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분들의 추억 속엔 한 번 쯤은 아버지의 막걸리 심부름에
오는 길에 반드시 자기가 먼저 맛을 보며 소믈리에(Sommelier)의 잠재력을 키웠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친구들과 조금 놀았다 하면 동네 귀퉁이 담벼락을 방패삼아 담배 한 개비 정도 물어본 기억도
있을 것이다.
좁은 골목길사이의 담벼락들은 어린 작은 키에도 훤히 보이는 집 내부의 풍경에 옆집 숟가락,
젓가락의 개수도 안다는 가족처럼 지낸다는 뜻의 표현도 기억 날 것이다.
또 장소불문 어느 곳에서나 판을 벌이는 동네 어른들의 조기교육에 초등학교시절
이미 마스터한 화투는 영화 타짜를 보며 오징어를 씹는 얼굴에 가벼운 웃음을 흘릴 수 있는
여유도 생겼을 것이다.
대학시절 친구 녀석들의 꼬임에 카드라는 걸 배워 늘 봉이 되었지만 별로 나쁘지 않은 기억으로
남는 이유도 어린 시절의 놀아본 경험(?) 때문 일 것이다.
하지만 10번에 한 번 정도 이기는 게임실력은 그 쪽 분야에 별로 흥미를 가지지 못하는
이유가 되었지만 그래도 생활 속 모임에선 가끔 즐길 수 있는 학습이 된 건만으로도 만족하며
생활하는 분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도박이라 생각하지 않고 놀이다라고 생각했다.
맞다 그것은 놀이고 게임이었다.
그래서 져도 후회 없고(물론 속은 쓰리다) 이긴 친구도 나쁘게 보이지 않는 것이다.
게임을 하다보면 늘 궁금한 것이 상대방의 패이다.
그들은 무슨 패를 가지고 있을까?
이 궁금증에 옛날 주성치나 주윤발이 나오는 홍콩영화 가운데 상대의 패를 눈으로 투시하는
장면은 보고난 후 혼자 방안에 앉아 꼭 연습을 해보는 센스를 발휘하기도 했을 것이다.
“인생은 도박”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것은 분명 “인생은 도전이다”라는 말을 잘못 말했을 것이다.
도박이라는 단어는 일반적으로 막가는 사람들이 쓰는 단어가 맞다
따라서 인생을 도박과 같이, 또는 도박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막가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도전과 도박은 반드시 구분되어야 한다.
우리는 최근에 정치를 또는 자기 주변의 일들을 도박으로 생각하고 일을 벌이는 인간들을
보고 있다.
이들은 막가는 인간들이 맞다.
자신의 미적 감각의 실험을 위해 강을 판다거나, 그들 자신의 알량한 자존심을 위해
이미 합의된 계획을 백지로 만들려 한다거나, 그들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기 위해
무언가를 은폐하려는 행동을 한다거나, 또 불법과 탈법을 저지르는 인간들을 보고 있다.
이런 인간들은 대부분 대화를 원치 않는다.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하고 듣고 싶은 말만 듣는다.
이런 인간들은 대부분 늘 무엇인가 짓고 만들고 해서 자기가 한 걸 남기려한다.
이런 인간들은 대부분 귀가 얇아 듣는 소리마다 흔들린다.
이런 인간들은 대부분 패를 던져야 될 때와 레이스를 해야 할 때를 스스로
판단하지 못한다.
그래서 이런 인간들은 대부분 끝장을 본다.
뭐라 옆에서 조언하려하면
됐단다. 자기가 다 알고 자기가 다 알아서 한단다.
이런 인간들은 대부분 사고를 쳐도 크게 친다.
결과는 뻔하다.
쪽박이다.
혼자만 쪽박이 아니라 같이 쪽박이다. 이게 큰 문제인 것이다.
이들은 막가는 인간들이 맞다.
막가는 인간들은 알지 못한다.
“도박판에서의 진짜 행운은 가장 좋은 카드를 손에 쥐는 것이 아니라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가는 때를 아는 자다.“ 라는 말을...
그들은 급한 마음에 계속해서 도박을 걸어 올 것이다.
어떤 카드를 내어 놓을지 모를 일이다.
우리는 그들의 패를 미리 예측하고 대비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의 레이스를 받을 것이다.
그 이유는 우리가 예상하듯 그들의 패는 “ 구라 “ 이기 때문이다.
이제 어른이 되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심부름에 몰래 맛보며 소믈리에의 잠재력을 키웠던 기억을 더듬어
이제는 커피자판기 앞에서 혹시 모를 나의 바리스타(Barista)의 잠재력을 확인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