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적인 검투사 '스파르타쿠스'는 탐욕과 오감의 말초적인 쾌락만을 추구하던 당시 로마의 지배자들이 벌이던 폭압으로부터 과감하게 떨치고 일어나 그들을 제압한 위대한 영웅이었다.
돈과 권력을 쟁취한 로마의 지배계급들이 배터지게 귀한 음식을 먹고 술과 여자로 아까운 생의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면서 끝없는 향락을 추구하다가 그것도 결국 싫증을 느껴 노예들끼리 죽음의 결투를 시키기에 이르렀고, 노예로 전락한 전쟁의 포로들은 그들의 노리개 감이 되어 피를 쏟으며 현장에서 죽어가야 했다. 인간의 잔인성과 포악함의 극치를 그들은 적나라하게 보여 주었다.
그것은 인간이 어떤 이유로 살아야 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지를 모르는 철학과 가치의 부재에서 오는 당연한 결과이기도 했다. 오로지 돈과 쾌락에 빠진 가련한 군상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패악의 말로는커녕 그것이 인류 전체의 진화에 어떤 악영향을 초래 하는 지 전혀 몰랐다.
위대한 용기의 지혜로운 자 '스파르타쿠스'는 처음부터 전사가 되려고 작심한 것은 아니었다.그는 다만 평범한 필부로써 지금의 우리들처럼 가정을 지키고 이웃과 더불어 성실하게 살고자 했을 뿐이다.
한가지 다른 것이 있었다면 부지런하고 거짓 없고 타인의 아픔을 배려하며 부끄러워 할 줄 아는 성실한 사나이의 한 사람이었다.
시대가 영웅을 만들고 역경에 처한 상황이 사람으로 하여금 생존을 위하여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만들기도 하는 법이다. 그가 검투사로 살면서 언제 죽을 지 모르는 살얼음판 같은 곤경에 처하자 새로운 결단을 내리게 되었다. 어차피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죽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판단한 그는 같은 처지의 노예검투사 70 여 명을 설득하여 분연히 칼을 들고 일어나 로마 병사들의 목을 베었다.
탈출에 성공한 그들은 '스파르타쿠스'의 지휘 아래 매복 기습작전으로 정예 로마군들을 차례 차례 무찌르고 승승장구 하였다. '스파르타쿠스'는 생각이 올바른 사람들을 가려서 뽑았다.매일 같이 모여드는 지원병들 중 로마의 탈출병들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주로 선량한 사람들을 선택하여 훈련 시키고 정예군으로 만들어 갔다.
여러번의 전투에서 기지를 발휘하는 전략과 포위망을 뚫는 전법을 구사하면서 로마군을 제압한 그는 최대 12 만 명의 군사를 가지게 되었다. 그대로 가면 틀림없이 로마를 무너뜨릴 수 있었다.충분히 그의 군대는 넘쳐 나는 사기와 잘 훈련된 병사들로 무장 되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참으로 불행하게도 그의 동지 중에는 골족 출신의 경쟁자 검투사인 '크릭서스'가 있었다. 그는 점차 커지는 '스파르타쿠스'의 세력 확장에 서운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스파르타쿠스'는 사람을 아끼고 약자를 보살피는 가치의 철학으로 채워진 그릇이 큰 사람이었다. 그런 그를 보고 사람들은 자꾸만 모여들고 '스파르타쿠스'를 추켜 세우며 연호하였다. 경쟁자인 '크릭서스'는 질투심이 발동했고, 포로로 잡힌 로마병사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크릭서스'를 추종하는 병사들은 앞장서서 로마인들이 벌였던 약탈과 부녀자 겁탈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런 일을 제지하는 '스파르타쿠스'에게 '크릭서스'와 그의 추종자들은 무시하며 더욱 더 시민들을 괴롭히고 나쁜 짓을 해 나갔다. 결별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내분이 일어나자 로마군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대군을 동원하여 반격하기 시작했다.'스파르타쿠스'는 저항 했지만, 이미 전세는 기울어져 있었다.안타까운 일이다. 시기와 질투심이 이런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다니, 아니 그것보다는 '스파르타쿠스'가 가지고 있는 가치의 철학을 '크릭서스'는 처음부터 가지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 정확한 분석일 것이다. 결국 '스파르타쿠스'의 병사들 6,000 명은 포로로 잡혀 십자가에 못이 박히며 죽어 갔다. 반면교사라는 고사성어는 이럴 때 되새겨 보아야 하지 않을 까.
본문 |
트라키아에서 출생하였다. 중부 이탈리아 카푸아의 노예 검투사(劍鬪士) 양성소에 소속된 검투사였는데, BC 73년 70여 명의 동료 노예와 함께 양성소를 탈출, 목자(牧者) ·농노(農奴) ·빈농(貧農)을 규합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정부에서 보낸 진압군 2개 군단을 차례로 격파하고 남부 이탈리아를 지배, 전성기에는 군세가 12만 명에 달하였다. 그러나 남이탈리아에서 시칠리아섬으로 건너가려다가 실패하고, BC 71년 원로원에서 파견된 크라수스의 군단에게 루카니아에서 패사(敗死)하였다. 이 반란은 로마의 지배계급을 전율시켰으며, 후에 그에 관한 갖가지 전설이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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