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이제 국가와 언론 그 자체가 아니라, 특정한 정부와 특정한 언론이 문제인 시대에 살게 되었다. 우리도 드디어 40년 전 독일 수준에 도달한 셈인가? 그렇지 않다. 우리는 뵐이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에서 개탄해마지않았던 수준에도 아직 도달하지 못했다. 독일에는 <빌트>가 하나밖에 없지만 우리나라에는 여러 개의 <빌트>가 있다. <빌트>도 <빌트>이고,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통>도 <빌트>이고, <쥐트도이체 차이퉁>도 <빌트>이고, <프랑크푸르터 룬트샤우>도 <빌트>라고 생각해보라. 독일 사회는 오늘과 같지 않을 것이다. 발행 부수 일등부터 삼등까지가 모두 <빌트>와 같은 신문인 나라. 그리고 그 밖에 또 여러 개의 작은 <빌트>가 있는 나라. <빌트>가 되지 않으려고 애쓰면 신문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려운 나라, 그게 대한민국이다.
[중략]
카타리나 블룸이 묻는다. “그대는 신문 헤드라인을 진실이라고 믿습니까?” 나는 대답한다. “아니오. 믿지 않습니다. 헤드라인을 진실로 믿어도 되는, 그런 좋은 신문을 집으로 구독해보는 것이 내 간절한, 언제 이루어질지 모르는 소망입니다.”
- 청춘의 독서 '13. 내 생각은 정말 내 생각일까 - 하인리히 뵐,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에]' 중 일부 -
[주]
빌트 - 독일의 최대 언론 재벌사의 대표적 타블로이드 일간지(독일의 조/중/동 정도)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차이통 - 독일의 정통(제대로 된) 보수 성향의 신문
쥐트도이체 차이퉁 - 독일의 매우 품격있는 중도 자유주의 신문
프랑크푸르터 룬트샤우 - 독일의 진보 성향의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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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참 헷갈리는 것이 있다. 대통령님을 존경하는(또는 존경한다고 말하는) 이들로 부터 “유시민도 노무현 처럼 해야한다. 최루탄과 공권력의 폭력 앞에 홀로 당당히 버티던 노무현에 비해 유시민은 좀 모자라는 감이 있다”라는 말을 간혹 듣는다. 과연, 대통령님이 최루탄과 공권력 앞에서 홀로 버티시던 것과 첨맘님이 언론의 집중포화를 홀로 받으면서도 당당하게 반박하는 행위 사이에 얼마나 큰 간극이 있는 것일까? 앞으로 조중동 뿐만 아니라 한겨레 조차도 첨맘님과 국민참여당을 줄기차게 공격해 댈 것이다.
묻고싶다. 과연 한겨레의 '1면 사과' 직후의 보도행태가 첨맘님의 경솔함에서 시작된 것일까?
나는 위와 같은 말을 하는 이들에게 꼭 대통령님의 서거 직전, 직후의 이 나라 언론행태를 복기해 볼 것과, 하인리히 뵐의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를 읽어 볼 것을 권하고 싶다. 시간이 부족하거나 책을 오래 읽는 것이 고통스럽다면, 첨맘님의 '청춘의 독서 13장. 내 생각은 정말 내 생각일까 - 하인리히 뵐,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에]' 만이라도 꼭 읽을 것을 권하고 싶다. 한장이 통째로 그림인 페이지를 제외하면 정확하게 25페이지 분량이므로 누구든 맘 만 먹으면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위의 생각은 첨맘님의 한겨레에 대한 대응방법에 대해서 비판하는 분들에게 하는 말이 아닙니다. 한겨레에 대응하는 자체를 경솔하다 하는 이들에게 하고픈 말입니다.)
진정한 연대는 서로 당당하고 대등할 때 가능하다. 한 쪽이 두려워서, 또는 한 쪽을 자극한 후의 결과가 두려워서 '참아야 한다'고 생각할 때..., 대통령님의 대미 외교가 친북반미가 되고, 이명박의 굴욕적인 외교는 실용주의가 된다.
당당함, 그것은 '노무현정신의 표현방법 No.1'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