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논란이 된 강 회장님의 발언에 대해 전 이렇게 생각합니다.' 정서적으로 다소 서운하지만 유권자의 판단에는 영향 없음. 하여 괘념치 않을 것' 밑에 개곰님의 글입니다. 이 글 한번으로 서운한 마음 툭 털어 주십시오. 타 사이트에 가서 중구난방 독설을 쏟거나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 놀리는 일은 자제해 주십시오. 할려거든 개곰님처럼은 못해도 비슷하게 흉내라도 내주시길. 꾸벅~
영화배우 문성근은 얼마 전 어떤 인터뷰에서 정치인 노무현을 처음 여의도에서 만나던 당시를 회상하면서, 정치를 함께 하자는 권유에 따르지 않자 정치인 노무현이 그냥 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하면서 좀 거칠게 말하더라고 돌이켰다.
훗날 문성근의 명연설에 눈물을 흘리는 노무현이 왜 그때는 다소 퉁명스럽다는 인상을 주면서까지 문성근을 정치권으로 끌어들이려고 했을까. 가장 큰 이유의 하나는 외롭다는 느낌이 아니었을까 싶다. 문성근이 영화배우의 길을 걷겠다면서 정치를 거부했을 때, 정치인 노무현은, 누구는 정치를 하고 싶어서 하는 줄 아느냐, 속으로 야속한 생각을 조금 하지 않았을까 싶다.
노무현이 여느 정치인과 달랐던 점은 정치를 입신양명의 수단으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잘 나가는 세무변호사였다. 그러나 의로운 사람이 사람 대접을 못 받고 의롭지 못한 사람이 떵떵거리며 대대손손 호의호식하는 잘못된 역사의 부채를 후손에게 더이상 떠넘길 수 없다는 역사적 책임감 때문에 정치라는 형극의 길로 나섰다.
영화배우 문성근도 정치인 노무현이 정치를 하고 싶어서 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정치인 노무현이 정치라는 지옥의 길로 자진해서 들어섰다가 결국은 스스로 몸을 던지고 나서 사무치게 깨달았을 것이다. 문성근이 영화배우로 인정받고 있고 그렇게 영화배우가 하고 싶으면서도 거리로 나선 것도 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
말도 안 되는 가정이긴 하지만 문성근이 너무 힘들어서 영화를 하는 후배나 선배에게 같이 백만민란에 앞장서자고 했다가 난 배우로 한평생을 살겠다는 대답을 들었다면 속으로 욱 했을지 모른다. 아마 나라면 욱 했을 것이다. 나도 좋아서 이 짓 하는 게 아니란다, 그 말을 꿀꺽 삼키느라 애를 먹었을 것이다.
민주당이건 민주노동당이건 진보신당이건 학생운동에 젊음을 바치고 지금은 정치권에 몸담은 사람들에게 기본적으로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 나와는 달리 그들은 젊음의 어느 시기를 공동체를 위해 헌신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을 나 대신 해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노무현, 문성근, 유시민 같은 사람들에게는 더욱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 물론 다른 사람들도 그럴 여건과 기회만 있었다면 더 잘 나갈 수도 있었을 것이고 가능성조차도 포기했다는 점에서는 더 큰 희생을 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세 사람은 세무변호사로서 영화배우로서 저술가로서 일가를 이룬 사람이고 굳이 흙탕물에 발을 들여놓지 않아도 적당히 좋은 소리만 적당히 가끔씩 내뱉어도 대접받으면서 살 수 있는데 무엇보다도 경제적 불이익을 각오하고 역사라는 대의를 위해서 행복한 삶을 반납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노무현이 말년에 정치를 하지 말라고 한 것은 경제적으로 유능했던 사람이 경제적으로 무능한 취급을 당하고 주변에 손을 벌리면서 살아야 하는 현실에 대한 자괴감도 작용했을 것이다.
노무현을 따랐던 사람들은 그를 돕는다는 생각보다는 그의 희생에 조금이나마 보답하고 싶다는 생각을 더 많이 했을 것이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을 자기 삶을 희생하고 가족도 아닌데 대신 역사의 흙탕물에 뛰어들어준 동지에게 제대로 동지가 되어주지 못하는 것에 대한 미안함을 더 느꼈을 것이다.
노무현만 당선되면 하고 싶은 영화를 실컷 하면서 살겠다고 생각하던 문성근에게도, 노무현만 퇴임하면 쓰고 싶은 글을 실컷 쓰면서 살겠다고 생각하던 유시민에게도, 노무현은 가족이라기보다는 뒤늦게 동지로 더 사무치게 다가왔을 것이다. 그래서 다시 거리로 나섰을 것이다.
노무현이 마음 편해 하던 사람도 가족 같은 사람보다는 동지 같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과 오붓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아늑한 밀실을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뒤로 하고 야합과 배신과 저주가 횡행하는 광장으로 나서 원하지 않는 투사가 되어야 한다는 동병상련을 노무현과 문성근과 유시민은 느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노무현은 정치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지성과 역사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동지 의식에는 지성과 역사가 있지만 가족 의식에는 지성과 역사가 없다. 박사학위를 받은 이승만에게는 지성과 역사가 없었지만 고등학교만 나온 노무현에게는 지성과 역사가 있었다. 동지를 가족으로 오인하는 순간 동지가 가족처럼 굴지 않으면 동지를 적으로 만들어버리기 쉽다. 노무현을 가족으로 여기는 사람이 노무현이 동지로 여기던 사람을 짓밟는 희극이 그래서 벌어진다.
가족은 우연의 관계고 동지는 필연의 관계다. 동지가 가족이 되는 것은 역사의 퇴보다. 노무현의 길은 진보의 길이다. 노무현의 길은 동지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