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완 선생님께

선생님과의 인연도 어느덧 30년이라는 세월을 헤아립니다. 이 세월 동안 억울함이 있고, 분노가 있고, 불의와 맞서 싸워야 하는 자리에는 선생님이 늘 자리하고 계셨기에 이렇게 세월 가는 줄 몰랐고, 두루마기와 하얀 모시, 성성한 백발은 그 때나 지금이나 같은 줄 만 알았습니다.

일생 동안 불온한 현대사를 살아 오셔서 민중의 큰 이름, 백기완이라는 이름은 가난하고 서글픈 민중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 하면서도 지금처럼 힘 없는 민중의 시대에는 ‘그 무슨 감투’라고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라는 엄청난 일을 당하면서 형언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유가족 분들과 국민들이 보내는 나날이기에 이 즈음 선생님의 연륜에는 역할이 있으셔야 한다는 생각에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선생님, 저는 지금 35일째 단식을 하고 있는 유민이 아빠의 단식을 중단 시켜 주실 수 있는 분들은 재야 원로들이신 것 같다고 말씀 드립니다. 과거 민주화운동을 되돌아 보면 결정적 계기 때는 재야 원로 분들께서 나서 주셨습니다. 교단과 교파를 가리지 않았던 종교계, 보수와 진보는 있었지만 큰 일을 두고는 마음을 합칠 줄 알았던 학계, 불의에 항거하는 시민 사회계와 정의한 시민정신, 테이블을 만들고 머리를 맞대고 성명서를 만들고 거리에 나서 죽음을 불사 하시던 원로 분들이 계셨습니다.

더구나 지금의 국민들은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두고는 정치권을 믿지 못합니다. 국민들에게희망을 주어야 할 정치가 정치인들의 이익 따지는 셈법 때문에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야당을 믿지 못하고, 실제로 야당 비대위원장이 헛발 한번 찼더니 특별법은 언제 만들어질지 가늠하기 어려운 지경에 있습니다. 청와대와 여당의 선데이서울 수준의 정치가 국민들을 우롱하고 있습니다.

선생님 이제는 선생님을 비롯한 원로 분들이 나서 주셔야 합니다.

선생님과 유민이 아빠가 손을 잡고 거리에 나서는 사진을 보았습니다. 선생님도 부축을 받으셔야 할 연세이신데 유민이 아빠의 손을 꼭 잡은 선생님의 손을 보았습니다. 두 분의 결연한 모습과 함께 보이는 유민이 아빠의 피골이 상접한 모습은 너무나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91년 강경대 이후 숱한 청년들이 민주화를 외치며 목숨을 버릴 때 선생님은 대학을 돌며 ‘제발 죽지 말아라’라며 간절하게 외치셨죠. ‘살아서 싸우라’는 그 때 선생님의 목소리는 불의가 많은 이 나라에는 경전이었고, 지금도 그 의미는 같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이 목소리가 유민이 아빠에게도 똑같이 전달 되어야 합니다.

단식 35일 째인 오늘, 유민이 아빠는 지금 삶과 죽음 사이를 시시각각 오가고 있을 것입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을 잃은 유민이 아빠는 삶과 죽음에 의연한 모습이지만 유민이 아빠를 응원 하면서도 죽음은 안 된다고 하는 저희 국민들의 생각도 헤아려 주셔야 합니다.

선생님, 원로 분들과 지혜를 모으셔서 유민이 아빠 단식을 중단 시켜 주시길 간곡히 부탁 드립니다.

2014, 8, 17 유민이 아빠 단식 35일 째 되는 날 조덕섭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