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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님께 드리는 편지
준비하고 있던 5월 학부모 편지를 채 마무리하기도 전에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학부모 편지를 미리 띄웁니다.
학부모님, ‘마지막’이라는 이 말이 지금 이 순간 제 가슴을 송두리째 후벼 파고 있지만, 안타까운 심정을 억누른 채 이렇게 제 일신에 관한 소식을 전할 수밖에 없음을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우선 제가 왜, 지금 이 순간 학부모님께 이런 내용의 편지를 드려야 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도, 또 용납할 수도 없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아무 말씀도 드리지 않는 것은 비록 짧은 시간이긴 하나 반 학기 동안 아이들 곁을 지켜온 담임으로서의 소임이 아닌 듯하여 힘들고 괴롭지만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TV 뉴스(민주노동당 가입 교사 파면, 해임)를 통해 소식을 접하고 나서부터 내내 흘러내리는 눈물을 지금 이 순간도 주체할 수가 없습니다.
학부모님,
학기 초, 아이들을 통해 이미 들으신 분도 계시겠지만 저는 대학교를 졸업한 뒤 교원임용고시에 곧바로 응시하지 않았습니다. 대학 4학년 때부터 전포동 달동네에 위치한 한울타리 공부방이라는 곳에서 자원교사로서 아이들을 만났고, 그 아이들의 삶 속에서 가르치는 일을 통해 충분히 보람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일정 수입이 없어 자원교사들과 호텔 유리창을 닦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또 원치 않는 과외를 하며 공부방 일을 하기도 했지만 제 마음은 어느 누구보다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아, 이렇게 아이들을 만나고 가르칠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에 오랜 세월 교사가 되기를 바랐던 부모님의 기대도 저버린 채 몇 년 간 공부방 일에 매진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선택한 공부방 일을 하면서도 문득 문득 떠오르는 교단에 선 제 모습을 결코 외면할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2년 간 임용고시 공부를 한 끝에 스물아홉이라는, 당시로선 다소 늦은 나이에 그토록 원하던 교단에 설 수 있었습니다.
발령을 받던 그 순간, 얼마나 가슴 벅차게 기쁘던지요. 정말이지 세상을 다 얻은 듯 했습니다. 그래서 그 누구보다 더 열정적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아이들과 함께 하려고 온 힘을 쏟아 부었습니다.
경기도 부천, 학교 바로 옆에서 자취 생활을 하면서 집으로 아이들을 초대하고, 같이 밥을 지어 먹고,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랬을까 싶을 정도로 무거운 텐트를 짊어지고 여름방학이면 춘천으로 야영을 떠나고, 매년 겨울방학에는 학급문집을 만들고, 자전거를 타러 가고, 연극과 영화도 보러 다니고, 그렇게 아이들과 함께 한 저의 일상을 교단 일기에 쓰면서 참 행복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던 2000년 여름, 부산으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부모님이 계시는 곳이라, 그리고 제가 자란 고향인지라 더 마음껏 제 포부를 펼칠 수 있다고 믿었고, 그런 만큼 더 열심히 아이들을 만나나갔습니다.
그렇게 14년을 열심히 살아왔고, 지금까지 제가 만난 모든 아이들에게 제가 가진 에너지와 열정을 오롯이 쏟아 부었습니다. 감히 교사로서의 제 삶에 한 점 부끄럼과 후회가 없다고 말씀 드릴 수 있을 만큼…
학부모님, 이쯤에서 전 제가 언론에서 그토록 혐오하며 보도하고 있는 전교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 교사임을 밝히려 합니다.
지난 4월이었나요, 아니 5월이었나요? TV의 한 토론에서 한나라당 조전혁 의원의 교원단체 교사 명단 공개와 관련한 토론을 보면서 저는 마음이 참 많이 아프고 또 화가 났습니다. 전 제가 전교조 교사인 게 하나도 부끄럽지 않은데, 아니 오히려 전교조 교사로서의 제 삶이 자랑스럽고 당당할 뿐인데, 전교조 교사가 교원단체 교사 명단 공개를 반대하는 이유는 단지 개인 신상에 관한 정보를 그야말로 정치적인 이유로 공개한다는 몰상식적인 바로 그 사실 때문인데, 왜 그렇게 언론과 현 정부에서는 전교조 교사를 비하하려고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정작 학교 현장에서는 교총 소속의 교사인지 전교조 소속의 교사인지 하등 중요하지도 않은데 말입니다.
학부모님, 전 지금까지 전교조 교사였기에 발령을 받던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제가 만난 아이들의 삶 속으로 온전히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문득 대학 2학년 때의 그 일이 떠오릅니다. 1989년 당시 우리나라는 전교조 결성으로 온 나라가 시끄러웠지요. 다른 나라에는 보편적인 교원노동조합이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불온시 되고 있었으니까요. 일부 학교 현장에서는 ‘전교조 교사를 식별하는 방법(?)’이라는 제목으로 수업시간에 민요를 가르치는 교사, 아이들에게 유난히 친절한 교사, 시사와 관련된 내용을 말하는 교사 등 말도 되지 않는 글들이 떠돌기도 했답니다.
전 그때 그 글들을 읽으면서 ‘이런 교사가 전교조 교사라면 나도 전교조 교사가 되어야겠다’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과나 동아리의 선배님들 중에도 전교조 교사인 분들이 꽤 많았답니다.
학부모님, 저는 발령을 받는 첫 해부터 제가 결심했던 것 중의 하나를 바로 실행에 옮겼습니다. 뭐, 아주 대단한 것은 아니고 제가 버는 월급의 일부나마 다른 누군가를 위해 후원을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녹색연합과 인권연대, 그리고 제가 일했던 공부방, 민주화실천가족협의회, 전국농민회총연맹, 민족예술인총연합회 등에 소액이나마 후원금을 납부했습니다. 2003년부터는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에게도 후원금(만원)을 내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 어떤 정치적 목적 하에 후원금을 낸 것은 분명 아니었고 말 그대로 순수한 후원금의 수준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중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에게 후원금을 납부한 것이 민주노동당에 가입을 한 것이라며 (맹세코 저는 민주노동당의 당원으로 가입한 적이 없습니다.) 정치자금법[정치자금 부정수수]과 정당법[발기인 및 당원의 자격], 국가공무원법[정치운동의 금지, 성실의무, 품위유지의 의무]을 위반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처럼 후원금을 낸 전국의 국공립학교 교사 134명을 파면, 해임시키겠다고 합니다. 매년 소득공제 신고를 하는 12월, 정당에 정치후원금을 내면 전액 세액공제를 시켜준다며 정치후원금 납부를 장려하던 정부가 이제는 후원금을 낸 것이 특정 정당의 당원인 증거라며 저를 교단에서 내쫓으려고 합니다.
반면 한나라당 국회의원과 뉴라이트 단체 등에 후원금을 제공했거나 한나라당의 정책자문위원을 맡는 등 명백히 정치활동을 한 교장과 교원단체들은 지금까지 모두 무혐의 처리되었습니다. 게다가 각종 교육 비리에 연루돼 구속된 현직 장학사와 교장 가운데는 아직 재판이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징계가 내려지지 않은 경우도 허다합니다. (전교조 교사는 아직 재판 한 번 받아 보지 않았고, 따라서 그 어떤 판결도 내려진 바 없는데도 불구하고 징계가 확정되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왜, 왜 유독 전교조 소속의 교사들(전국 134명)만 문제를 삼고 있는지 저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더 억울합니다. 다른 그 무엇보다 제가 너무나 좋아하는 교사로서의 일을 그만둬야 한다는 사실이, 아이들과 함께 꿈을 이야기하고 세상을 만나나가는 일을 이제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 가슴 아픕니다.
학부모님, 제가 아이들 앞에 그리고 학부모님들 앞에 조금이라도 부끄러운 행동을 했다면 감히 이런 글을 드리지 못할 것입니다.
솔직히 저는 지금,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가슴이 먹먹할 뿐입니다. 저의 존재 이유이기도 한 아이들 앞에서 내일 당장 눈물을 참고 수업을 할 수 있을지, 어떤 눈빛으로 아이들을 바라봐야 할지 겁이 날 뿐입니다. 어제, 오늘 혼자서 참 많이 울었습니다. 우는 모습을 제 부모님께 보여드리고 싶지 않아 힘들었지만, 그렇게라도 울지 않고서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6월 안에는 징계를 끝낸다고 합니다. 아니 6월 초에 마무리를 짓는다고 합니다. 그때까지 제가 무엇을 해야 할지 정말 잘 모르겠습니다. 교육과학기술부 앞에 가서 ‘난 정말 억울하다’고 악다구니라도 써야 할지, 말로만 듣던 단식농성이라도 해야 할지, 교육청 앞에서 1인 시위라도 해야 할지…
아, 정말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 일도 없는 듯 수업을 할 수 있을지, 토요일에 하기로 계획되어 있는 삼겹살 파티를 할 수 있을지, 기말고사 문제를 낼 수 있을지, 수행평가를 할 수 있을지, 6월에 계획되어 있는 아이들과의 성적 상담과 공동체 놀이를 할 수 있을지 정말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 반 아이들과 함께 하고 싶은 일이 정말 너무 많은데 말입니다.
학부모님, 그런데 저는 그 무엇보다 저로 인해 혼란스러워할 아이들이 걱정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겐 정말이지 미안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아이들 앞에 전혀 부끄러운 일을 한 바 없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받을 혼란과 충격을 생각하면 가장 미안한 마음이 드는 대상은 역시 우리 반 아이들입니다.
학부모님, 아무 대책도 없이, 제 부모님과 함께 앉아 편파적인 TV 뉴스 보도 내용을 보는 일이 너무 힘이 들어서, 이렇게라도 제 속마음을 누군가에게 털어놓지 않으면 가슴이 터져버릴 것만 같아서 학부모님께 실례를 무릅쓰고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세 번째 학부모 편지를 드립니다.
오늘, 이 편지를 드리는 일이 과연 잘 한 일인지, 생각이 짧은 일인지 판단도 하지 못한 채 아이들 편으로 편지를 전할 수밖에 없음을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아이들 곁에 머무르는 동안만큼은 1학년 5반의 담임으로서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모쪼록 이 편지가 제가 학부모님께 드리는 ‘마지막’ 학부모 편지가 아니길 진심으로 바라며 이만 글을 맺겠습니다. 늘 몸과 마음, 건강하시길 빕니다.
2010년 5월 23일 밤
더 이상 눈물 흘리지 않을 것을 다짐하며
1학년 5반 담임 김은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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