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담한 심정을 이대로 참고 견디기엔 가슴이 터져버릴 것 같아서 끄적입니다.
울화병은 우울증을 동반하여 비극적 종말을 초래하는 원인이라 들었습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선거 결과에 모두 넋을 잃고 그야말로 할말을 잃었습니다.
투표율이 높으면 한 번도 야권이 져 본 적이 없었고, 목표치보다 훨씬 상회하는 결과가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백 만이 넘는 표 차이로 어이없게 우리가 패했다니 더욱 이해할 수
없는 노릇입니다. 지난 번 총선 때도 그랬지만, 그때는 그래도 대선이 예정되어 있었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 안정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 일곱 달 만 기다리자.
악몽의 5년을 참고 견디었는데 그깟 7개월 정도를 가지고 뭘 그래.. 조금만 참자.
생각했던 것보다 전혀 반대의 상황이 오고 그 내용의 질과 크기가 너무 방대하게 되면
받아야 하는 충격 또한 정비례의 강도로 강력하게 오나 봅니다.
병준아빠께서 이럴 때일수록 이 악물고 버티며 악착같이 살아야 한다는 말에 울컥했습니다.
월야님께서 너무 나약하게 굴지 말고 정신차리라며 괴로워하시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누군가 한 말이 생각납니다.
절망은 일회성이 아니다. 한 두번 왔다 소멸하는 절망은 없다. 절망은 대를 잇는다.
당대에서 끝나는 절망은 절망이 아니다. 절망의 진정한 의미는 알 수 없는 불안의 그림자를
항상 데리고 다니면서 시효가 없이 반복됨을 의미한다. 따라서 절망이 단기적으로
끝난다면 그것은 절망의 실격이다. 그것을 절망이라고 정의하면 안 된다.
지금의 우리의 처지가 그렇게 거대한 정체모를 절망이라는 괴물의 마수에 걸려들어서
꼼짝도 할 수 없는 슬픔에 갖힌 신세가 되어 버린 것 같습니다.
쥐가 언론을 5공때보다도 철저히 장악하여 공중파로 조중동으로 쉬임없이 세뇌한 결과
무지한 늙은 세대들이 대대적으로 몰려나와 90% 가까운 몰표를 행사하였습니다.
비운의 베이비붐 세대라며 정년 퇴임후 앞날이 불안한 그들이 기껏 내세운 주장이
아파트 가격 떨어진 것과 노무현정부때 심화된 양극화 때문이라니 말문이 막힙니다.
아파트와 주택 가격 폭등과 추락은 1%의 기득권들이 벌인 투기판이었다는 것을 모르고 말이죠.
복지 예산 증액은 그대로 둔 채 아파트 값만 오르면 그들의 주머니 사정이 나아질 턱이 없죠.
아파트 값이 오르면 집 한 채 가지고 있는 그대들은 어떠한 경제적 도움이 없습니다.
집을 여러 채 보유한 1%의 기득권들 만이 그만큼 오른 임대 소득으로 돈을 챙길 뿐입니다.
물론 그 돈은 집 없는 서민과 저소득 층이 고혈을 짜내서 내야 하는 것이구요.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렇게 자신의 피와 살을 파먹는 집단인 탐욕의 무리에게
세뇌당하고 속아 넘어가 오히려 새누리당을 지지하고 표를 주는 저소득 저학력 층입니다.
감언이설로 사탕발림을 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간단하게 넘어가 버리는 가련한 족속들
그들의 내면에 과연 이웃과 더불어 서로 돕고 나누며 상생하려는 본능이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사기를 치는 넘들보다도 황당한 속임수에 넘어가는 자들이 더 나뿔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도 일확천금을 노리는 한탕주의를 내심 가지고 있는 셈이 되니까요.
사행사업으로 불리는 경마장의 모습을 보면 거의가 가난한 서민들이 고객인데 그들이 아무리
재기할 방법이 없어서 그런다고 항변해도 그것은 전혀 타당한 이유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절망감이 큽니다. 다수의견을 선택하는 지금의 민주주의가 과연 최고의 제도인지
헷갈릴 정도로 멘붕이 오는 것은 좀 지나친 비약일런지 모르겠구요.
앞으로 우리는 눈감고 귀막고 살아야 되겠지요. 다양성이 충만한 문화와 예술은
자취를 감추고 스포츠 저질 오락물 그리고 재벌들이 달성한 신화창조 각색 다큐물 뉴스는
온통 준비된 여성대통령 신격화로 내보낼 것이고, 너희들은 죽어라 막노동을 해야만 한다.
그래야 입에 풀칠이라도 할 수 있고 산 목숨 연명할 수 있느니라... 참으로 참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