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 글은 문학광장 날적이에서 함께 입력된 조이풀님의 글입니다. |
지난 6월 서울북부지방 검찰청 청소년 담당 검사로부터 전화 한통을 받았다. 중3인 재윤이 무면허 무등록 오토바이 운전 사고와 관련하여 아이와 함께 다녀가라는 내용이다. 과일 가게를 들이받은 사고를 내고 적잖은 변상을 했고, 이미 경찰 조사에서 반성문과 부모 서약서를 제출했던 상태라 검찰에 한번 다녀와야 한다는 것은 예상하고 있었다. 막상 재윤이에게 검찰청에 가야한다는 얘기를 못하고 고민하다가 검사와 약속한 당일 아침 재윤이에게 불쑥 문자를 넣었다.
'재윤아 아빠하고 현장 학습 간다 생각하고 검찰청에 다녀오자'
돌아온 문자는 의외로 담담했다.
'아빠 미안해. 지난번 사고 때문이지. 가서 감옥 가는건 아니지?'
그렇게 젊은 여성 검사 앞에 서게 되었다. 훈계도 듣고, 재윤이는 반성문을 나는 서약서를 다시 한번 쓰고 나왔다. 서약서는 양식이 있어서 서명만 하면 되는데 재윤이에게는 줄칸만 있는 종이 한장이 건네지더니 반성문을 꽉 채우라는 것인데 이 녀석 10분도 걸리지 않고 줄칸에 글씨를 그려나가는데 역시 내 아들.
검찰 청사를 나와서 나는 의정부 쪽으로 차를 몰고 가면서 '다시는 이런데 오지 말자'라 했고 재윤이는 '아빠 미안해' 말만 되풀이 하고 있었다.
86년 12월 어느 날, 돌아가신 아버지와 나는 노량진경찰서 정보과에 함께 있었다. 그 때 아버지는 아들을 군대에 보내겠다는 서약서를 썼고, 그 날 한강대교를 걸어서 용산까지 와서야 버스를 탔다. 앞서 걷던 아버지, 뒤따르는 나, 아무 말 하지 않고 그렇게 다리를 건넜고 이듬해 박종철 물고문 치사 사건으로 세상이 떠들석하던 날 군에 갔다.
재윤이가 지리산 천왕봉을 가겠다고 한다. 친구들과 함께 여행 겸하서 갈테니 걱정 말라는 것이다.
'아빠하고 가을에 같아기자'
'아빠는 배 나와서 안 돼'
설마했는데 여름방학이 시작된 다음날, 이 녀석이 친구 여덟명과 함께 지리산을 가겠다고 새벽길을 나섰다. 엄마가 용돈이라도 줬겠지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엄마한테는 얘기를 안한 모양이다. 그 날 저녁 8시경 카톡이 왔다.
'아빠 걸어서 로타리 산장까지 왔는데 내일 새벽 4시에 천왕봉 올라가'
덜컥 겁이났다. 그 때부터 한시간 정도 전화 붙들고 말렸다. 카톡에 올라온 사진을 보니 집에서 신던 운동화, 비옷은 어디서 구했는지, 양손에 들린 등산 지팡이, 마음이 짠했다.
'산장 주인 바꿔봐'
'지금 다 자. 걱정마, 여기 아저씨들이 도와준댔어'
더 이상 말릴 수 없었다. 그리고 페이스북에 재윤이를 응원해 달라는 글을 올렸다.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인터넷으로 로타리산장을 검색해보고, 천왕봉에 오르는 코스를 머리로 따라 올라갈 뿐이었다. 험난한 암벽, 미끄러운 길, 물병이라도 챙겨 가는건지, 이런 생각들을 하다가 새벽 4시경 잠들었다.
아침 7시 30분경 카톡 카톡 요란하게 잠을 깨우는 소리. 카톡을 들여다 보는 내 눈은 커졌고 나도 모르게 '만세' 탄성을 지르게 되었다.
이 녀석이 진짜 지리산 천왕봉에 오른 것이다.
'다섯명은 낙오하고 세명만 올라왔어. 서울 가면 삼겹살이나 사줘'
오르는 동안 괜히 올라왔다고 수없이 망설였다고 한다. 아저씨들이 물도 주고 손도 잡아 주고 해서 올라왔다고 다시는 이런 산에 안 오르겠다고 한다.
그 날 저녁 늦게 아이들은 서울로 무사히 돌아왔다. 삼겹살 약속을 지켰다. 그리고 물어보았다.
'왜 갔어?'
다들 이렇게 힘들 줄 모르고 호기심으로 다녀온게 맞다.
'또 갈거야?'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
이 녀석이 또 한번 사고를 쳤다. 고2인 사촌누나와 함께 '걱정마, 잘 다녀올게' 카톡 문자 하나 남겨놓고 일본에 간 것이다. 4박5일.
나중에 알고보니 재윤이 엄마가 동행하고 있었다. 재윤이 엄마는 방학 중이라 어디 학회 학술 발표하러 간 줄 알았는데 조카와 재윤이를 데리고 일본에 간 모양이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가정에 신경 좀 쓰고 살아야지 하는 생각에 마음이 석연치 않다.
방학 마지막 날이다. 어제 밤 재윤이와 친구 녀석들 새벽까지 잠 안 자고 떠들더니 아침에 방문 열어보니 뒤엉켜 자고 있다. 식탁에 3만원 올려두면서 '재윤아 방학 마지막 날인데 친구들도 집으로 일찍 돌려보내고, 너도 교복이랑 책가방 잘 챙겨, 홧팅^^' 이렇게 메모를 남겨놓고 나왔다.
이렇게 여름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