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덕진님의 글 입니다
지금부터 104년전, 10월 26일. 누군가의 사망소식이 한성으로 날아듭니다. 충격에 휩싸인 대한제국. 내각과 황실은 대책회의와 조문단 구성에 벌집 쑤신듯 했습니다. 황실과 정부의 위문사절단이 중국 따롄으로 급파됩니다.순종황제는 "우리 나라의 흉수 (凶手)에게 사망한 고로 온 나라가 놀라떠는 것을 이기지 못해 이에 추도한다"라는 전문을 보내고 죽은 이에게 문충 (文忠)이라는 시호를 내립니다. 내각은 부의금 13만원 지출을 결의합니다. 훈령이 내려집니다.
3일 동안, 전국의 아침시장이 열릴 수 없었고, 각급학교는 휴교했습니다.
역시 3일간 , 한성에서 음악공연등이 금지됐습니다.
순종은 11월 4일 다시 조칙을 내립니다.
" 그는 동양평화의 지보자이며 또 실로 우리나라 개발의 일대 은인"이며 "짐의 국가의 사표로 궐훈과 궐덕이 전고에 없으며", "광패한 무리가 세계형세에 어두워... 신민으로 짐의 의사를 위배하여 흉학자사케 하는 자가 없어야..."
대한제국 황제 순종이 격렬하게 비난한 광패한 무리, 그 사람의 이름은 '안중근' 이었습니다.
황실과 정부가 애도를 표하느라 법썩을 떨었던 사람, 그 이름은 '이등박문'이었습니다.
이등박문 애도열기는 조야가 따로 없었습니다.
11월 4일 동경 히비야 공원에서 치러진 이등박문 장례식을 앞뒤로 각종 추도회가 대한제국에서 개최됩니다.
관민합동추도회, 국민대추도회, 대한광부회 추도회, 대동교회추도회, 상업회의소 추도회...
계층과 지역을 망라했습니다. 규모도 다양했습니다.
각종 사회단체들이 주최한 추도회 열풍은 1910년 '경술국치' 이후까지 이어집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이등박문을 죽인 사람이 한국인이었기에, 국내에 '사죄단'이 조직됩니다.
이들은 일본으로 건너가 이등박문의 죽음에 사죄합니다.
물론입니다.
당시 '광기어린' 이등박문 추모열기를 비판의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단지, 소수였을뿐.
104년이 흘렀습니다.
우리에게 당시의 '이등박문 추도회' 열풍은 코메디로 보입니다.
'흉수'로,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던 '안중근'은 민족의 영웅입니다.
'사회적 통념'의 전복.
순리로 간 역사.
그동안 우리에게 일어난 일입니다.
답답함과 아득함을 토로하시는 분들이 많더군요.
근자에 일어나는 역사의 '퇴행'을 보면서 말입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기득권 세력과 수구언론의 행태는, '광기'라는 수식어가 부족합니다.
사회적 통념의 향배는,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굽은 것은 펴지고, 막힌 것은 뚫리는 법.
이것이 역사의 교훈이 아닌가 싶습니다.
막히고 걸리더라도, 강이 바다로 흐르듯 말입니다.
어두운 시대의 도래는 고마운 일입니다.
우리의 좌표를 명확하게 합니다.
역사의 과제를, 우리 손안에 쥐어줍니다.
104년전 미망의 시대를, 새삼 기억하는 이유입니다.
사진설명: 1909년 동경 히비야 공원에서 치러진 이등박문 장례식 모습.
박덕진 님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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