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보선의 제1막이 끝났습니다. 승리는 모든 것을 덮는다 했습니다. 하지만, 승전보를 듣기전까지 우리가 처했던 상황이 얼마나 심각하고 아찔했었는지를 떠올려 본다면, 결과이전의 과정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은 그러한 시도의 일환입니다.
국민의 판단기준은 “공정”이전에 “자기희생”이었다.
단일화과정에서 유시민과 참여당은 최소한의 합리성과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경선룰을 고집한 것에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왜 언론과 대중의 비판 또는 비난을 받았느냐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저는 두가지를 핵심원인으로 지목하고 싶습니다. 첫째, 실질적 형평보다는 기계적,형식적 중립성에 머문 시민단체때문입니다. 첨부터 무리한 요구를 내놓은 후 이를 철회하여 정상화시킨 것을 두고 “통 큰 양보”, “제 살깍기” 운운하는 민주당의 교활함은 이미 예견된 상수로 받아들이는 게 속편할 듯 합니다. 그러나, 대중들에게 중립으로 통하는 시민단체가 기계적 절충에 머물러 실질적으로 민주당이란 강자의 횡포를 승인해 준 것은 유시민과 참여당을 코너에 몰아넣은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총선,대선에서도 정당간 중재역할을 담당하게 될 시민단체는 이 문제에 관한 반성과 성찰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 문제에 관한 한 총선,대선에서 참여당과 똑같은 처지에 놓이게 될 수 있는 민노당, 진보신당이 강건너 불구경하듯 침묵으로 일관한 것은 심히 유감입니다. 불공정,불합리를 앞두고 이해관계를 함께 하는 정당끼리 뭉쳐서 싸우지 못할 이유는 없습니다. 둘째, 유시민과 참여당은 부당함과 불공정에 대하여 “자기희생”없이 저항했다는 점입니다. 정치는 이상과 현실의 함수인데, 여기서 현실은 주로 국민의 정치의식수준을 의미합니다. 국민일반의 생각에서 크게 벗어난 정책과 주장은 그 추진동력의 결여로 말미암아 실패할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종종 국민의 여론이 부당하고 불합리하더라도 그것을 하나의 주어진 현실로 받아들이는 가운데, 최적의 정치적 선택을 모색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김대중 전 대통령은 국민의 생각보다 반보만 앞서 나가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돌아보건데 이번 단일화과정에서 국민이 주목한 것은 “누구의 주장이 공정한가”보다는 “누가 자기희생을 하려 하는가”였던 것 같습니다. 이번 사안에서 유시민과 참여당의 주장은 정당했지만 거기에 자기희생이 결여되었다는 점또한 분명한 사실입니다. 노무현 정신을 “자기희생"속에서 "원칙과 상식"을 외쳤던 것으로 이해한다면, 우리는 이번에 노무현 정신을 절반쯤 외면한 것이 됩니다. 바로 이게 우리가 비판 또는 비난받은 대목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힘없는 군소정당에게 자기희생을 요구하는 자체가 가혹한 일인 것이 사실입니다. 나아가, 노대통령 고향인 김해을 선거의 상징성, 총선과 달리 주고받기식의 협상의 여지가 희박한 재보선의 특징, 의석 하나에 목을 메고 있는 원외정당인 참여당의 절박함 등 여러 상황을 감안해 볼 때, 이번 재보선에서 참여당이 자기희생을 보여주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우리는 군소정당이 자기희생을 통하여 명분과 도덕에서의 비교우위를 입증해내지 못한다면, 얼마나 위험한 위치에 처하게 되는지를 이번 사안에서 절실히 깨달아야 합니다. 따라서, 앞으로라도 유시민과 참여당은 어떤 식으로든 자기희생을 보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총선에서 유시민이 영남에 출마를 하는 것 또한 고려해 볼 수 있는 하나의 방안이 될 것입니다. 또한, 민주당과의 경쟁만큼이나 연대와 통합의 제스춰또한 강력하게 보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분당을, 강원도지사 선거에 적극 협력하겠다는 유시민의 태도는 매우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를 첨언하자면, 순천무공천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유시민의 발언은 부적절했다고 생각합니다. 유시민의 발언취지를 이해하지만, 민주당이 호남지역을 독식한다는 의미의 호남지역주의를 완화한다는 측면에서도 민주당의 자기희생은 평가해주어야 마땅합니다. 아마도 김해을에서의 참여당 고사작전을 위한 사전포석이란 불순한 의도로 순천무공천이 추진된 것으로 해석하여 유시민이 다소 비이성적으로 대처한 듯 싶어 아쉬웠습니다.
비민주 진보통합의 필요성을 더욱 절감했다.
유시민과 참여당이 겪고 있는 서러움은 본질적으로 약자의 서러움입니다. 부익부 빈익빈의 원리는 정당간의 세력다툼에도 작용하는 것을 발견합니다. 민주당의 부당한 횡포에 저항하는 것이 자기의 이해관계에 몰두한 몽니로 비춰지는 현상은 야당지지자들사이에서도 어짜피 한나라당에 대적할 정당은 민주당으로 귀결될 수 밖에 없다는 강자의 논리가 은연중에 작용하기 때문이기도 한 것입니다. 민주당에 대한 정당한 비판조차 한나라당을 돕는 나쁜 일이 되고 마는 결과는 참여당이 민주당과 대등한 세력을 형성하지 못했다는 사실자체에 본질이 있습니다. 즉, 힘이 곧 현실이 되고, 현실이 다시 당위가 되는 모순입니다. 따라서, 유시민의 민주당 비판이 유시민 안티증가로 돌아오는 비극을 종식시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비민주 진보통합에 있습니다. 한나라당에 대적할 대표정당의 명의를 민주당으로부터 진보통합정당으로 바꿔내야 합니다. 참여당, 민노당, 진보신당의 미약한 세력은 인물과 정책의 문제라기보다 한나라당에 대적할 대표정당으로 인정될 만큼의 세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자체에 기인하는 바가 큽니다. 이는 특별히 인물이 출중하지 않는 이상 한나라당과 민주당이외의 군소정당에게 가는 표는 사표가 될 수 밖에 없는 소선구제도가 낳은 필연적 결과입니다. 따라서 인위적으로라도 세력을 키워 민주당과 대등한 세력을 형성해야 하는 것입니다. 제가 여러 차례 유시민의 좌클릭 필요성을 강조한 이유도 이러한 정치공학적 고려하에 비민주 진보통합의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유시민은 참여정부 부채승계론을 통해 일정 정도 좌클릭을 하면서 민노당, 진보신당의 요구를 수용했습니다만, 민노당, 진보신당의 반응을 보면 그들을 충분히 만족시키는 수준은 아닌가 봅니다. 유시민과 두 진보정당은 모두를 가지려고 하다가 아무것도 가지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서로 역지사지하는 자세로 절충,타협할 필요가 있다고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