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현재 대한민국 서울특별시에 살고 있는 학생이다.
문득 마을버스에 대해 생각나는 것이 있어 갑자기 이곳에 글을 쓰게 되었다.
내가 처음 우리 마을 산골 분교초등학교에서 한글을 배울 때 쯤 우리 마을에는 마을버스 한 대가 들어 왔다. 도시생활을 하지 못했던 나는 버스가 너무 신기하고 거대해서 입을 다물지 못하고 매일 집밖으로 나와 구경을 하였다. 경운기만 보고 자랐던 나에게 마을버스는 정말 위대한 발명품이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마을버스는 '장기할부'’라는 제도로 첨에 공짜로 구입해서 나중에 천천히 갚으면 된다는 조건이라서 마을사람들은 ‘외상이면 소도 잡아먹는다.’고 하며 마을회의 때 모두 찬성했다고 한다. 커다란 덩치의 마을버스는 많은 사람들을 태우고 큰 소리를 내며 울퉁불퉁하고 구불구불한 산골길을 요리조리 헤집고 다녔다. 사람들은 마을이 발전했다며 기뻐했고 어떤 이는 만세까지 불렀다.

처음에 운전기사는 면허가 없었지만 사람들은 아무도 운전을 할 줄 몰랐기에 그에게 운전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얼마 안 있어 윗동네에도 마을버스가 들어왔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그러던 어느 날 좁은 길을 사이에 두고 마주 달리다가 정면으로 충돌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죽기도 하였고 피를 흘리며 다치기도 하였다. 처음으로 사람이 죽는 것을 보았다. 너무 놀라 며칠 동안 밥도 못 먹었다.
교통사고가 수습이 되고 난 후에 운전기사는 또 다시 운전대를 잡으려고 했다. 이번에는 가짜 운전면허까지 몰래 따려고 하다가 사람들에게 들켜 버리고 말았다. 사람들은 불안해하면서 버스를 타지 않으려고 했고 모두 차에서 내려버렸다. 학생들은 그것도 모자라 버스에 나쁜 낙서를 하고 도망갔다. 손님도 없고 사람들이 흉을 보자 운전기사는 창피하다며 운전기사를 그만두었고 새로운 운전기사가 왔다. 새로운 운전기사는 운전이 미숙하여 갈팡질팡하며 사람들을 바라는데 까지 데려다 주지도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어떤 선글라스를 낀 아저씨가 운전기사제복을 멋지게 입고 나타나서 힘없는 운전기사를 힘으로 밀어내고 몽둥이를 허리에 찬 다음 운전석에 앉아 버렸다. 사람들은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허리에 찬 몽둥이가 무서워서 아무도 말을 하지 못하였다. 선글라스 아저씨는 버스를 무지 빠르게 난폭하게 몰았다. 그때당시 버스는 12시까지 밖에 운행을 안 하였는데 늦게까지 일하는 사람들은 이래저래 불만이 많았다. 선글라스 아저씨는 꽤 오랫동안 운전을 하였다. 계절이 열 번도 넘게 바뀔 때 까지 줄곧 운전을 했던 것 같다. 난 그 아저씨가 평생 우리 마을 마을버스 운전을 할 것만 같았다.

선글라스 아저씨는 가끔씩 버스를 고친다며 사람들을 내리게 하고 바퀴를 뜯었다가 고치고
부속도 갈고 색칠도 다시 하고 하였다. 사람들은 불만이 쌓였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며 참곤 하였다. 그때까지도 마을에는 운전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선글라스 아저씨는 운전석에 앉아서 연신 윗동네 운전기사를 욕을 해댔다. 그리고 윗동네 사람들까지도 싸잡아 욕을 해댔다. 버스 벽면에는 “윗동네 사람은 만나지도 말자”라고 써 붙였다. 난 그때까지 윗동네 사람들이 정말 나쁜 사람인줄 알았다.
하지만 우리 작은 아버지가 윗동네 사람인줄 몰랐을 때였다.
혈기 왕성한 고등학생 형 누나들과 아줌마들만 자기들끼리 숙덕대곤 했지만 선글라스 아저씨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쌀쌀맞은 안내양 누나는 맘에 안 드는 손님들이 버스를 태워달라고 하면 태워주지 않고 바로 “오라이”를 외쳤다. 버스를 못 탄 사람들은 먼 길을 무거운 짐을 낑낑대며 짊어지고 걸어 다녀야만 했다. 단풍이 붉은색으로 곱게 물든 어느 날 선글라스 아저씨는 버스를 통째로 다시 고쳐야 한다며 마을을 떠들며 돌아다니다가 나타나지를 않았다. 사람들은 선글라스 아저씨가 친구들과 술을 먹고 취해서 싸우다가 심하게 다쳐서 병원에 입원했다고 했다. 난 그 이후로 그 아저씨가 운전하는 버스를 타 본적이 없었다.
운전기사가 없자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는데 머리가 벗겨진 대머리 아저씨가 선글라스 아저씨가 소개했다고 자처하며 말릴 틈새도 없이 운전석에 마구잡이로 앉았다. 그 사람은 허리에 야구방망이를 차고 있었는데 사람들은 몽둥이 보다 야구방망이로 맞게 되면 더 아프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대머리 아저씨는 처음에 운전을 잘 못해서 논두렁에 자주 빠졌다. 사람들이 버스에서 떨어져 다치고 죽고하자 그동안 참았던 사람들이 크게 소리치며 욕을 하였다. 대머리 아저씨는 사람들을 큰 오일장에 공짜로 데려가준다고 하며 선심을 쓰며 달래기도 하고 가끔씩 야구방망이를 허공에 위협적으로 휘둘러 대기도 하였다. 이 아저씨도 선글라스 아저씨처럼 버스를 엄청 빠르게 운전하였다. 그래서 나는 가끔 버스에 타면 멀미가 나와서 참을 수 가 없었는데 어른들은 잘 참았다.

나는 종종 엄마가 준 버스요금을 떡볶이를 사먹는데 다 까먹고 먼 길을 걸어 다녔는데 마을에는 많은 사람들이 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 다니곤 하였다. 그때 그 사람들도 버스요금을 나처럼 떡볶이를 사먹었을 것 이라고 생각한 나는 지금 생각해도 유치했던 것 같다.
마을 사람들은 겨울이 다되어가자 봄에는 새로운 운전기사에게 버스를 맡기자고 했지만 대머리 아저씨는 그냥 예전에 같은 회사에 근무했던 자기 친구가 했으면 어떻겠냐고 했다. 사람들은 화가 많이 나서 모두 버스에 내려서 그냥 걸어가자고 했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걸어갔다. 앞으로 절대 버스를 안타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사람도 있었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경운기를 타고 다니겠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온 동네 사람들이 그러자 대머리 아저씨는 마지못해 그러면 마을 사람들이 알아서 좋아하는 운전기사를 종이에 적어내라고 하였다.
사람들은 저마다 좋아하는 사람을 종이에 적어냈는데 우연히 대머리아저씨 친구 분이 운전기사를 맡게 되었다. 보통사람처럼 생긴 아저씨는 1년 동안만 운전한다고 마을사람들에게 약속하였고, 처음부터 버스를 난폭하게 몰지는 않았지만 나중에 버스요금을 마을사람 몰래 왕창 삥땅을 치다가 걸려서 혼 줄이 제대로 났다. 보통아저씨는 마을사람들이 자기 이름을 적어준 덕분에 운전기사를 하게 되었다며 틈만 나면 마을사람들에게 잔치를 크게 벌여주곤 했다. 몰래 버스요금을 삥땅친 돈으로 잔치를 벌여준 것을 아는 사람은 그 당시 그리 많지 않았다.
1년이 다되어가자 멸치가게 아저씨가 운전기사를 하겠다고 하며 목포아저씨와 함께 마을 사람들 앞에 이야기 했다. 예전에 선글라스 아저씨 친척 되는 분도 엉겁결에 마을사람들과 함께 이야기 하게 되었다. 보통아저씨는 운전을 알려준다면서 목포아저씨만 빼고 두 분과 함께 어울려 다녔다. 난 자세히는 모르지만 목포아저씨만 ‘왕따’를 당하는 것 같아 보였다.
목포아저씨만 빼고 셋이서 매일 만나서 술도 마시고 고스톱도 치면서 운전기술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이때 누군가 큰소리로 머라 외치고 있었는데 난 그가 누구인지 몰랐다.

마을사람들은 수근 거렸지만 종이에 이름을 적는 날에는 그냥 멸치가게 아저씨 이름을 적어냈다. 우리 엄마는 멸치를 싸게 준다고 해서 멸치가게 아저씨를 적어냈다고 했다.
멸치아저씨는 예전보다 그리 난폭하거나 빠르게 운전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렇게 운전하는데도 사고가 많이 났다. 어떤 날은 버스 지붕이 날아가고 심지어 버스가 달릴 때 뒷바퀴가 빠지기도 하였다. 버스안의 의자도 부서져서 사람들이 많이 다쳤고 창문도 고장이 나서 비오는 날에는 옷이 다 젖기 일쑤였다.

마을 아저씨들은 ‘정비 불량’이라고 멸치 아저씨를 탓했지만 멸치아저씨는 버스가 오래된 탓이라고만 했다. 그리고 모든 잘못은 대머리 아저씨와 보통아저씨 책임이라고 거꾸로 욕을 했다. 나는 보지는 못했지만 한번은 진짜로 골목길에서 멸치아저씨가 여러 사람을 데려와서 대머리아저씨와 보통아저씨를 몰매를 때렸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아직도 그 아저씨들끼리는 서로 사이가 안 좋다는 소문이 있다.
어쨌든 사람들은 멸치아저씨 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멸치 아저씨 잘못을 더 많이 알고 있는 듯 했다. 여름 내내 푹푹 찌는 버스 안에서 나는 새 버스를 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옆 동네에서 전학 온 아이가 자기들은 에어컨도 나오는 신형버스를 타고 다닌다는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다. 결국 1년이 다 되어갈 때 쯤 멸치아저씨는 새로운 버스를 구입하자고 하였지만 이미 마을회비는 동이 나버려서 버스 할부금조차 낼 수도 없었다. 소문이 나자 사람들은 쓸데없는데 돈을 다 낭비했다고 욕을 하였고 옆 동네에서는 빚쟁이들이 몰려와 버스 할부금을 갚지 않으려면 버스를 내놓으라고 윽박질러 댔다. 멸치 아저씨는 나 몰라라 하면서 운전대를 놓고 그냥 마을을 떠나 버렸다. 난 참 무책임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을 마무리 짓던 해였다.

이듬해 마을에는 개나리가 활짝 피었고 마을사람들은 왕따 당한 목포아저씨를 운전기사를 시켰다. 조심스런 목포아저씨는 운전이 끝나면 매일 밤마다 돈이나 금붙이를 빌리러 다녔다. 저 멀리 배타고 나가서 섬에까지 돈을 빌리러 다니기도 하였다. 마을사람들은 서로서로 창피해 하면서 쉬쉬했다. 어떤 날은 옆 동네에서 버스할부금 받는 사람이 와서 버스요금 통을 통째로 들고 가기도 했지만 마을사람들은 아무도 나서지 못했다. 목포아저씨는 그러면서 몇 달인가를 조용히 운전만 하다가 갑자기 윗동네로 길을 놓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어떤 사람은 찬성했고 어떤 사람은 반대했지만 목포아저씨는 휴일 날 윗동네 운전기사를 만나 그 동네에서 잠도 자고 이야기도 하고 왔다.
윗동네사람들은 무조건 나쁜 사람들 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생각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고 목포아저씨가 말하면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목포아저씨는 이웃마을 사람들을 잔뜩 불러와 공놀이잔치도 크게 벌였다.
마을 사람들은 박수치며 목포아저씨를 칭찬했지만 나중에 윗동네사람들에게 몰래 돈을 꾸어준 사실이 알려지자 또다시 손가락질을 해댔다. 난 그때 돈을 빌려주려면 마을사람들 모두에게 알려주고 빌려주었으면 훨씬 좋았겠다. 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다니 스스로 중학생이 되니까 철이 드나 보다. 라는 생각까지 했다 .
(2부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