱도 죽고 민주주의도 먹히고 우리도 다 죽는다고 생각했다.
대선 이 후 뿔뿔히 흩어졌던 노짱의 지지 세력이 모여야 했는데 이미 다 해체하고 갈만한 곳이 없었다. 서프로 몰려오기 시작했다. 당시 하루 평균 방문자가 50여만명이었다. 서버가 버벅거렸다. 조선일보는 물론 오마이뉴스를 압도하는 이 수치는 이 후 데일리서프 창간의 근거가 되기도 했다. 탄핵이 터지고 총선에서 승리하고 정치투쟁의 제 1막은 끝났지만 노의 지지 세력들은 흩어질 수가 없었다. 어떤 운동가나 성직자 학자도 못했던 이 땅의 ‘불편한 진실’에 대해 끊임없이 대면하려 하는 대통령이 권좌에 있는 한 이 투쟁은 계속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객이 모였으니 토론이 시작되었다. 눈팅은 구경하고 객들이 주도했던 이 토론의 결론은 의외로 싱겁게 끝났다. 노무현이 좌측 깜빡이 켜고 우측으로 운전한다. 이거 큰 문제다. 눈팅들도 고개는 끄덕였지만 뭔가 석연찮았다. 객들도 뭔가 찜찜했다. 김동렬은 그렇치 않다고 했지만 시원스레 설명하지 못했다. 이에 노짱이 반농담 반진심을 담아 답했다. ‘나는 좌파 신자유주의자’다. 대통령 직무 수행을 이데올로기적 관점에서만 평가하지 말아 달라는 주문이었지만 말 자체가 더 도마에 올랐다. 이 후 객들의 토론은 추억의 동네 반창회처럼 바른 말들이긴 한데 현실에서 별 의미 없는 언어들의 선명성 경쟁으로 치달았다.
혜성처럼 논객 잭(박봉팔)이 등장했다. 그가 꺼낸 첫 화두는 ‘민주노총이 니들 보다 기득권인데 왜 주제넘게 위하는 척이냐’였다. 객들의 결론을 뒤집은 것이다. 눈팅들은 전례 없는 열광을 보냈다. 객들은 이 풍경을 꽤 낯설어 했다. 객과 박봉팔의 대결이 시작되었다. 파이터는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이전까지 서프에서 좌파 또는 진보에 대한 날선 비판은 일종의 금기의 영역이었다.
객들은 박봉팔에 대한 눈팅들의 일방적인 응원에 당황했다. 이 현상을 이해하지 못했다. 한 무리의 객들이 퇴장했다. 진보에 대해 일정 정도 부채 의식을 가진 노빠들을 대상으로 진보와 노무현 사이에 줄타기를 하며 즐겼던 객들은 한탄했다. ‘서프는 진보가 아니야. 즉 노빠는 진보가 아니야. 그래서 나빠’ 하며 침을 뱉었다.
두번째 화두는 ‘미키루크. 정청래야 한판 붙자’였다. 그 때까지 정청래는 서프를 아끼고 사랑하는 정치인으로 알려져 있었다. 뭔가 2% 부족하긴 하지만 매일 일기도 올리고 분명 사랑받으려 노력하는 정치인이었다. 당시 정동영을 따르는 이들은 열정과 포용을 중시하는 원조 노빠들이었으며 대중을 조직하는 조직론에 탁월했다. 때문에 서프와 일정 정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 했다.
어느 날 박봉팔이 정동영을 정면으로 지목해 공격했다. 당시 열린우리당은 정동영의 실용주의와 이를 비판하는 유시민 간에 입장차가 벌어지는 단계였다. 당시까지 서프는 두 세력 간의 권력투정 정도로 인식했다. 박봉팔이 정동영을 정면으로 치자 정청래 맞받았다. 도저히 싸움이 안되었다.
이에 친구 미키루크도 등장했다. 미키루크는 노무현을 위해 열정적으로 헌신했던 자신이 노빠들의 비판을 받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박봉팔은 집요했다. 얼마나 집요했던지 당시 라디오21 생중계 토론까지 가니마니 하며 시선을 모았다.(돌이켜 보니 조금 웃음이 나온다.) 그러던 중 김동렬이 ‘명계남 노무현을 찔렀다’ 선언했다. 정동영의 지지자들이 일거에 퇴장했다. 서프가 완전한 노유빠 사이트로 변모하는 계기가 되었다.
세 번째 화두는 ‘서프는 서영석 소유가 맞다. 나머지는 닥쳐라’였다. 당시 서프 독자 모임은 매우 활성화 되고 있었다. 독자 모임은 서영석 대표 주변에 인사청탁 사건이 터지자 서영석에게 서프 운영권을 요구했다. 밖에서 조중동에 얻어터지고 안에서 마저 비판적인 독자들의 여론에 밀린 서 대표의 처지는 궁색했다. 필자는 이해하지 못했다. 사건은 사건이고 왜 무엇을 근거로 운영권을 요구한단 말인가. 나름 독자 모임과 절친했던 난 진지하게 물어봤다.
근거는 이랬다. 서프는 우리 독자들이 만들어 가는 사이트다. 대표가 우리 독자들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일을 일으켰으니 그만둬야지. 그리고 우리가 만들어 가는거지. 말이야 금세 예쁜 말 같긴 한데 한번만 더 생각해보면 말 같지도 않는 소리였다. 내 것은 내꺼 서영석 것도 내꺼. 이렇게 조악한 사고방식 아닌가. 사실 이런 이야기는 알 필요도 없는 과거지사일 뿐. 그런데도 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필자가 박봉팔과 노빠를 이해하는 방식과 밀접하기 때문이다.
이 때 필자가 독자모임의 운영권 인수 주장을 찬성할 수 없었던 것은 앞에서 말한 근거도 있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독자모임을 주도하는 분들이 박봉팔과 그에 대한 눈팅들의 열광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눈팅들을 이해 못하는데 앞으로 운영을 잘할 이유나 까닭이 없어 보였다. 필자가 보는 방식은 매우 단순한데 박봉팔에 열광하는 눈팅들은 노빠들이다. 노빠의 주류를 이해 못하는 사람들이 도대체 서프를 어떻게 감당한단 말인가. 그렇게 티격태격 하는데 박봉팔이 끼어 들었다. 욕쟁이 봉팔이가 등장한 것이다. 그들도 퇴장했(됐)다.
당시 한동안 개인 사정상 서프를 떠나 있었다. 가끔 들여다 봤을 때 그는 여전히 무엇으로 싸우고 있었다. 대연정으로 싸우고, 싸우면 이기고, 이기면 또 다른 것으로 싸우고... 그의 단점은 지는 법을 몰랐다. 그가 노짱을 사랑하는 방식이었을까.
어느 겨울 날, 박봉팔이 만나자고 했다. 하고 많은 장소 중에 그 썰렁한 서울역 광장에서 보자고 해 황당했다. 한판 붙자는건가^^ 처음 그렇게 만난 날 월간 온오프를 하자고 했다. 수익률 제로인 사업이지만 서프의 이 좋은 글들을 더 많은 사람들이 읽게 하자는 것이었다. 취지는 좋았지만 실제 성과를 내기에 힘들어 보였다. 한다면 도와주겠노라 약속했지만 이 후 도와주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해냈다. 노짱에 대한 사랑만큼은 그 누구보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한 남자였다.
글 발굴과 편집에 탁월했던 故 감자꽃필무렵(그는 재작년 세상과 이별했습니다.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이 그만둔다고 하자 눈팅들의 반응은 의외로 싸늘했다. 박봉팔 글을 대문에 올리지 않는 것에 대한 무언의 항의였다. 후임자로 가끔 대문 논객으로 서프를 접했던 희망 편집장이 왔다. 편집장이 박봉팔의 아이피를 차단했다고 전해 들었다. 희망 편집장에게 그 이유를 묻자 서프 약관을 근거로 욕설 때문에 차단했다고 말했다. 기가 막혔다. 아이피 차단을 풀어줄 것을 권유하자 자신은 약관을 근거로 한 것인데 풀어줄 근거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말문이 막혔다.
가끔 그런 상상을 해 본다. 그가 서프를 떠나지 않고 계속 있었다면 어땠을까? 아마 이해찬 한명숙 지지자들이 떠밀려 나가지 않았을까^^ 문제도 있었다. 박봉팔의 잘못은 아니지만 박봉팔 정도의 식견 없이 봉팔식 글쓰기를 하는 객들이 등장했다. 무엇이든 막 무는 객들로 인해 매우 소모적인 논쟁도 자주 일어났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송내역 앞에서 줄지어 통곡하는 이들을 보고 불현듯 논객 박봉팔이 왜 생각났던가. 이들이 누구일까. 누구지? 나를 포함하는 이들에 대해 알아야 한다. 다시 서프를 찾았다.
서프의 주 독자층은 노무현이 그렇게 나아가고자 했던 서민들은 아니다. 약사, 의사, 사업가, 고연봉 샐러리맨, 증권맨 등등 이 사회에서 좀 먹고 살만한 사람들이다. 특이한 점은 해외에 거주하는 분들이 유난히 많다. 정치적으로 보면 이들은 일상에서는 중도보수 선거 때는 진보개혁 후보를 원하는 중산.서민층이다. 실제 노짱을 끝까지 성원해줬던 사람들의 성향과 거의 일치한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박봉팔이 등장하기 전 서프는 머리는 진보 심장을 가진 몸통은 보수였다. 머리와 몸통이 뜨뜻 미지근하게 소통하며 버벅거릴 때 그가 등장해 질러 버린 것이다. "진보가 성역인가" "말과 글로 진실을 가리지 마 후레잡을 놈들"
최근 어떤 일로 박봉팔을 다시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는 깊은 한숨을 쉬며 “나 작년에 성북에서 종로 분향소까지 매일매일 걸어가서 절하고 다시 걸어 왔어. 속 불나서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더라구” 그리고 진보.보수에 대한 화두를 꺼내며 노짱은 어떤 미래를 그렸을까 고민을 던졌다.
필자는 노짱이 늘 보수주의자라고 생각했다. 이 정책은 진보가 아니라고 어떤 이들이 툭탁거릴 때 마다 콧웃음을 쳤다. 그러나 퇴임 이 후 노짱이 남긴 원고를 보고 그게 아니었다는 것을 알았다. 많은 고민의 흔적들이 녹아 있었다. 마디마디에 후세들을 위해 이데올로기로 굳어져버린 좌.우의 가치가 아닌 새로운 가치를 남겨주고 싶은 열망이 배어 있었다. 진정 한 발짝 한 발짝 진보하고 싶어 했다. 이 나아가는 진보란 가치가 혹 자신 때문에 훼손될까 여러분들이 나를 먼저 버려달라고 했다. 봉하뒷산 계단을 터벅터벅 오르며 그가 바라봤던 세상은 무엇일까. 그리고 싶었던 미래는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