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골드하겐 테제'에 관해 쓴 글은 어느 날 아침에 깨 이년 전의 그 강연이 갑작스럽게 떠올라 복기한게 아니다. 정신나간 놈도 아니고 기억난다고 마구 충동에 글을 쓰진 않는다. 나에게 일반적인 글쓰기는 우리 동네(시민광장, 참여당)에서 활동하며 부딪히는 고민을 의인화 또는 대유의 방식으로 표현 하고자 하는 것이다. 개인과 집단의 모호한 책임 관계에 대해 밝히고자 한 것인데 워낙 글에 젬병이라 주제에 다소 빗겨나 버렸다.
오늘 쓰고자 하는 이야기는 대유가 아닌 직접 화법으로 해도 괜찮을 것 같다.
예상한 대로 전국 각 지역에서 참여당과 시민광장의 관계 설정에 대한 문제를 놓고 시끌하다. 어떤 지역은 참여당파 vs 시민광장파가 생겼다는 말도 있다. 개인적으로 매우 해괴망측 하게 느껴지지만 사람 사는 세상에는 그런 일이 한두번이 아니더라. 다행히 내가 사는 부천은 그런 문제에 있어서는 가장 깔끔한 지역이 아닐까 자평한다. 아다시피 이 동네 사람들이 수준도 좀 있고^^ 무엇보다 쓸데 없는 논쟁을 싫어한다. 그런 조짐이 있으면 조기에 슬쩍 진압?해 버리는 재주들도 있다. 하여 참여당과 시민광장의 관계에 대한 문제는 아주 미미하다.
당 활동에 있어서 굳이 문제를 찾고자 한다면 하나 있더라. 지난 지방 선거에서 우리 지역은 1명의 비례 당선자를 냈다. 시민광장 게시판에 매일 유익한 뉴스 브리핑을 펌하는 넝쿨님이다. 사적인 스토리를 공개하는 것에 대해 반감도 있을 수 있지만 시의원이 감당할 몫이라고 생각하고 말한다. 당선 이 후 최근까지 난 공식적인 또는 사적인 자리에서도 그 분에게 적지 않은 컴플레인을 제기해 왔다. 응당 지역을 주도적으로 책임져야 할 비례 의원이 왜 의정에만 몰입하는가. 결국 당원들과 괴리 되어 밖으로 맴 도는게 아니냐는 거다.
그 분도 지역은 지역위가 시의원은 의정을 맡는게 당연하지 않냐고 마땅한 항변을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런 내 컴플레인은 정치 일반의 현실적인 고려에서 출발한다. 시의원 한명이 시의회에서 단독으로 낼 수 있는 성과가 무엇인가. 확실히 별로 없다. 고작 어떤 지역의 주차 문제 정도의 민원만 해결해도 시민들이 만세를 부를 것이다. 대부분의 의정은 다른 야당과 연합해 한표 잘 행사하는 것으로 진행 될 것이다. 상근자가 없는 지역위가 지역을 전부 맡기를 바라는 것도 무리다. 곧 힘에 부쳐 하나.둘 손 놓을텐데 비례 의원이 지역을 주도적으로 관리하지 못하면 우리 모두 같이 쪽박을 차리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당원들이 지치기 전에 비례 의원이 당 내부의 일에 솔선수범 하란 요구였다. 그 분도 힘겨웠을 것이다. 나름 친한 이들의 컴플레인에 당혹스럽기도 했을테고... 이런 식으로 나와 토닥, 당원과도 토닥... 그냥 확 다 때려 치고 싶을 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활동 중 나를 포함해 당원들의 문제점이 노출 되었다. 대표성에 대해 잘못 이해하는 경우가 적지 않더라. 시의원을 당원의 사자 또는 대리인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었다. 쉽게 말해 시의원을 마치 당원 '나'의 심부름꾼 또는 봉사자로 본 것이다. 간혹 특정 시 의정에 대해 압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욕구도 보였다. 바로 이 지점, 권한과 역할에 대한 혼선이 있으니 당원도 의원도 같이 힘겨워 졌다. 내가 그 분에게 바란 것은 비례 의원으로서 지역위 문제를 우선해 달라는 것이지 결코 의정에 대해 기대하는 바가 없었다. 어째든 이런 문제점을 깨닫자 현 시의원의 처지가 이해가 되더라. 짐작컨데 다른 지역위와 의원들도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으리라.
의정은 의원에게 맡긴다. 다소 어려운 법률적인 설명이지만 이것을 위임이라 한다. 의원은 그 자체로 권한을 가지는 단독 기관이다. 기관은 권한 내에서 자기 결정권이 있다. 어떤 작위(해달라고)를 청원을 할 수는 있어도 그것이 안된다고 지속적으로 문제 삼는 것은 삼가해야 한다. 어떤 부작위(하지 말라는 것)를 강제하는 것은 당연히 불가하다. 부작위에 대한 청원도 삼가해야 한다. 이것이 기관에 대한 일반 상식이다.
이제 시민광장을 보자. 같은 문화권의 동네인데 여기라고 다를까. 대표를 혹 회원 '나'의 심부름꾼 또는 봉사자로 보는게 아닐까. 대표가 비록 단독 기관이 아닐지라도 선거를 통한 위임의 방식으로 선출했다면 그만한 권한은 보장해야 속된 말로 조직이 돌아간다. 이런 문제 제기는 비단 지금 일련의 대표 출마에 관한 문제만 국한된게 아니다.(예전에 정리한 것으로 아는데 왜 또 나오는지 모르겠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대표성을 이해하는 방식은 위 예의 글처럼 문제 있다. 개인, 대표, 기관, 위임 등을 놓고 좀 더 세밀하고 인간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내가 과거 1기라고 해서, 2기라고 해서 3기, 4기라고 해서 태도가 다르던가. 앞으로 5기, 6기 또는 선거 폐지 하고 카페화 된다고 해도 달라지겠는가. 우리 동네는 대개 리더십 보다 팔로우십 역량이 더 문제였다고 감히 진단한다. 단언컨대 나 같은 태도의 회원이 많을수록 조직은 잘된다.
사족 : 거드름을 피우자면 난 글을 잘 쓰지는 못해도 빨리 쓰는 편이다. 이 글을 쓰는데 10여분 정도. 빨리 쓰는 요령은 간단하다. 어떤 생각을 하면서 쓰는게 아니고 평소 생각한 것이나 습득한 정보를 그냥 타이핑으로 옮기기 때문이다. 퇴고나 정제가 부족해 어떤 이들에게 의도한 것 이상의 상처를 줄 때도 있다. 그럼에도 이런 습관을 버리지 않는 이유가 있다. 물론 시간도 줄여야 하고 무엇보다 생각을 하면서 쓰는 글일수록 자기 욕망을 통제 못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