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 글은 문학광장 날적이에서 함께 입력된 njbora님의 글입니다. |
폭력과 상스러움 - 진중권
「진짜 자유주의자라면 '자유'라는 말로 경제적 자유 이상의 것을 의미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게 교양이다. 또 시장을 만능 '해결'로 보는 수준을 넘어 동시에 그것을 '문제'로 볼 줄도 알아야 한다. 그게 상식이다. 평등을 자유와 대립시켜놓고 '골라, 골라' 야바위를 하는 수준을 넘어 '정의'라는 이름으로 평등의 문제의식을 적극적으로 끌어안을 줄 알아야 한다. 그게 현대적 자유주의의 수준이다. 그런 교양과 상식과 수준도 갖추지 못한 주제에 여기저기에 "스스로를 자유주의"라고 부르고 다니고, 심지어 남에게 "진정한 자유주의자"라고 불러달라고까지 부탁하는 이 뻔뻔함. 그 앞에서 진짜 '자유주의자'는 곤혹스러울 수 밖에....
- 본문 중에서
이 책의 저자는 경향신문인지 중앙일보인지 칼럼은 연재하고 있었다. 그 이후로 몇 번 TV에서도 저자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때까지는 그냥 이러저러한 평론가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저자에 대한 생각을 바꾸게 된 계기가 한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서였다. 지금은 너무 오래되어서 정확한 주소도 생각나지 않지만 강준만, 김규항, 홍세화 그리고 저자의 글을 부지런히 퍼 옮겨 놓은 사이트였다. 그곳에서 나는 이런 도발적인 생각을 하며 발칙한 글을 쓰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책의 제목, [폭력과 상스러움]은 과연 저자다운 제목이라고 생각된다. 이 책은 다른 어떤 글보다도 내가 예전에 그 사이트에서 느꼈던 저자의 발칙함을 느끼게 한다. 매우 개인적인 주관이지만 강준만과 저자의 글은 어떤 면에서는 비슷한 것 같지만 그 발칙함을 두고 본다면 저자가 더 우세하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은 폭력, 죽음, 자유, 공동체, 처벌, 성(性), 지식인, 공포, 정체성, 민족, 힘, 프랙털 등 12가지 주제로 우리 사회의 문제점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전개하고 있는데 책의 부제인 엑스리브스(Exlibris)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저자는 다른 책이나 신문, 잡지 등에서 발췌하고 인용한 타인의 말과 글을 중심으로 그들의 논리를 매우 재치 있게 반박하고 있다.
저자는 우리 사회의 정신상태(망탈리테)를 3가지로 분석하는데, 정치적 국가주의와 경제적 자유지상주의, 문화적 보수주의가 그것이다. 여기서 저자가 더 문제 삼는 것은 이 3가지 정신상태가 큰 구조에서 작은 구조로, 그 작은 구조에서 다시 더 작은 구조로 계속 반복되며(저자는 이것을 프랙탈 구조라고 불렀다.) 우리사회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책에서 가장 나의 마음을 후려 파는 부분은 저자가 자유에 대하여 비판하는 부분, 경제적 자유지상주의다. 저자는 자유주의 경제에 대한 무비판적인 수용과 시장만능주의, 몰인간적인 자본숭배로 인한 천민자본주의를 극도로 경멸하고 있다.
왜 내가 이 부분에서 가슴이 뜨끔 했는가 하면, 그동안 내가 배운 경제학은 저자가 비판하는 경제적 자유지상주의를 최고지선으로 생각하는 경제학이며 나도 그것에 대해서 회의나 부정을 했던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전에도 자유지상주의를 경계하는 글들을 간간히 읽었지만 저자의 비판이 새삼 따갑게 들리는 이유는 역시 그 글의 힘 때문일 것이다.
생각해보면 심지어 후생경제학(Welfare economics)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경제학의 한 분야도 결국은 사회적 총잉여를 극대화하기 위해 부단히 계산하고 따질 뿐 그 잉여를 어떻게 사회적으로 평등하게 분배할 것이며 사회적 복리에 기여할 것인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자유무역의 절대 진리로 여겨지는 비교우위론도 그것의 의미와 이론을 이해하는 것만 생각했지 그 뒤에 감쳐진 이면은 보려 하지 않았다.
저자가 미학을 전공해서인지 이 책에는 '미학', '존재미학' 등의 용어가 수차례 나오지만 나는 이 말들의 사전적인 의미만 이해했을 뿐 이 말들이 구체적인 맥락에서는 어떤 의미로 사용되는지는 이해하기 어렵게 느껴진다. 특히 287쪽부터 나오는 '정의와 힘'이라는 주제의 글에서는 나를 자괴감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나름대로 책을 읽었다고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들은 거의 이해하지 못했다. 내게 있어서는 차라리 복잡한 경제학 서적이나 지루한 역사 서적을 보는 것이 이 책을 읽는 것보다 훨씬 이해하기 쉬웠다. 그러나 그럼 어떤가. 결국 그것도 스타일의 문제일 뿐이다. 누군가 그러지 않았던가. "스타일에게 자신을 줄줄이 해명해야 할 의무를 부여하면, 그것은 더 이상 스타일일 수가 없다." 고...
우리는 다양성의 시대에 살고 있다. 다름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이 시대를 이끌어 나가는 원동력은 나와는 다른 사람들을 배척하고 그들과 대립하고 투쟁하는 것이 아니다. 이 시대의 원동력은 나와는 다른 것, 다른 생각, 다른 속성을 가진 사람들, 나와는 다른 지역의 사람, 나와는 다른 문화와 인종의 사람, 나와는 다른 성(性)의 사람, 나와는 다른 말을 하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 그 다름, 다른 것이 우리 사회, 우리 시대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진지하게 논의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다름의 시대의 원동력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이 책을 읽고 유일하게 건져낸 것이다. 그러나 이 하나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가치가 있었다.
한국인의 정체성은 패거리의 정체성이다. '에고'는 있어도 '주체'는 없다. 그리하여 제 조그만 이익을 지키는 데에는 남에게 질세라 악착같이 달려들어도, 정작 자기의 견해를 얘기해보라고 하면 변변히 제 생각을 말로 풀어낼 줄 모른다. 우리 사회에는 '집단'은 있어도 '사회성'은 없다. 한국 사람들이 갖고 있다는 그 친절함은 정확하게 자기가 속하여 친분이 있는 집단의 동그라미에서 멈춘다. 그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 어떤 일을 당하든, 평균적인 한국인은 그들에게 아무 연대 의식도 느끼지 못한다. 슬프지만 그게 우리의 자화상이다. - P.P 250
언어의 자유로움의 극치를 선물하는 진중권씨의 글을 읽다보면, 미처 짐작하지 못한 의문과 모순들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 한다.
눈이 보이지 않은 그 구조를 찾아내는 숨은그림 같은 책이라 말하고 싶다.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