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번 속아주신 다면... ]
지난 시민광장총회가 끝난 뒤, 시민광장대표가 되신 새벽21님의 뒤를 이을 경기광장대표를 해 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주변의 회원님들로부터 받았습니다. 워낙 시민광장의 경험도 일천하고, 그 이전의 시민활동이랄까… 먹고사는 일 이외의 사회활동도 거의 하지 않은 터라, “과천광장대표일꾼 노릇도 허덕이고 있는 마당에, 경기광장이라니요… 저는 그냥 말단소총수일 뿐인데요….”라는 변명으로 고사하곤 했지만, 주변의 좋은 벗들이, 그것도 여러 번 반복해서 이야기하시니 무조건 사양하는 것도 예의가 아닌 듯 해서 며칠 곰곰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과연 경기시민광장 대표일꾼 노릇을 제대로 할 만한 자질은 스스로 갖추고 있는지, 그럴만한 형편은 되는지, 며칠 밤 잠 좀 설쳐가면서 생각을 해 본 것이지요.
경기도라는 지역과의 개인적인 인연은 좀 있는 편인 것 같습니다. 서울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경기도나 다름 없는 서울변두리 독산동에서 초등학교부터 대학 졸업할 때까지 살며 자랐고, 경기도 오산에 소재한 대학을 다니기도 했습니다. 경기도 광명시에 소재한 부대로 출퇴근 하는 방위병 노릇도 했고, 이후 몇 년간 외국생활을 하고 돌아와 자리잡은 곳도 경기도 과천시입니다.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모란공원에 아버님의 산소자리를 모셨고, 6년 동안 한 두 달에 한 번씩은 산소 찾으면서 팔당에서 청평에 이르는 북한강 줄기의 아름다운 사계절이 바뀌는 것을 겪곤 했습니다. 회사 일로 경기도에 소재한 몇몇 박물관의 웹사이트나 소장품 관리시스템을 개발하기도 했고, 경기문화재단과의 작업도 몇 가지 진행한 바 있습니다. 임진왜란이 발발하던 시점에서 우리 집안의 조상께서 파주목사를 하고 계시다가, 선조임금이 왜군을 피해 도망가는 임진강 도하작전을 지원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 그 작전에서 임금을 잘 모시지 못했다는 죄로 봉고파직을 당했다고 하더군요… ) 이 정도면 31개 지역광장이 존재하고 있는 광활한(?) 경기광장에서 익숙치 않아서 대표노릇하기 어렵다 이야기할 처지는 아닌 듯 합니다.
시민광장이 “유시민을 믿고 지지하는 참여시민 네트워크”이니 얼마나 유시민을 믿고 지지하는 가를 스스로 따져 봤습니다. 사실 “참여시민 네트워크”는 거주하고 있는 과천에서 이미 많이 발전해 있는 터라서, 어느 정도 경험하기도 해 봤고, 어떻게 참여하고 소통하는 가에 대한 나름대로의 소견이 있으니, 고민의 핵심은 ‘유시민’이 된 거지요. 그런데 이런 이야기 하면 돌 맞을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정치인을 대하고 평가하는 제 기준은 그냥 ‘품질’ 기준이었던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을 통 털어서 가장 우수한 품질의 정치상품은? 이라는 질문에 대한 제 답이 1번:노무현, 2번:유시민, 3번:김용갑 이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돌아가셨고, 김용갑이 은퇴했으니, "현존하는 최고명품 정치인이 ‘유시민’이다. 결론 끝. 밑줄 쫙." 유시민에 대해서 품성이 어떻다 라는 둥, 변절의 이력이 있다는 둥 이야기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명품이 모든 사람에게 향유될 수 있다면, 더 이상 명품은 아니지…” 라고 가볍게 무시하곤 합니다. 좀 과도하게 믿고 지지하는 거 같습니다만, 여야를 막론하고 현재 우리나라 정계에 함량이 정상적인 수준에 달하는 분들 두 손으로 꼽기에도 남는 것 같고… 그저 유시민 정도만이 ‘믿고 지지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요. 흠. 이 정도면 시민광장 회원으로서 유시민에 대한 신뢰와 지지 항목에서 평균은 하겠다는 자신감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걱정을 한 부분은 조직을 관리하고 이끌만한 리더십을 가지고 있는가? 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지역광장의 기본단위인 과천을 넘어서는 것조차 너무나 힘겨워 해서, 경기중부광장 행사 등에 참여했던 실적도 열악했고, 서울 시내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국단위 행사에서 늘 마주치는 과천광장 회원님들 조차 지역광장에 참여하실 계기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그간의 과정을 보면, 아무리 생각해도 조직을 이끄는 리더로서의 자질은 함량미달이 아닌가… 정말 믿을만한 리더가 있으면, 그의 지도에 따라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는 딱 ‘말단소총수’ 노릇에 만족해야 하는 자질이 아닌가...? 뭐 이런 류의 우울한 걱정이었습니다. “상병 말호봉 정도의 내공은 갖춘 것 같은데, 그거로 분에 넘치는 분대장 견장 달고 1년간 과천광장 말아먹은 거 아니냐... 그런데 갑자기 연대장급인 경기광장 대표일꾼이라??? 이건 좀 과도한 거 아닌가?” 라는.... 이 대목에 딱 막혀서 두 세 밤을 하얗게 새웠다는 거지요. 이런 좌절은 전임 경기광장 대표셨던 김성현님이나 새벽21님의 눈부신 활약을 복기해 보며 더욱 깊어지기만 했습니다.
걱정만 한다고 정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러다가 예비후보 등록의 날은 다가와 버렸고, 마지막 결정을 하기 위해서 좀 더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경기광장 대표일꾼이 하는 역할은 도대체 뭔가? 만약 하기로 한다면, 뭘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 것은 뭔가? 관둘 때 관두더라고 한 번 따져 보기나 하자라는 마음을 먹은 거지요.
경기광장… 광역광장이니까, 행정구역체제 단위로 보면, 시도 단위… 서울광장대표님, 전북광장대표님, 제주광장대표님, 대전광장대표님 등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광역광장 대표님들과 함께 시민광장대표를 상대하면 되는 위치인 것 같습니다. 31개 지역광장이 5개 권역 별로 나뉘어져 있으니, 평상시에는 권역대표일꾼님들과 함께 활동하고… 1년에 한 두 번 정도 지역대표님들이 모여서 뵙는 정도로 하면 될 것 같습니다. 경기광장 단위의 사업과 권역광장 단위의 사업을 조정해 나가는 것이 관건이 되겠지요.
대충 경기광장 대표일꾼의 역할에 대해서는 이 정도로 정리가 되었습니다. 결론을 낼 차례입니다.
사실 이 글은 경기광장 대표일꾼을 권하신 분들께 도저히 그 역할을 감당하기 어려운 사정들을 설명 드리고 이해를 얻고자 시작한 글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정도의 걱정과 궁리를 거치고 나자, 딱히 자신이 충만한 것도 아니지만, 못할 것도 없겠다는 정도로 심경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제 결론은 “고민은 많이 했으니, 이제 사람들에게 의견을 구하자”입니다.
그래서 이제 5,500여 경기 시민광장회원님들에게 물어 보려고 합니다. 2011년에 과천의 말단소총수가 1년 동안 여러분들을 대표해 보려고 하는데, 크게 못마땅한 분들이 계시는지 여쭈어 보기나 하자는 거지요.
만약 모든 허물과 잘못에도 불구하고 한번 수고해 봐라 하신다면, 열심히 해보기는 하겠습니다만, 더 훌륭한 분이 나서셔서 어려운 일을 대신해 주시면 감사하겠다는 마음도 없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핸드폰 끄고, 며칠 동안 해외출장 다녀 온다고 핑계대고, 잠수타고,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키보드를 두드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가시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갖 민망함과 자질 부족과 열악한 개인사정에도 불구하고… 비토 당해서 망신 당할 것을 각오하고... 여러분들에게 의견을 구하는 이유는, 제가 소중히 여기는 분들의 신뢰와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고, 이런 분들로 부터 한 번이라도 대안으로 여겨져 보았다는 소중한 경험의 가치를 되새기고 싶기 때문입니다. 우리 시민광장에서 쟁쟁한 활동경력을 가지시고, 높은 식견을 가지신 분들이 권하셨다면, 그리고 한번이라도 믿어보시고자 했다면, 스스로가 아주 잘못된 삶을 살지는 않은 거 아니냐는 소박한 안도감이 감히 용기를 내게 한 힘이 되기도 했습니다. 설마 버벅거리고 있는데 두고 보고만 있지는 않으시리라, 어려울 때 도움의 손길을 주시리라 믿는 마음도 있습니다.
개인적인 고민을 토로하는 것이 경기광장대표 출마의 글로 적합하지 않을 것이라는 걱정이 많지만, 가능한 솔직한 이야기를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에 밑도 끝도 없이 늘어놓게 되었습니다.
경기광장 회원님들이 한 번 속아주신다면,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길고 두서없는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10년 12월 7일
이영희선생의 영면을 기리며
과천광장 말단소총수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