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전대표님의 ‘어떻게 살 것인가’의 짧은 감상을 읊겠습니다. 저는 유 전대표님의 책이 출간되기 전에 그의 책 제목을 접하고 “배부른 소리다”란 오만한 견해를 피력한 바 있습니다. 저의 발칙한 사고에 욕을 한 바가지 먹고 엄청 배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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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좋은 책은 세 가지를 지닌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 읽게 만든다. 다른 책을 읽도록 이끈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한다. 저는 유 대표의 책을 두 번 읽었고, 유 대표의 또 다른 저서를 찾아 읽었고, 그리고 읽기 전에, 읽는 도중, 읽고 나서도 질문을 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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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대표는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새로운 삶의 방향을 선택하셨습니다. 아니 새로움이 아니라 처음 출발지에 다시 섰습니다. 연어가 강물을 따라 먼 바다에 다다르자 이내 강물을 거슬러 그의 출발지로 귀환하는 모습입니다. 연어의 귀환은 죽음의 숙명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바다로 향해야만 하는 또 다른 무수한 연어의 생성에 있습니다. 유 대표의 ‘어떻게 살 것인가’는 바다를 겪은 자의 인생 경험담이며, 강물 따라 바다를 결코 포기하지 말라는 무수한 연어들을 향한 조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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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과거에 ‘어떻게 살 것인가’와 ‘어디로 갈 것인가’를 견줘 건방진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살다’가 삶의 실존적 문제에 맞닿아 있다면, ‘가다’는 삶의 본질적 문제에 대면하게 된다. 결국 ‘살다’가 부단히 배반하는 현실의 상황속에 홀로서기를 감행하는 독립선언이라고 한다면, ‘가다’는 부정적인 현실에 저항하며 함께가기를 감행하는 자주선언이다.>라고. 그러나 유 대표의 책에는 ‘놀고 일하고 사랑하고 연대하라’가 함께 어우러져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놂과 일이 사랑과 연대의 출발이라면 사랑과 연대는 놂과 일의 완성임을 깨닫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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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좋지 않은 독서 습관이 있습니다. 책을 첫 페이지부터 읽는 것이 아니라 아무 곳이나 펼쳐진 곳을 우선 읽습니다. 그리고 그 부분을 시를 읽듯 오랫동안 매달립니다. 그곳이 155쪽 “한번도 꿈꾸어 본 적이 없었던 글쟁이가 되었으니, 인생은 역시 계획대로 되는 것만은 아니다. ‘폐 끼치지 말고 살자.’ 이것이 내 좌우명이다. ”라는 부분입니다. 잘 먹고 잘 살자의 가벼운 넉살과 선행을 강요하는 위압의 무거움이 없어 좋았습니다. 그러나 이 좌우명이 무욕의 경지라는 수도 고행의 정점이라는 사실에 다가서게 되면 결코 범접할 수 없는 초연함이 폐부를 찌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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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세상을 하얗게 덮은 눈이 대지를 품고 새로운 봄을 잉태하듯 죽음까지 맞닿은 그의 글에는 새로운 삶의 가치를 잉태한 산고로 보고 싶습니다. 책의 에필로그 ‘현명하게 지구를 떠나는 방법’에 와서는 이제 죽음마저 여유로운 마음으로 관조할 수 있는 상황에 놓여 있음에 적이 마음이 놓입니다. 어쩌면 미리 쓴 유서가 될 지도 모를 이 글이 자신의 내부에 감춰져 있던, 그러나 매번 노출되어 있음에도 부정되었던 그의 진실이 직업 정치라는 껍데기를 깨버림으로써 드러난 최후의 알맹이가 돼서는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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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라는 걸출한 이 시대의 정치인이 한 명의 보통 인간으로 돌아와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삶 자체를 사랑하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광야에 내던져진 실존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그 목소리가 이끄는 데로 가라고 손짓합니다. 그것이 편하고 행복하다고 다정스레 얘기합니다. 행복의 첫 조건이 자신의 자유의지에 있음을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여행지를 선택하고 자유롭게 여행을 하고, 돌아와서는 추억으로 그 여행을 떠올려야 여행을 마친 것이고, 행복한 여행을 한 것이며, 새로운 여행을 할 수 있습니다. 여행은 새로운 세상과의 만남이기 앞서 자신과의 만남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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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대표는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선택했으나 아름답고 행복한 인생을 걷고 있는 한 젊은이를 주목합니다. 크라잉넛의 스무살의 삶을 보이며 그들의 ‘닥쳐’로 자신의 뜻을 전달합니다. 이성적 잣대로 삶의 가능태를 예단하여 차단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젊음의 무모함이 그들에게는 도전이고, 내면의 진실이기에 그것만으로 아름다움이며 행복임을 강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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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실에서 나와 광장으로, 다시 광장에서 밀실로 귀환함은 마치 뫼비우스띠처럼 안과 밖이 없음을 자각한 자만이 가능할 것입니다. 밀실이 자기를 독대하는 놂과 일의 광장이라면, 광장은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는 사랑과 연대의 밀실임을 알게 합니다. 유시민 대표는 분명 부러운 존재입니다. 현실과 이상의 경계를 허물고 나의 관념이 때로는 누군가에는 이상이 되고, 누군가에는 허상이 되겠지만 그러한 사고의 흐름이 한 권의 책이 되고 그리하여 세상과의 은밀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 이것은 밀실과 광장의 만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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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여기'에 살면서 어디로 갑니다. 죽음의 시간과 공간을 향해 부단히 허우적거립니다. 피할 수 없는 실존적 비극이 숙명이라면 지금 여기에 놓인 나는 그렇게 살라하는 운명과 패배가 예정된 승부를 벌이는 슬픈 생명일지도 모릅니다. 그렇기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 문제는 자신과의 대결이며, 부디 이겨달라는 간절한 유 대표의 바람일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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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길었습니다. 약속을 지켰습니다. 광장에 한 발 디딜 수 있어 기뻤습니다. 그리고 체리토끼님 결혼 축하드립니다. 아마도 주례사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요약문이 되겠군요.. 예전에 유시민 대표를 떠올리며 쓴 제 글로 마무리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푸른 잎새를 떨구고 하얀 눈을 뒤집어 썼다고 해도 산은 여전히 산이다. 추우면 추운대로 산은 객을 맞이하여 추위를 이기도록 산 정상을 내주고, 더우면 더운대로 산은 객에게 산자락 아래에서부터 그늘을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