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 글은 문학광장 글마당에서 함께 입력된 조이풀님의 글입니다. |
거창하게 영화평이라고 하기는 그렇지만 나름대로 본 소감 정도는 정리해 두는게 좋을 것 같아서 자판을 두드린다. 일단 두 영화의 공통점은 메시지가 있다는 것이다. 변호인은 '사회 정의'라는 메시지를 주었고, 수상한그녀는 '세대간의 문화 완충과 가족애'라는 메시지를 주었다. 이 메시지를 주는 방법은 인간의 지극히 순수한 정서적인 면, 즉 감정을 건드리면서 전달 했기에 결국 관객에게는 벅찬 감동으로 다가온 것 같다.변호인은 만루 홈런을 치면서 이미 결과가 나온 상태다. 수상한 그녀는 이제 안타 하나 치고 주자가 나가 있는 셈인데, 수상한 그녀 역시 만루 홈런을 칠 것 같은 자질은 충분하다고 본다. 왜 이 두 영화는 관객들에게 이렇듯 좋은 호응을 얻었을까.
소설 창작의 기본은 개연성 있는 허구, 즉 픽션이다. 우리 주위에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을 작가가 상상력을 동원하고 필력으로 완성해서 독자들에게 문자라는 형식을 빌리고 책이라는 물리적 미디어를 통해 전달한다. 영화 역시 마찬가지다. 영상이라는 형식을 빌리고 극장이라는 화학적 미디어를 통해 전달한다. 그런데 전달한다고 해서 다 감동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여기에서 픽션과 논픽션의 아슬아슬한 경계가 있고 이 경계를 완벽하게 소화해 낸 작품인가에 따라 그 수준과 결과가 주어진다고 본다.
변호인은 노무현 변호사와 부림사건이라는 실제 있었던 역사의 인물과 사건을 소재로 삼았다.돈 많이 벌던 조세 전문 변호사가 인권변호사로 변모해 가는 과정을 리얼하게 그려냈다. 공안 정치 권력과 검경의 유착, 7,80년대 민주화운동을 한 선배들의 경험담으로 충분히 상상이 가능한 고문과 인권유린 등을 내용에 담았다. 논픽션에 가깝다는 것이다. 이 정도면 르뽀(르뽀는 기사와 문학 형태를 믹스한 논픽션이다) 잘 쓰는 작가가 글로 전달해도 충분할 수 있다. 그러나 변호인은 영화로 우리에게 찾아왔다. 한편의 극영화가 되기 위해서는 시나리오, 연출, 연기 등이 완벽하게 맞아 떨어져야 한다. 시나리오는 극적인 반전을 무수히 시도 했을 것이고, 연출 감독은 재미적인 요소를 찾기 위해 고심 했을 것이다. 그리고 연기는 다소 신파적인 액션이 따라야 감동을 준다는 기본적인 생각이 있었을 것이다.변호인 소재 자체가 논픽션이다보니 시나리오에서는 픽션을 찾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을 것이고 그 결과 곽도원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었다.송강호의 법정씬은 다소 거친 면이 있는데 극영화는 다소 신파적인 연기가 관객들에게 잘 전달 된다는 것을 새삼 확인해 준 것이다.
변호인의 흥행에는 현 대한민국의 시국과 무관하지 않으며, 노무현대통령에 대한 향수가 현저히 내재 되어있음을 부인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천백만 이상의 관객이 이 영화를 봤다는 것은 영화로서 가져야 할 기본적인 상징과 은유, 반전이 있었다는 것인데 나는 메타포를 잘 이해 하지는 못하지만 결국 이 영화에는 메타포가 있었다는 것이다.
수상한 그녀는 시나리오에 기본적으로 충실한 작품이다. 노년이 되어 한번 젊어져 봤으면 하는 생각,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 나도 가수가 되어 무대에 한번 서 봤으면 하는 젊은이들의 꿈, 핵가족 시대에 생각해 보아야 할 노인문제 등 한편의 영화에서 다소 무거울 듯한 테마를 적절히 배합해 가며 감동을 주고 있다.청춘사진관이라는 상상력이 기발한 영화다.픽션과 논픽션이라는 줄타기를 작가와 감독, 배우들이 잘 소화해낸 작품이다. 나문희와 심은경의 유체이탈 화법은 관객들을 울리고 웃기고, 결국 이 영화 잘 만들었다 하는 생각을 갖게한다.
앞으로 관객이 얼마나 더 들지 모르지만 잘 만든만큼 천만 이상의 관객이 찾아주기를 기대해 본다.
지난 연말과 설연휴에 나는 <변호인>과 <수상한그녀>두 영화를 보면서 한국 영화의 질적 수준이 허리우드 못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제작비 등을 고려하면 산업으로서 성공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뿌듯한 생각이 든다. 한국 영화 잘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