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 대한 지극한 성찰-신경림 시인(1)

신경림 시인이 우리 나라 문학사에서 ‘민중문학의 지평을 열었다’는 것에 평자들의 견해는 대체로 일치한다. 김수영과 신동엽이 시대와 역사, 민족이라는 화두로 문학의 사회적 기능과 그 가능성을 개척했다고 보면 신경림은 그 주체가 되는 사람의 모습을 시로 형상화 함으로써 우리에게 친숙하게 다가온 시인이다.소재는 자연과 역사, 인류라 할지라도 결국 시적 화자는 너, 나, 우리라는 사람이다. 이제부터 신경림이 말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달린 가설 무대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빈 운동장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줏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꽹가리를 앞장세워 장거리로 나서면

따라붙어 악을 쓰는 건 쪼무래기들뿐

처녀애들은 기름집 담벽에 붙어 서서

철없이 킬킬대는구나.

보름달은 밝아 어떤 녀석은

꺽정이처럼 울부짖고 또 어떤 녀석은

서림이처럼 해해대지만 이까짓

산구석에 처박혀 발버둥친들 무엇하랴.

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야

아예 여편네이게나 맡겨두고

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와 돌 때

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

한 다리를 들고 날라리를 불꺼나.

고개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거나.

<농무(農舞), 전문>

신경림 시인이 55년 등단 이후 16년만에 내놓은 시집 <농무>에 수록된 대표시다. 조지훈의 <승무>는 시적 언어의 세밀함으로 여승의 보여지고 있는 이미지와 그 춤 자체를 형상화 하고 있다. 신경림의 농무는 농민의 춤을 보여주고 있지는 않다. 풍년제나 추수제와 같은 농민 행사가 끝나고 난 뒤의 회향하는 분위기를 시로 그려내고 있다. 여기에서 등장하는 신경림의 사람은 농민이다. 농민은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줏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보름달은 밝아 어떤 녀석은 꺽정이처럼 울부짖고>, < 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야 아예 여편네이게나 맡겨두고> 이렇듯 너, 나, 우리라는 화자로 등장하여 마치 한편의 극을 보는 것 같다. 스토리가 전개되고 테마가 있다. 이는 시라는 짧은 운문이면서도 장편의 영화 내지는 드라마를 보는 듯한 극적 구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시인은 <산구석에 처박혀 발버둥친들 무엇하랴. 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야 아예 여편네이게나 맡겨두고> 결국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게 아닐까. 시인의 경험적인 농촌 고향 생활을 고스란히 표현하고 있다.

농촌의 대물림해 오는 가난과 피폐함, 문명의 이기를 쫓아가지 못하는 농민들의 셋빠지는 농사, 자본 편향적인 국가의 제도, 이런 것들에 시인은 격렬하게 저항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다소 작은 목소리로 구호가 아닌 정서로 농민이라는 사람을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