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천재들 덕분에 인생이 편하고 즐겁다.

만능인 인간은 없으니 자고로 모든 인간은 각 분야의 재능있는 사람들의 덕을 보며서 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바흐, 베토벤, 모짜르트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이들에게 한 없이 감사한 마음이 들곤 한다.

몸소 악기를 배워 본 덕에 그들의 음악이 얼마나 잘 만들어진 것이고 그런 음악을 제대로 연주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더욱 깊이 느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인생을 즐겁게 살려면 자고로 주변의 가치있는 것들을 알아보기 위한 어느 정도의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리고 내가 몰라서 느끼지 못하는 아름다움에 대해 스스로 겸손해야 한다. 

10대에는 클래식에 빠져 지내는 동안 그 이외의 음악을 경멸했었다. 세월이 지나고 보니 그 역시 무지의 소치였다.

요즘엔 내가 즐기지 못하는 영역이 있을 때 그것을 마치 나의 선택인듯 착각하지 않기 위해 보다 신중하고 겸손해 지려고 노력한다.

NLL 어쩌구 하면서 국정원에서 정상회담 기록을 언론에 공개했을 때, 나도 원문을 읽어보긴 했었다. 그런데 그게 눈에 잘 안 들어왔다. 녹취록이란 것이 원래 말한 것을 그대로 옮겨적은 것이라 텍스트를 통해서 대화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힘들기도 하거니와 생소한 북한 말과 정치 상황에 대한 기초 지식의 부족함이 더해져서, 그야말로 노무현대통령이 NLL포기 발언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는 수준에서 그쳤었다.

그런데 작가 유시민은 달랐다.

아마 수십 번 대화록을 읽은 것 같은데, 그 내용을 잘근잘근 씹어서 갓난 아기도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바꿔서 우리에게 선사했다.

덕분에 대화록이 두 나라 정상의 정치적 능력, 식견, 진정성을 살펴 볼 수 있는 자료이고, 향후 남북 관계를 바르게 이끌어 갈 이정표이고, 특히 우리의 노무현 대통령의 향기에 다시 한 번 흠뻑 빠져볼 수 있는 진기한 기록물임을 알게 해 줬다.

정말 고맙기 그지없다.

그런데 이런 진기한 기록물이 하필이면 불법 선거운동에 악용되어 본질과 한참 멀어진 너덜너덜한 상태로 우리들 손에 쥐어지다니 가슴 아픈 노릇이다.

가치를 알고 나니 안타까움도 배가 되어 내 마음을 무겁게 짓누른다. 

유시민 작가가 에필로그에 남긴 심경이 정말 공감이 가서 소개한다.

"대화록의 기구한 운명을 생각하면서 마치 현실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현실을 본다.  그 회담은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둘이서만 한 것이 아니었다. 대화록에는 비록 직접 만나지는 않았으나 참모들을 통해 진지한 대화를 주고 받았고 중요한 합의문을 만들었던 박정희 대통령과 노태우 대통령, 김일성 주석의 고뇌와 꿈이 깔려 있다. 김대중 대통령의 비전이 들어 있다. 분단의 골짜기를 넘고 대결의 불구덩이를 건너 민족의 화해와 한반도의 평화를 찾아 나섰던 그들의 용기와 의지가 묻어 있다. 대화록 갈피마다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나누었던 번민과 분노, 기대와 희망, 비전과 전략, 분노와 열정이 비친다. 이래도 되는 것일까? 그 대화록을 이토록 아무렇게나 다루어도 괜찮은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