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도 저물어 가네요....
작년 나에게 가장 충격적으로 다가온 사건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이었다.
나는 그가 대통령 재임중에 우리에게 그간 익숙해져있던 대통령으로써의 모습이 아닌 탈 권위주의적 모습과 ,
서민의 모습을 보이는
노 전 대통령을 보면서 새로운 롤모델의 대통령을 느꼈었고 또 그에게 많은 연민을
가졌었다. 또한 그는 퇴임 후 고향인 봉하마을에 낙향하여 그간 다른 퇴임 대통령들과는 다른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 주었고 나는 그런 그를 환호하고 지지했었다.
그러한 그가 불과 퇴임 후 1년 만에 엄청난 비리? 에 휘말리며 언론의 머릿기사을 장식할때에는 나는
그를 지지하고 마음적으로 후원하던 내 자신에게 "당신도 여느 전임자와 같은 사람이었나?" 하는 질문을
던지며 후회의 질책을 나 자신에게 보내면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던중 그는 자신의 몸을 던져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나버렸다. 나의 질문에 답변도 없이 아니 내가 달려가 물어볼 사이도 없이...
허망하게 그를 떠나보내고 난 조용히 그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노무현의 그의 삶은 역경 속에서 시작되었다.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상고를 마친 것이 학력의 전부라는 것은 여러분도 알것이다.
그는 그 역경을 딛고 공부하여 변호사로의 삶을 시작하며 우리에게 등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든다.
그가 만일 유능한 변호사로 편안하게 사는 길을 택했다면 그의 인생행로는 성공한 변호사로서의 삶
자체로만 마감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 고난의 길을 들어선다.
1981년 9월 소위 '부림(釜林)'사건의 변론을 맡으면서 그는 인권·정의·민주주의 같은 보편적 가치들과
연관된 활동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그러면서 그는 현시대의 정치적 억압과 사회적 불의에 도전하는
가시밭길을 걷게 된다.
이러한 행동과 삶을 택한데에는 노무현의 삶의 정신과 태도가 모두 함축되어 있을 것이다. 그는 권력의
협박에 위축되기는 커녕 오히려 투지를 불태웠고, 출세의 유혹 앞에서도 소신을 버리지 않았다.
그는 적당한 타협과 안주의 정치판을 온몸으로 부정하며 투쟁했고 몸을 던져 저항했다.
그러한 그가 극적인 과정을 거쳐 마침내 대통령에 선출된 것은 그야말로 신화 그 자체이다.
그러나 대통령으로서의 그도 우리의 정형화된 권위주의와 기득권을 놓치치 않으려는 세력에
의해 끈임없이 공격 당하며 휘 둘렸다. 그의 5년은 그러한 공격에 쉴세없는 방어였고 저항이었다.
그러한 모습을 지켜보는 국민은 그의 저항하는 모습이 안타까움 보다는 안정적이지 못한 그리고
어딘지 불안한 모습처럼 보였었고, 이에 대한 불만이 증폭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결국 그는 그 공격에
자신의 정치적 꿈을 이루지 못한 채 퇴임을 맞이하게 된다.
그의 임기내내 그를 괴롭히고 픽밥하던자들은 그가 재임 중에도, 퇴임 후에 라도 만들고자 했던
사람사는세상에 금품수수설 이라는 정치적 재를 뿌린다. 그로인해 그의 꿈은 짓밟히게 된다.
그가 퇴임 후에 불거진 금품수수 문제에서 깨끗하게 바로 해명하지 못한 것에는 물론 책임은 있다.
그러나 완전하게 규명되지 않은 일을 가지고, 비열한 방법으로 그를 국민앞에 모욕주고 망신을 주는
것이 과연 온당한 일인가? 무슨 권리로?
그는 그 일의 시시비비가 가려지기도 전에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것을 버림으로써 국민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했다. 여태까지 역대 대통령의 비리는 퇴임후 연례행사 처럼 일어났으나 그처럼
진심으로 사과하고 용서를 빌었던 예가 있는가? 그는 자신이 무죄라는 말보다
국민들께 죄송하다는 말을 먼저했다. 그리고 결국 그는 자신의 가장 소중한 부분을 버렸다 .
그는 삶에서 권위주의의 타파에 앞장섰고, 무엇보다도 그는 가식 없는 사람이며, 그 자신이 서민의
한 사람으로서 서민들의 자발적 사랑을 이끌어낸 유일한 대통령이었음은 더 얘기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그는 결국 자기의 정치적 이상과 꿈을 제대로 펼치지도 못한체 우리곁을 떠나갔다.
우리가 만들고 우리가 모여서 사는 이 사회는 인간 노무현을 품기에는 너무나 작고 편협하고 삭막한
사회이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라는 그가 유서에 남긴 한마디가 지금 나의 가슴에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