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밤, 신촌은 아수라장이었고 저는 그 많은 전경들의 무시무시한 진격에 의연하게 맞서다가 연행되는 순간까지 제 소신을 굽히지 않았기에 덤덤하게 연행되었습니다.
△ 커리님 연행 당시 상황 (며칠 후, 마이클럽 경향신문 광고에 쓰일 사진)
...... 라고 말씀드리면 좋겠지만 사실 별일 없었습니다.-_- 제 연행당시 사진이 있다 하여서 확인해보고 식겁 했네요. 그렇게 경찰이 많았는 줄 몰랐거든요. 키 큰 전경들 안에 있으니 밖이 보일리가 없죠. 걍 두 세겹 쯤 둘러친 줄 알았지 뭐 떼거리로 몰려든 줄은 그땐 꿈에도 몰랐어요. 표정이 평온했던 건 제가 대담한게 아니라 상황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 많은 병력을 다볼 수 있었다거나 남자분들처럼 일단 맞고 봤더라면 저도 완전 쫄았겠죠.
간단하게 당시 상황을 좀 말씀드리자면, 저는 가두시위 후발에 합류하여 대충 약간의 행진을 마친 후 신촌에 멈춘 집회자 분들을 따라 멈췄고, 저는 잠시 근처 버거킹에 들러 음료수를 사들고 다시 길을 건너 와서 여기저기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저그떼처럼 전경이 쫘악 펼쳐지더군요. 아, 이쯤에서 막으려나 보다 싶어서 저도 뒤쪽에 서서 전경들이 가는 방향을 보고 있던 즈음하여 순식간에 제 주변에도 전경이 둘러쳐지데요. 옆에 있던 남자분들 몇 분과 저를 포함한 열 명정도의 뒷쪽에서 관망하던 분들이 그 원안으로 포위되는 순간, 어디선가 갑자기 <잡아! 잡아!!> 하는 경찰의 다급한 고함이 들리더니, 그 있잖아요.
영화 <에일리언>을 보면 우주선 선원들이 기내 복도를 통해 마구 도망가지만 에일리언은 환풍구 같은데서 불쑥 손을 내밀어 사람을 낚아채고 갑자기 사람은 암흑 속으로 쑤욱 빨려들어가는 장면 같이, 남자분 한 명이 전경 속으로 쑤욱 빨려 들어가더라구요. 그 것도 머리채를 먼저 잡아서 거꾸로 빨려들어가고,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서 잠시 사태 파악이 안되는 사이 옆에 있던 또 다른 남자분이 같은 방식으로 쑤욱 빨려 들어가고, 결국 여자들만 여서 일곱분이 남았습니다.
그 여자분들도 다 연행되고, 제일 뒤에 있던 제가 맨 마지막으로 연행되어서 사진상으로는 제 차례가 됐을 때 가장 극적이었던거 같습니다. 비장한 사진을 이렇게 설명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사실이 그렇네요.
하여간에 저로서는 당시에 바리케이트가 몇 겹인지도 전혀 알지 못했고 짐작으로 대강 두 세겹 정도라고 생각했으니, 그다지 겁이 나지도 않았고요. 남자들을 빼가는 방식을 보고나니, 여자로 태어나길 잘했다는 안도감도 생기고, 연행되도 몇 시간 조사받으면 금방 풀려 날거라는 생각에 괜히 반항하다가 몸에 스크래치 내지 말자는 판단으로 걍 순순히 따라갔습니다. 그래도 끝까지 설마 나같은 사람을 연행하나? 하는 노파심도 있었습니다. 양팔을 잡고 끌어낼때도 <안전하게 밖으로 피신시키는거겠지.> 라고 자위하고 있었는데 계속 따라나와 보니 닭장차로 바로 인서트. -_-;;;;;
이건 어디까지나 제 개인의 상황이구요. 남자분들 같은 경우엔 무조건 밟히고 맞고 안경이 날아가고 그 후에 팔다리를 들어서 보신각 종치 듯 끌려나온 분도 있었고 심지어는 밥먹으러 가는 길에 사진 한 장 찍으려고 멈춰섰다가 연행된 분도 계십니다.-_- 그야말로 마구잡이라서, 연행 현장은 아수라장이었지만 막상 경찰서에 가보니 연행을 담당한 경찰분이 연행자 조서 꾸미는데 자신이 언제 어떻게 어떤 식으로 어떤 사람을 연행했는지 기억하지 못해서 쩔쩔 매고 옆에서 듣다가 답답해서 대신 정정해주기도 하고,-_-;;; 매우 코믹했습니다.
자, 이제는 연행 경험자로서의 노하우, 그리고 팁입니다. 그에 앞서 일단 제가 송치됐던 구로 경찰서 분위기는 매우... 음... 이렇게 말해도 될지 모르겠는데요 우선 형사님들이 매우 친절하십니다. 혹시 불이익을 당하실까 자세하게는 설명하지 못해도 이 자리를 빌어 밝은 취조진행에 감사드립니다. (구로경찰서 형사님, 경사님들 등등) 물론 몇몇 남자분은 좀 힘들었다고 하시는데 글쎄, 그래도 전체적으로는 비교적 감사드려도 될만 합니다.
우선 연행되는 상황이 좀 유쾌하지 않다 뿐이지 연행 자체가 불편하진 않습니다. 반항해도 양쪽 팔이 잡히면 빠져나갈 수 있는 확률은 적습니다. 이미 양 팔을 잡히시고 바리케이트에 갖히셨다면 걍 순순히 따라 가시는게 좋다고 봅니다. 중요한건 연행된다는 사실에 겁먹지 마시기 바랍니다. 벌금을 물게는 되지만, 그 자체로 무서울 건 없거든요. 민주화 시절도 아니고, 고문을 당하는 것도 아니고 전혀 불편은 없습니다.
단, 조사 전후하여 유치장에 48시간 입감이 되는데요. 아... 제가 태어난 이래 그렇게 지루하고 무료한 시간은 처음이었습니다. 밖에 있을 때의 권태 따위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습니다. 유치장 인테리어의 단조로움, 색상의 무성의함, 화장실의 단촐함 등등 정말 지루합니다. 이것이 지루함의 결정판이다!! 라는 걸 보여줍니다.
하지만 티비를 볼 수 있고, 만일 그 안에서 이야기 상대가 있다면 괜찮다는 분이라면 들어가서도 48시간 정도는 견딜만 합니다. 함께 연행됐던 41세의 주부께선 첫 날 아이들 생각에 많이 우셨는데 그래도 저희와 함께 간간 웃고 떠드는 통에 크게 지루하진 않았다고 하시더라구요. 여튼 저는 엄청나게 지루했습니다.
벌금이 얼마나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벌금 걱정만 하지 않으신다면 크게 어려움은 없습니다. 그리고 조서 쓰실 때는 민변 소속 변호사님께서 조서 노하우, 이렇게 하면 잘쓴다. 팁을 제공하십니다. 그리고 형사님들도 대체로 최대한 배려해 주십니다. 집시법에 관한은 공안검사 담당이므로, 형사님들 차원이나 경찰서 차원에선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합니다. 다만, 경찰청 수뇌부에서 하달되는 집회 상황 조서 팁이 있는데 그거에도 맞춰야 하니 어쩔 수 없이 양쪽의 균형을 잡는 정도의 애로사항은 있습니다. 이건 조사 받으시는 분들의 역량껏, 적절한 진술을 짜 넣으시기 바랍니다.
괜히 경찰이나 형사님들께 울분을 토해 봐야 득될 것은 없습니다. 전경이나 경찰이나 형사나, 모두 상부의 지시에 의해 움직이는 분들입니다. 그 분들을 피곤하게 하지 않는 게 최소한의 배려고 그 정도의 배려를 받으시면 인지상정이라, 오는게 또 있습니다. 여하튼 엉뚱한 적을 만들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번 집회 연행의 하일라이트는 <다음 아고라 소속이냐> 라는 다음 커뮤니티 몰이와 <폭력을 행사했는가> 라는 행위의 정도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폭력 비스무리한 심지어는 살짝 밀치는 일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전경이 때리면 그냥 맞으세요. 연행하면 최소한의 반항 외에 과잉반항 (발로 찬다던가 하는,) 은 금물입니다. 최선은 연행되지 않는거지만, 만일 연행되신다 해도 겁먹지 마시기 바랍니다. 폭력사용은 어떤 경우에라도 설령 옆에서 누군가가 욕설 비스무리한 걸 하더라도 말려 주세요. 목적지까지는 아직도 멉니다.
중간에 그물에 걸려 낚이지 않도록, 절대 폭력 혐의를 단 한줄도 올려서는 안됩니다. 이번 연행의 테마는 <다음 아고라>와 <폭력>이거든요. 이 두 가지 테마에 대해 집중 추궁이 있습니다. (표현하기를 추궁이지 사실상 조서단계는 매우 평화롭습니다. 걱정마세요.)
하여간에 연행되는 걸 너무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으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행여 사진에 자극 받으셔서 돌출행동을 하시거나 경찰을 적으로 만들거나 하는 그런 일은 오히려 방해가 됩니다. 경찰도 알고보면 스물 남짓한 남동생들이고 -_-;;;; 철저히 명령체계 안에서 움직입니다. 걍 인간으로 보시면 됩니다. 때때로 나와 대치되지만, 어차피 함께 살아가는 뭐... 그런 평범한 상식. 처음부터 끝까지 각자 소신 위에 감정이 덧입혀 지는 건 자제하시길, 꼭 당부드립니다.
살다보면 불법이라도 저질러서 내 표현을 해야 하는 상황도 있을 수 있고 연행될 수도 있고 그냥 그렇게 생각하셨으면 합니다. 남자분들은 연행 과정에서 무쟈게 맞을 수도 있습니다. 함께 있던 분은 큰 덩치로 인해 오인받아 <죽어!> 라는 구호를 들으며 땀나도록 밟히고 안경을 날리고 보신각 종치는 자세로 연행되기도 했습니다만 끝까지 순순히 따르셨습니다. -_-;;;;;; 얼결에 잡혀오신 행인 분도 그냥 끝까지 조사 받고, 손배소를 준비하겠다 하십니다. 모두가 그분들처럼 해야 하느냐. 제 생각엔 <그렇다> 입니다. (여자로 태어나길 어찌나 다행인지...-_-;;)
선영님들의 경우엔 부디 연행된다는 걸 너무 극적으로 받아들이지 마시고 걍 그렇게 되더라도 침착하게, 자연스럽게 대처하시기 바랍니다. 걱정 해주신 분들 정말 감사드리구요. 극단의 지루함과 직장과 가정에 엄청난 뻥을 쳐야 했던 머리아픈 과정만 제외하고는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 벌금 나오면..... 물면 됩니다. 소신껏 표현하시되 목적지가 멀다는 것, 그건 반드시 숙지하시길 당부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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