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에게 맞는 법

40년 전 어느 날, 동네 만화방 흑백 텔레비전 속에서 신사 레슬러 이노키와 핵 주먹 알리가 링에 올라 싸우고 있었다. 이노키는 누워서 알리의 다리를 노리고 있었고, 알리는 이노키에게 한방 날릴 수 있는 기회를 찾기 위해 발잽을 날리며 이노키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동네 아이들로 가득찬 만화방에는 아이들의 꼴각꼴각 침 넘어가는 소리와 한 장면이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눈빛이 열기를 돋구었다. 누가 이기든 상관 하지 않았다. 이노키의 힘과 알리의 핵 주먹, 권투와 레슬링 중 누가 이기는가가 관심이었다. 그러나 그 경기는 좀처럼 승부가 나지 않는 졸전이었다. 훗날 이 경기를 두고 알리가 ‘세상에 누워서 돈 버는 사람은 창녀와 이노키 뿐이다’ 이렇게 얘기하자 이노키가 ‘누워 있는 창녀 앞에서 아무것도 못하는게 알리다’라고 받아쳐서 한참 웃었던 기억이 있다.

이런, 하고 싶은 얘기가 옆 길로 한참 샜는데 다시 제목에 맞는 글로 돌아가야겠다.

아내는 태권도인이다. 몇단인지는 모르겠는데 국기원이 줄 수 있는 최고의 단이라는 것만 알고 있다. 격투기를 하는 운동 선수는 아무나 때리지 않는 걸로 알고 있다. 그런데 아내는 삐딱한 태권도 고수라서 그런지 남편인 나를 때릴 때가 있다. 그것도 잊을만하면 한번씩 때리는데 내려찍기 한방에 뻗어버린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한번쯤 때리는 아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가야겠다.

아내와 나는 중3인 아들을 하나 두고 있다. 이 녀석은 책이나 공부보다는 친구들을 무척 좋아한다. 한동안 토요일 저녁이면 우리 부부는 집을 통째로 아들 녀석과 친구들에게 내어주고 아내는 처가로, 나는 사무실이나 여관을 전전하기 일쑤였다. 일요일 오전이 되어 집에 들어가보면 불한당같은 녀석들은 밤샘을 한게 분명하다. 서로 뒤엉켜 자고 있는데 가관이다. 나는 흐트러진 신발을 가지런히 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치우고 아이들을 깨운다. ‘부모님들이 걱정하실텐데 집으로 돌아가서 공부 좀 하고 그래’ 아내는 집에는 오지 않고 내게 문자 한통만 보내온다. ‘애들 갔어?’

이런 풍경이 이어지던 어느 일요일 아침, 나는 아내에게 제대로 한방 맞았다. 아들 녀석과 친구들이 이번에는 우리 집에서 자지 않고 다른 친구 집에서 자게 되었는데 문제는 연락할 수 있는 전화번호가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핸드폰도 꺼져있고, 친구 녀석들 전화도 약속이나 한 듯이 받지를 않는다. 나는 이 사실을 아내에게 알리지 않고 ‘별일 있겠어’ 식으로 찾는 것을 단념하고 늦잠을 자고 있었다. 처가에서 돌아온 아내가 아들 녀석이 보이지 않자 ‘애들 축구하러 갔어?’ 묻는데 ‘어제 밤에는 얘들이 딴데서 잤나 봐’ 아내의 얼굴 표정이 달라지고 있었다. 나는 ‘어제 밤 애들 찾으려고 해 봤는데 전화도 꺼져 있고...’ 말을 둘러대고 있었다. 아내는 친구 엄마에게 전화 한통화 하더니 애들의 소재를 금방 알아내기는 했다. 그러나 아들 녀석을 간수하는건 남편인 나의 책임이라는 듯 어떤 식으로든 그 책음을 물을 것은 분명했다.

“잠깐 일어나 봐”

하도 오랜만에 듣는 말이라서 대처법을 잊어버렸다. 아내에게 맞을 때 나의 대처법은 이러했다. ‘잠깐 일어나 봐’ 하는 순간 내 몸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이 달라진다. 갑자기 요동친다는 것을 느낀다. 반사행동을 미리 점검하고 천천히 일어나면서 잽싸게 아내 몸쪽으로 바짝 붙어야 한다. 발이 올라 올 수 있는 거리를 두면 안되기 때문이다. 아내는 발을 못 쓰게되면 손을 쓰는데 주먹이라봐야 맴매 수준다. 이제는 허리 한번 잡아서 꺽을 듯이 힘을 주면 게임 끝이다. 나는 방어를 잘한 것이고 아내는 자기의 기술 부족을 탓하며 맥이 풀려 더 이상 때릴만한 기분을 잃어버린다.

그런데 그 대처법을 잊어버렸다. 최근 몇 년 동안은 이런 상황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방심을 했던 것이다. 엉거주춤 일어서다가 ‘얍’ 소리와 함께 그대로 돌려차기 한방에 꼬꾸라지고 말았다. 휴, 그나마 내려찍기가 아니어서 다행이지 내려찍기에 당했으면 기절은 기본이다.

아내에게 맞고나면 나는 집을 나온다.  순대국집에 들어가 소주를 깐다. 그리고 이노키를 생각한다. 허리 붙들고 확 넘어지면 게임 끝나는건데 이런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아내에게서 ‘하루 두 곳 강의를 뛰어야 하는데 대중 교통으로는 갈 수 없어. 운전 해 줄 수 있어?’ 문자가 왔다. 지금 망설이는 중이다. 

(월간에세이 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