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을 주도한 경기동부의 패권적 행태에 절망을 느껴 새 출발을 다짐하지만, 그 새 출발이란 것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란 예감이 든다.
통합 전에 진보 진영에서 보여준 그 답답한 안목이 지난 몇 달 사이에 바뀌진 않았을 것이라 보기에. 그래서 요즘은 '노동중심성'을 외치는 이들을 보면서 슬슬 불안감이 엄습해 온다.
노동중심성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떠오른 말은 여성상위시대였다. 두 말의 공통점은 '치우침"이다.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여성의 권리를 찾기 위해 투쟁을 하는 것은 정당한 것이지만, 이제부터 여자가 권력을 쥐고 남자를 부려 먹어야 한다는 주장은 또 다른 불공평을 낳으면서 조화와 평화를 해치는 결과를 가져온다. 남녀 평등이 정답이다.
노동자가 억압 받는 것을 구제한다는 취지에서 노동 운동을 적극적으로 하는 것은 당연히 필요하다. 그러나 노동자에게 권력을 주고 자본가를 죄악시 하는 공산주의는 자체 모순으로 인해 역사에서 사라지고 있다. 노동자와 사용자는 함께 잘 살아야 하는 것이다.
노동을 중심으로 놓자는 말은 사용자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최근 급격히 늘고 있는 자영업자들도 따지고 보면 사용자다. 한 두 명이라도 직원을 고용해야 한다면 그는 곧 사용자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자영업자들은 영세하다.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망하지 않기 위해 인건비를 가지고 고민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직원을 회사의 주인으로 만들어서 함께 회사를 발전시키려는 노력이 종종 소속감 약하고 개인의 출세를 우선하는 직원들의 배신으로 어려움에 빠지는 것을 경험해 본 경영인들은 주인과 고용인의 조화로운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숙제라는 것에 공감할 것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모범 답안은 아직 없다. 다만 찾으려고 노력할 뿐이다.
이 사회를 정의롭고 조화롭게 만든다는 것은 사회 구성원 모두의 입장을 고르게 이해하고 배려해야 한다는 의미가 된다. 노동자도 살고 사용자도 사는 세상을 만들어야 그게 진짜 건강한 사회다. (사실은 노동자라는 말 자체가 현대 사회 구조를 정확하게 반영할 수 있는 용어가 아니지만....)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대중적 진보정당"의 의미를 잘 새겨야 한다고 본다. "대중적 진보정당"이라는 말은 대중의 인기와 영합하는 정당을 만들자는 의미가 아니다. 가급적 사회 모든 구성원의 이익을 공평하게 보장하는 편향되지 않는 정당을 고민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개념이 곧 "대중적이고 진보적인" 정당인 것이다.
그런 정당을 만들기 위해 서로 약간의 차이를 극복하고 진보 진영이 함께 움직이자는데 오히려 차이를 부각시키고 계층간, 집단간 위화감을 조성하는 용어를 그렇게 큰 목소리로 외칠 필요가 있을지 의아스럽다.
좌, 우, 진보, 보수, 중도...이런 용어들이 참으로 나를 불편하게 만든다.
나는 차라리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 라는 말이 훨씬 가슴에 와 닿는다.
정의로운 사회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를 통해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들을 해결하자는 포괄적인 목표를 정해 놓고, 개인의 욕심을 위해 거짓을 능력으로 여기는 이들을 배제한 가운데 함께 고민하면 길이 나오지 않을까? 그런 정도의 과업을 함께 할 사람들로 뭉쳐서 정당을 만드는 것이 그렇게 복잡하고 어려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