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대구를 떠나 서울에 온지 만으로 따지면 이제 겨우 10년째다.
'수구초심' 옛 유학인들은 금수도 머리를 고향으로 하고 죽는다는데 무릇 사람도 고향을 그리워하고 그 근본을 잊지 않는다 하였다. 그러나 난 고향이 그립지 않다. 서울이 더 좋다. 지금 사는 부천이 더 좋다.
대구에 특별히 나쁜 기억이 있다거나 굳이 정치적인 관점이 달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서울이 시원하다. 대구는 너무 덥다. 개인적인 경험상 서울에 와서 단 한번도 더워 죽겠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여름이 오나 싶으면 이미 추계란다. 하여 서울에 와서 제일 좋아하는 계절이 여름으로 바뀌었다. 대구의 여름은 고통스러웠다. 바람 한점 없는 37도. 38도,,, 비가 없다면 한달내내 그런 날씨가 이어지는 때도 있었다. 아침에 동이 트는 즉시 찌는 듯 푹푹 올라왔다. 336 좌석버스에서 졸다 창가에 머리가 닿으면 아뜨~ 하며 깼다는 이야기에 서울 친구들은 자지러졌다. 그 이야기가 구라인줄 안다.
고딩시절 보충수업이라며 여름 내내 학교에 잡혀 있었다. 오전 8시부터 저녁 8시까지 있었으니 뭐 학기중보다 조금 더 일찍 끝난다는 것 외에 방학이 달리 없었다. 그 날씨에 60여명이 콩나물 시루처럼 얹혀 선풍기 3대에 의지했으니 돌이켜보면 극기라 할만하다.
물론 사람 사는 곳에 이 혹서를 피할 처마가 왜 없었겠는가. 습하고 쨍쨍한 여름날 토요일 오후, 우린 운동장에서 공을 차고 땀으로 적신 몸을 어푸어푸 하며 서로 등목했다. 친구 두명이 특공조가 되어 담을 넘어 시원한 맥주를 공수하고, 공을 잘차지도 학교에 술을 반입할 정도로 간뎅이도 없었던 난 주로 칠성시장에 가서 큰 수박을 공수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4백여미터의 거리를 끙끙대며 수박을 이고 나면 옷에 땀이 뚝뚝 베였다. 땀 흘린 뒤 술도 있고 수박도 있고 시원한 수돗물도 있으니 홀딱 벗고 뛰어다니며 서로 물장난질을 해도 선생님들은 그쯤은 봐주었다. 당시 에어컨이 있는 집은 드물었다. 열대야가 한달씩 지속되는 날씨에 낮에 땀을 흘리지 않으면 밤에 쉬이 잠들기가 힘들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아직 젊기 때문인지 고향이 특별히 생각나거나 그립지 않다. 그러나 가끔 뜨거운 날 친구들과 함께 보낸 그 시원한 빙수같은 추억들은 그립다.
대구 회원님들 여전히 대구는 그렇게 더운가요? 혹 그렇다면,,,
피서는 서울로 강추!! 부천은 더 짱!!
- 이 시원한 날 수도권 사람들이 왜 강원도에 가서 고생 바가지를 하는지 이해 못하는 일인 배상 -
p.s 제가 강원도 못간다는 이유로 쓴 글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 알아주세요. 진짜 그래요. 홍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