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 글은 서울성북광장 토론광장에서 함께 입력된 조이풀님의 글입니다. |
하인리히 하이네(Heinrich Heine)
“책을 불사르는 곳에서는 마지막에 인간까지도 태울 것”
독일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는 <로렐라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오월에> 등, 주로 연애서정시로 한국에서는 알려져있다. 그러나 이것은 하이네의 진면목과는 전혀 다르다. 일찍이 프랑스 혁명을 목도하며 조국 독일의 봉건과 압제에 맞서 참여시를 쓴 하이네는 한국에서는 군사독재시대는 물론 지금까지도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하이네는 아이러니와 풍자 기법을 바탕으로 정치참여의식을 예술적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시인이다. 오늘날 신문의 문예란(Feuilleton)에서 풍자적이고 비판적인 문예비평을 하는 전통은 사실 하이네의 저널리즘 문학에서 확립된 것이기도 하다.
그는 구체제에 맞선 투쟁을 전개하면서도 맹목적이고 과격한 교조주의를 비판했으며 독일에서 추방되어 파리에서 죽을 때까지 망명생활을 하면서도 조국의 반민주와 독재에 평생 항거했다. 하이네의 고향 뒤셀도르프에서는 70~80년대 학생들의 끄질긴 요구에 굴복한 정부당국이 대학교명을 "하인리히 하이네 대학교"로 개명하는 사건이 있었다. 보수파들이 그토록 반대한 저항과 반체제의 유대인인 하이네가 결국 승리한 이 사건은 과연 진정한 조국애가 무엇인지 일깨워준다.
다음의 시는 하이네의 친구이기도 했던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극찬한 작품으로 1844년 슐레지엔 방직공장 노동자들의 봉기를 소재로 한 것이다. 1844년에 일어난 "직조공의 봉기"는 G, 하우프트만의 연극, 케테 콜비츠의 판화 등 많은 예술작품의 소재가 되었으며 세계적으로 저항 예술의 상징적인 원천이 되었다. 당시 직조공들의 비참한 생활상이 국경과 시대를 초월해 오늘날도 여전히 세게 도처에서 반복되기 때문일 것이다.

케테 콜비츠 작: 직조공의 봉기 중 <행진>
슐레지엔의 직조공 Die schlesischen Weber
침침한 눈에는 눈물도 말랐다.
그들은 베틀에 앉아 이를 간다.
독일이여, 우리는 너의 수의를 짠다.
우리는 그 속에 세 겹의 저주를 짜 넣는다.
우리는 철커덕거리며 옷감을 짠다.
우리는 철커덕거리며 옷감을 짠다.
첫 번째 저주는 하느님에게
추운 겨울에도 굶주리며 그에게 기도하였건만
우리의 바람과 기다림은 헛되었다.
그는 우리를 원숭이처럼 놀리고, 조롱하고, 바보로 만들었다.
우리는 철커덕거리며 옷감을 짠다.
우리는 철커덕거리며 옷감을 짠다.
두 번째 저주는 국왕에게, 부자들을 위한 국왕에게
우리의 비참한 삶을 본체도 않고
우리를 협박하여 마지막 한 푼까지 앗아가고
우리를 개처럼 쏴 죽이게 한다.
우리는 철커덕거리며 옷감을 짠다.
우리는 철커덕거리며 옷감을 짠다.
세 번째 저주는 잘못된 조국에게
이 나라에는 오욕과 수치만이 판을 치고
꽃이란 꽃은 피기도 전에 꺾이며
모든 것이 썩어 문드러져 구더기가 득실거린다.
북은 나는 듯이 움직이고 베틀은 삐걱거리며
우리는 밤낮으로 옷감을 짠다.
썩어빠진 독일이여, 우리는 너의 수의를 짠다.
우리는 그 속에 세 겹의 저주를 짜 넣는다.
우리는 철커덕거리며 옷감을 짠다.
우리는 철커덕거리며 옷감을 짠다.

직조공의 봉기 중 <빈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