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민주노동당이 유시민 대표의 자체 검증에 걸려들었다. 유 대표는 열린우리당 시절에도 (당 내 개혁이나 관행 등에 대한)검증 능력이 뛰어나 곤혹스러워하는
의원들이 있었다.”
민주
통합당 관계자는 최근 기자에게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부정 경선 파문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유시민 통합진보당 전 공동대표가 주목받고 있다. 거침없는 발언으로 한때 분열의
아이콘이라는 낙인이 찍혔던 유 전 대표는 비례대표 부정 경선 파문 과정에서 진보
자유주의의 상징으로 등극했다.
유 전 대표가 구당권파(경기동부연합과 광주전남연합)의 정파 패권주의에 맞서 때로는 단호한, 때로는 합리적인
리더십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진상
조사위원회가 비례대표 경선을 “총체적 부실부정 선거였다”고
발표하자 공동대표단과 비례대표 당선자의
전원 사퇴를 심상정 조준호 전 공동대표와 함께 밀어붙이는, 강력한 리더십을 보여줬다.
구당권파가 당 내
갈등을 ‘권력투쟁’ ‘총제적 부실조사’로 몰아갈 때 유 대표는 “원칙과
상식의 문제”라며 합리성에 기반한 자유주의자 성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또한 구당권파의 핵심
인물인 이석기 김재연 당선자가 사퇴할 경우 비례대표 12번인 유 대표에게 순번이 돌아오지만, 그는 “나는 책임질 사람”이라며 비례대표 승계를 거부, 신당권파(옛 비당권파)의 쿠데타 음모론을 일축했다.
유 전 대표는 전날(14일) “이제 평당원의 자리에 서서 통합진보당이 더
좋은 정당이 되고 우리 정치가 더 나은 정치가 되도록, 그리고 대한민국이 더 훌륭한 국가가 될 수 있도록 하는데 저 나름의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나가겠다”며 사퇴의 변을 밝혔다. 이로써 유 대표는 ‘민주노동당+국민참여당+새진보통합연대’ 간 3자 원샷통합을 이룬지 6개월 만에 다시 야인으로 돌아가게 됐다.
유시민, 3자 원샷통합 직후부터 경기동부 패권성에 맞서 싸워유 전 대표의 리더십이 주목받는
이유는
비만 이 뿐만이 아니다. 그는 3자 원샷통합 직후부터 당 내부에서 경기동부연합의 정파 패권주의에 맞서 싸웠다.
실제로 유 대표는 지난 1월 26일 대표단
회의를 시작으로 당무 거부에 돌입했다. 4.11 총선 공천 과정에서 경기동부연합이 대표단의 후보조정 권고안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유 대표는 2월 1일 당
게시판에 “중앙당 지도부가 권한으로 상황을 통제하지도 못하고, 자발적 협력을 토대로 당을
운영하지도 못하는 상태, 그래서
모두가 불만을 느끼며 누군가를 비난하는 일종의 무정부 상태”라고 밝힌 바 있다.
당시
언론에 부각이 되지는 않았으나, 진보
진영 내부에선 당 내 경선 룰을 둘러싼
갈등이 당 내홍으로, 내홍이 정파 패권주의로 이어지면서 2008년 분당 사태가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내 통합진보당 사태는 일단락됐다. 대표단의 후보자조정 권고안을 각 정파가
수용했기 때문이다. “유시민의 리더십이 경기동부의 전횡을 꺾었다”는
평가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다. 특정 정파의 후보독식 문제는 ‘진성당원제 VS 대중참여’ 문제와 연결돼있는 만큼 진보진영 내에 정파성과 대중성의 양립 문제를 제기하는 발단이 된 셈이다.
통합진보당 관계자는 당시를 회상하며 기자에게 “3자 원샷 통합 당시 자유주의 성향의 국민참여당과 함께 한다는 것에 심적으로 내키지 않는 부분이 있었지만, 통합 이후 한 당에서 같이 일을 해보니까 국민참여당 사람들이 합리적으로 일을 한다는 점을 느꼈다. 그 점은 우리가 배워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유 전 대표가 두 번째로 구당권파의 전횡에
맞선 것은 그로부터 한 달여가 지난 3월 초였다. 비례대표 개방형 후보로 영입된 ‘가카 빅엿’ 서기호
판사가 영입 이틀 만에 낙마하는 일이 발생한 것.
통합진보당은 3월 4일 새벽 대표단 회의를 열고 개방형 비례대표 후보에 박원석 전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과 김제남 녹색연합 녹색에너지디자인 위원장을 최종 낙점했다. 앞서 개방형 비례대표 후보로 영입된
정진후 전 전교조 위원장도 당선권 순번에 배치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신당권파가 지지하는 박 전 사무처장이 입당한 뒤 구당권파는 서 전 판사와 김제남 위원장 등을
추천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개방형 비례대표는 이정희 심상정 전 대표가 각각 1명씩 추전하기로 돼 있었는데, 이 과정에서 구당권파 측이 ‘서기호-김제남’을 영입한 것이다.
당시 당 안팎에선 개방형 비례대표 후보 3명을 경기동부연합이 독식하려고 한다는 우려가 나왔으나, 유 전 대표는 트위터에 “전혀 검증되지 않은 인물을 개방형으로 영입할 수는 없는 일”이라며 사실상 심 전 대표에게 힘을 실어줬고, 결국 박 전 사무처장은 비례대표 6번을 부여받았다.
개방형 비례대표 공천을 독식하려는 구당권파에 ‘심상정-유시민’ 전 대표가 제동을 걸었다는
분석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다. 유 대표가 경기동부연합의 전횡을 또다시 제압한 셈이다.
지난 2000년 초 개혁당을 시작으로, 열린우리당, 대통합민주신당, 국민참여당, 통합진보당 등을 거치면서 한 때 분열 낙인에 찍혔던 유 전 대표는 NL(민족자주파)의 정파 패권주의에 맞서 합리적이면서도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 대중적 진보정당의 상징으로 자리잡을 수 있게 됐다.
반면 2년 전 민노당 당대표에
오르며 진보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불렸던 이정희 전 대표는 정당의 대표가 아닌 정파의 수장으로 전락했다. 대중적 정치인인 유 전 대표와 몰락을 자초한 이 전 대표의 행보는 그렇게 극명히 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