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늦가을이 되면 거리의 가로수로부터 깊은 산의 계곡 마다 그리고 산자락과 능선의 여기 저기 아름다운 단풍이 듭니다.
그 단풍을 보고 있노라면 참으로 다양한 색갈의 잎들이 아름답게 죽어감으로써 내년의 또 다른 아름다움을 기약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늘푸르른 상록수가 있어 변치 않음을 칭찬하며 노래하기도 합니다. 그 나름 추운 겨울이아 더운 여름이나 한결 같으니 칭찬 받아 마땅하겠지요.
우리 노짱님도 그래서 그런 노래를 좋아하셨을 겁니다. 세찬 풍파에도 제자리를 궂궂하게 지키며 언제나 푸르름을 지키며 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상록수의 푸르름도 단풍으로 물들어 가는 또 다른 아름다운 죽음이 있었기에 더욱 빛난다는 생각입니다.
사설이 길었습니다.
오늘 우리와 같은 생각을 가진 많은 사람들은 오전부터 서로에게 위로하며 기쁨을 나누었을 것이고 그런 기쁨을 더하고자 여기 저기 지역광장에서는 서로서로 번개를 치며 함께 기뻐하자는 문자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문자를 하나 둘 받으며 저는 또 다른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기뻐해도 되는 것인지와 우리가 기뻐하는 이 때에 누군가는 어디선가에서는 위로의 말을 건널 텐데 그 들의 아픔은 누가 위로해 줄 것이고 누가 위로해 주어야 하는 것인지...
오늘 오전에 기뻤던 것은 내가 좋아하는 첨맘님을 위해 경기도 일원에 사는 지인들 수백명에게 문자와 전화를 해서 경선인단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독려와 부탁을 했고 그런 결과로 오늘의 작은 아주 작은 기쁨을 맞이 할 수 있어서 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지극히 작은 기쁨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늘 첨맘님이 당선된 것이 아닙니다. 그저 우리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 아니 솔직한 표현으로는 형제라고 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형과 아우가 아우와 형이 집안을 대표해서 나가는 자리에 나갈 수 있게 된 것 이상의 것은 아니니까요. 집안의 작은 일이란 뜻입니다.
그러나 그런 결과로 우리가 도취되어 즐겁게 술잔을 기울이고 있을 이 시간에 어디선가는 아픔의 술잔을 기울이는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행여 그들이 우리의 기쁨을 보고 사촌이 땅을 사서 배가 아픈 생각을 갖게 된다면 우리는 패배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짜 싸워야할 사람에게는 이기기도 전에 패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춘향전에 암행어사 출도하기 전에 이몽령이 변사또에게 내린 글의 말미가 생각납니다.
" 가성고처원성고(歌聲高處怨聲高) - 노래 소리 높은 곳에 원망의 소리 또한 높더라."
안아주고 감싸주고 먼저 위로하고 지금의 기쁨은 나만의 기쁨으로 간진하고 함께 해야할 사촌들과 힘을 합쳐 당나라당을 이긴 후에 함께 기뻐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서로 서로 다른 색으로 지기에 상록수의 푸르름이 빛이 나는 것이 아닐런지요.
이 5월에 아름답게 물들어 가는 단풍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단풍은 어느 나뭇잎보다 아름다운 사람 단풍이기에 더욱 아름다울 것이니까요.
6월2일! 그 날까지는 지금의 기쁨을 좀 아껴두렵니다. 그래서 그 날 승리한다면 더 많이 더 크게 우리 사촌들과 함께 기뻐하겠습니다. 설령 지더라도 지금이 기쁨을 그 때가서 풀어 놓는다면 조금 덜 슬프겠지요.
먼저 옆을 돌아보고 앞으로 해야할 일이 얼마나 더 많이 남았는가를 한 번 생각해봐야하겠습니다.
죄송하지만 오늘의 기쁨은 기쁨이 아니고 기쁨을 얻기 위한 작은 시작으로 생각하심이 좋을 듯해서 못난 이가 몇자 풀어 놓습니다....
승리의 그 날을 위하여...모두가 함께 뜁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