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키키브라더스에 나왔던 나이든 삼류밴드가수가 술만 취하면 흥얼거렸던
'서울야곡'에 필이 꽂혀 인터넷을 뒤져보던중
가슴에 쫙쫙 와닿는 글이라 회원님들과 공유하고 싶어 소개합니다...
노래를 같이 띄우고 싶은데 컴맹이라...
할줄 아시는 분 알려주시길...
'서울야곡'
봄비를 맞으면서 충무로 걸어갈 때
쇼윈도 그라스엔 눈물이 흘렀다
이슬처럼 꺼진 꿈 속에는 잊지 못할 그대 눈동자
샛별같이 십자성같이 가슴에 어린다
보신각 골목길을 돌아서 나올 때엔
찢어버린 편지에는 한숨이 흘렀다
마로니에 잎이 나부끼는 이 거리에 버린 담배는
내 맘 같이 그대 맘 같이 꺼지지 않더라
네온도 꺼져가는 명동의 밤거리엔
어느 님이 버리셨나 흩어진 꽃다발
레인코트 깃을 올리며 오늘 밤도 울어야 하나
배가본드 맘이 아픈 서울 엘레지
‘서울야곡(夜曲)’은 내 감성의 피와 살이다. 내 감성의 봄날, 흥얼거리면 젖어오는 아프고 슬픈 꿈이다. 웃을지 모르겠지만 아직도 나는 이 노래를 현인선생보다, 김준규나 전영보다 훨씬 더 악상(樂想)에 가깝게 부른다고 믿고 있다. 자동차 핸들을 꺾는 듯한 경쾌한 쏠림이 있는 탱고 선율에 귀를 열고 있으면 잊었던 옛날의 빗방울이 튄다. 차창 가득 뭉개진 풍경 속에 서울이 통째 옛날이다. 이 노래가 흐르는 한 내 사랑은 진행형이다. 노래는 리플레이되면서 청춘과 그 뒤안길을 뒤섞는다. 한 여자가 그립지 않다면, 봄날이 아니다. 바늘이 튀는 엘피판이 돌아가고 있는, 술취한 늦은 밤의 기억이 복각되지 않는다면 서울야곡이 아니다.
유호 작사, 현동주 작곡. 나는 두 사람 모두 낯설다. 이 명가사와 명곡을 쓴 사람이 이리 낯선 건, 이 시간이 그 시간으로 들어가는 열쇠를 잃은 까닭이 아닐까. 특히 ‘유호’라는 이름의 시인을 기억해내지 못하는 건 분하다. 요절 시인 박인환의 댄디즘과 언어감성이 홀연히 살아난 듯, 감전(感電) 현상처럼 지르륵지르륵 전해오는 압축과 생략의 스냅. 빠르게 회전하는 동영상에서 관객들이 미처 맥락을 다 알아채기도 전에, 다른 이야기가 진행된다. 왜 그런가. 이 언어들은 읽는 것이 아니라, 먹는 것 혹은 마시는 것 혹은 그냥 삼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저 리듬을 따라 흐르며, 미친 듯 방황하고 있는 그 발길이, 노래가 말하고 있는 진상(眞相)이기 때문이다.
서울이 아름다운 건, 어떤 눈물이 만들어낸 번짐 현상 때문이다. 쇼윈도 그라스. 그 옛날식 영어를 함부로 교정하지 않기를 바란다. 키치와 이국정조야 말로 이 슬픔이 서걱거릴 수 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충무로에서 본 건 쇼윈도 그라스에 흐르는 빗물, 보신각에서 찢은 편지, 마로니에 숲이 있는 대학로쯤에서 버린 담배, 다시 명동으로 갈 때는 심야가 되었다. 불이 꺼져가는 어둑한 거리에 버려진 꽃다발. 아름다운 사랑의 후일담은 그대로 나의 이야기로 감정이입된다. 당신은 그런 서울을 봤는가. 사랑을 잃은 후 저토록 허이허이 길과 길들을 헤매어 봤는가. 서울의 지명들 하나하나가 생을 내려놓을 듯 가슴 저미는 절망의 간이역이던 기억을 가지고 있는가. 서울비가(悲歌) 한 자락 흐르지 않는 명동과 보신각과 충무로와 대학로라면, 당신은 서울사람이 아니다.
이상은 어느 카페였던가 블러그에서 가져온 글과 음악이다.
나의 어렸을 적 이야기다.
사람이 사는 곳은 서울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안동에도 서울 보다는 턱없이 적지만 사람이 살았었다.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40년 전쯤이나 되었을까,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안동 역 근처에서 일하던, 일본식 이름으로 도꾸도꾸이라 했던 지게꾼 하나가 있었다. 그는 하루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저녁 무렵이면 내가 살던 집 근처 '소리사' 에서 울려 나오던 '서울야곡'을 눈물을 철철 흘리며 따라 부르곤 했었다. 그의 애창곡은 이 '서울야곡'과 '굳세어라 금순아' 였는데 그의 노래를 나도 따라 부르다 이 노래를 배우게 되었다. 노래가 끝난 후에는 비실비실 걸어가다 꼭 땅바닥에 주저 앉아 글씨를 쓰며 '어머니' 하고 통곡을 하다가 돌아갔었다.
그의 모습을 동네 꼬마녀석들이 보고는 그의 뒤를 따라다니며 같이 '어머니' 하고 흉내를 내며 그를 괴롭혔다. 그런 아이들을 가끔은 쫓기도 하나 그런다고 쫓겨갈 아이들이 아니기에 항상 포기한 채 안동거리를 휘청거리며 다녔었다.
무엇이 그를 취하게 하였는지 잘은 알 수 없었으나 나는 어린 나이에도 애처로워 그가 '어머니' 하고 부를 때는 눈물이 나곤 했었다. 그는 어머니를 그리워했을까? 고향을 그리워했을까? 우리나라 말이 서툴렀던 그의 '안동의 엘레지'는 항상 나의 곁을 떠나지 않고 맴돌고 있다. 비가 내리거나 눈이 내리는 날이면 그가 즐겨 부르던 노랫소리가 환청처럼 들리곤 한다. 안동의 밤거리를 헤매며 부르던 노래가.
울어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나. 울지 않는 사람은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철들고서 한번도 울어보지 않았다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나도 그 중의 한 사람이었다. 남자는 울어서는 안 된다고, 이 삭막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절대로 울어서는 안 된다고 배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찍 우는 것을 배웠다면 나는 얼마나 이 세상을 아름답게 살았을까? 우는 그의 옆에서 나도 같이 울어주었으면 그는 좀더 이 세상을 굳세게 살다가 가지 않았을까?
가족도, 마땅한 거처도 없이 이리저리 떠다니다 추위에 길바닥에서 얼어 죽었을 지도 모를 그의 기구한 삶에 뒤늦게 눈물을 흘린다. 맘이 아픈 엘레지다.
글쓴이/김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