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씨를 처음 알게 된것은 대학 신입생때였다. 1984년 꿈이 많은 순박한(?) 시골아이가 서울로 대학을 왔던 것이다. 당시는 서슬퍼렇던 전두환 군사정권이 대학에 대한 유화책으로 학원자유화를 실시한 첫해라 대학가는 자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그해 가을 그동안 학생의 대표기구였던 관제 학도호국단이 자발적으로 해산하고 처음으로 총학생회가 출범하는 선거가 치루어졌다. 서울대 관악캠퍼스에는 도서관과 대학본부 사이에 아크로폴리스라고 명명된, 넓은 비탈의 잔디밭이 있다. 그곳에서 선거유세가 열렸다. 만명이 훨씬 넘는 학생들이 운집한 가운데 후보들이 연설하는 열기는 정말 후끈했다.

PD계열의 후보였던 총학생장 후보 이정우씨의 연설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저 간악한 무리들..."이라면서 북쪽 청와대를 가리킬 때는 모두 열광의 박수를 보냈다. 그는 타고난 선동가였다(그가 그후 사시에 합격하고 조용히 변호사 생활을 하고 있다는게 요즘도 잘 믿기지 않는다).

그후 등장한 부총학생회장 후보였던 사람은 쑥스러운지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하고 단상에서 원고를 읽는 것도 힘들어 하는것 같아 듣는 내내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그가 바로 유시민씨였다(나중에 TV 토론 사회자로 변신하여 명쾌하게 패널들을 조율하는 그를 1984년 당시와 연결하여 보고 놀란 것은 비단 나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정우, 유시민의 런닝메이트는 그해 가을 서울대 총학생회장단에 선출되었지만, 그들의 얼굴은 그후 재대로 볼수 없었다. 총학 출범 얼마후 그들은 바로 지명수배 명단에 올랐던 것이다. 그런데, 지명수배자 1호는 이정우가 아닌 유시민이었다.

그가 바로 학생운동의 핵심브레인이었던 것이다. 그는 서울대 경제학과 78학번으로 80년 서울의 봄 당시 서울대 총학 간부로 서울의 봄 시위를 주도한 핵심이었던 것이다.

그가 기초한 논리정연한 대자보를 읽으며 한국사회의 현실에 눈을 떴고, 광주의 비극을 알게 되었다. 하여 나도 얼치기 운동권이 되었다.

그후 직장 초년생으로 바쁜 90년대 초, 그를 다시 만날수 있었다. 세계사의 중요 사건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본, <거꾸로 읽는 세계사>의 저자가 바로 유시민이었다. 그 책의 인기는 대단해서 그가 인세를 받은 돈으로 독일 유학을 갈 정도였다고 할 만큼 그는 큰 돈을 벌었다.

귀국 후 그는 토론 프로그램의 사회자로, 국회의원으로, 노무현 정부의 장관으로 화려한 정치역정을 보냈고, 이제는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가 책을 쓰는 지식소매상을 자처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참 말도 논리정연하게 잘하지만 글도 군더더기가 없다. 깔끔하고 쌈빡하다. 그의 책은 <거꾸로...>,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 <어떻게 살것인가>, <청춘의 독서> 이후 다섯번째 책이다.

그가 전후 베이비붐 세대에 태어나 바라본 한국사회에 대한 그의 해석을 이책 <나의 한국현대사>에 담아냈다. 그는 물론 진보주의적 시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는 이 책에서 균형감각을 유지하려 하고 있다. 예컨대, 대북관계에 있어 실질적 진척을 만들어낸 정부로 노태우정부를 꼽는다. 그 정책의 연장선상에 김대중정부와 노무현정부가 있다고 인정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가 정치로 다시 돌아오기를 바란다. 그가 다시는 정치로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얘기하지만, 그만큼 건강한 정치적 식견과 미래에 대한 현실적인 비젼을 가진 정치인이 드문 현실에서 그를 정치에서 다시 볼수 없다는 것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믿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